prelude

한국 전통문양에 스며있는 집단적 가치관과 상징

문양은 언어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그 민족과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를 지니게 마련이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성격을 나타내기에 이를 전통문양이라 일컫는다.
우리 인류가 이루어놓은 미술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동안 쓰여온 문양의 종류와 유형을 크게 구분해보면 첫째 기하학 문양, 둘째 종교 및 신앙을 상징한 문양, 셋째 동·식물 문양, 넷째 자연 문양, 다섯째 길상 문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문양들은 때에 따라 기호나 문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며, 어느 경우에는 회화로 나타나고, 또 어떤 때는 추상적으로 표현되거나 사실적인 상형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어느 민족이든 그들의 생활민속품을 보면 그들의 인격과 생활방식, 그리고 민족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다. 그들의 살림살이나 생활기물을 눈여겨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그 민족의 심성(心性)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나라의 풍토적 조건과 역사적 여건 속에 그 민족의 생활감정과 정서가 짙게 깃들여지면서 뚜렷한 민족적 개성이 표출되는 것이다.

우리 문양은 우리 민족의 생활정서와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같은 동양문화권 속에서 혈연관계를 맺어온 중국이나 일본 미술과 또 다른 권위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의 경우 우리 미술품에 나타나는 문양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꽃인가 하면 꽃도 아니오, 풀인가 하면 풀도 아닌 추상에 가까운 문양을 대할 때 더욱 그러한 말을 한다.
이와 같이 사물을 자유분방하게 추상화 할 수 있는 사고에서 우리는 선조들이 평소 생활 속에 꿈꾸어온 낙원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 한국의 공예품에는 신화나 설화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백제의 문양전돌 중 산경봉황문전(山景鳳凰紋塼)을 보면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이나 우리나라 금강산, 혹은 불로장생약이 난다는 삼신산과 같은 신비스러운 산이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적인 산수의 온아한 풍경을 반 추상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창조성은 한국 문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멋과 아름다움이라 할 것이다.
또한 신라의 막새기와에서는 달 속에 옥토끼와 두꺼비가 계수나무 한 그루가 꽂힌 항아리를 사이에 두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문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믿었던 전설 속 월궁(月宮)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미술의 남다른 특성과 창조성을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선(線)의 마술사’라 할 만큼 아름다운 선을 조화롭고 자유분방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타고난 재능이라 생각된다.
중국의 은허(殷墟)에서 채도(彩陶)가 만들어 질 때, 같은 시기 우리 신석기 문화인들은 질그릇에 빗살무늬로 특징을 이루었으며, 청동기시대 의식용 기구와 바위새김 그림에서도 단순한 선조를 추상조형으로 표현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선조의 전통은 삼국시대를 거쳐서 고려시대에 이르러 세련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청동은입사정병·향로·수반 등에서 영향을 받아 청자상감 기법의 발생과 나전칠기의 의장 발달에 자극을 주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전칠기의 도안에서도 자개의 영롱함보다도 선조 문양의 동심적인 표현에서 억지가 없고 소박한 삶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문양의 실체는 그냥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아름다움 이전에 그 문양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단순한 문양이라도 그 작은 문양 하나 속에 우주의 섭리가 깃들여 있을 수도 있고, 반면 아무리 현란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저 장식문양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양의 크고 작음, 단순함과 복잡함에 상관없이 이들이 각기 뜻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양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그 문양의 성격에 따라 물건의 용도가 다르며 문양이 베풀어진 자리 역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문양의 올바른 의미를 아는 일이라 할 것이다.

글_임영주,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