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전설을 싱겁게 한다. 극미량원소분석기는 성덕대왕신종에 어린아이가 들어간 사실에 대해 심히 의문을 표시했고,
첨단 음향분석기는 종소리가 ‘에밀레~ 에밀레~’처럼 들리는 것은 다른 종의 3배에 달하는 477Hz 고주파 소리대역
때문일 뿐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해봐도 우리는 여전히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아름다운
종을 재현해내지 못한다. 과학이 능사는 아니다.
용뉴(龍紐)
고개를 숙여 입으로 종을 물어올리는 듯한 형상을 한 이 용의 원래 이름은 ‘포뢰(蒲牢)’.
바다를 다스리는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고래를 매우 무서워한다.
옛 문헌에 이르길 고래가 물 위로 뛰어 오르면 포뢰는 겁을 내어
우는데, 그 울음이 북소리처럼 웅장하다고 하였다. 종 위에 포뢰 형상을 달고 종을 치는 당목(撞木)을 고래형태로 만들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음통에서 튀어나온 양 발로 굳건히 종의 상부인 천판을 누르고 있는 이 성덕대왕신종
포뢰는 그 역동성과 조형성에서 단순한 고리의 기능을 넘어 우리나라 최고의 용조각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음통(音筒)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음통은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내부가 비어있고 아래쪽에 종 내부와 연결된
피리처럼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우리나라 종소리의 비밀이 이 음통에 숨겨져 있다는 견해가 많이 제시되고 있다.
세 마디
반으로 나눠진 띠에 아래 위로 활짝 핀 연꽃문양을 새겨넣었고 그 무늬띠 사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는 반구형 꽃무늬를
가늘게 연결하였다.
천판(天板)
종의 윗부분을 이루는 천판은 녹인 동을 주입하는 입구가 있는 관계로 중간 바닥이 고르지 못하다.
하지만 음통과 연결되는
부분은 세심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보상화문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상대(上帶)
종의 윗부분에 띠를 두르고 무늬를 넣은 부분을 ‘상대’라 한다.
복잡화려한 보상화를 중심으로 좌우로 세 마디의 당초가
원만한 곡선을 이루며 뻗고 있으며 양끝을 꽃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주의해서 볼 것은 하대에 있는 보상화당초문과의
대비이다. 일반적으로 작은 것은 생략이 많고 큰 것은 자세한 법인데 신종의 문양은 반대이다.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정교하게 새겨 상대적으로 둘레가 작은 윗쪽의 아기자기함을 살리고 아랫쪽은 상대적으로 크고 일부러 덜 정교하게 처리해
양감을 강조하고 있다.
연곽(蓮廓)
종을 두르며 좌, 우, 아래로 막혀진 4개의 사각형을 연곽이라 한다.
종의 굴곡을 살려 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역시 보상화당초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줄기는 주로 위와 옆으로 뻗어나가는데 이는 비천이나
하대 무늬와 더불어 신종에 리듬감과 상승의 이미지를 불어넣어준다.
36연화문(蓮花紋)
4개의 연곽 안에는 각 9개씩 도합 36개의 연화문을 배치하였다. 36이란 숫자에 대해서는 모든 중생과 중생계를 나타내는
사생구계(四生九界)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치 않다.
대개 연곽에는 봉우리가 막 피어나는 연꽃 형상(연뢰)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성덕대왕신종에는 활짝 핀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36선신(善神)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종 중 연뢰가 36개가 아닌 것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건통7연명종(1107년)이 유일하다.
명문(銘文)
종신에 장문의 명문이 양각되어 있는 것은 신라 동종에 흔하지 않은 특징이다.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어
이 종의 이름이 ‘성덕대왕신종’ 이라는 것과 이 종소리를 들으면 백성들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 복을 받게 되며 진리를
깨달아 그 공덕으로 아버지인 성덕대왕이 극락에 편히 계시게 된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또한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혀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비천(飛天)
비천상은 천인(天人), 천중(天衆)의 나는 형상을 가리키며 예로부터 회화, 조각에 표현되어 불당의 장엄을 나타내었다.
양쪽
명문을 가운데 두고 각각 명문을 향해 향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사람의 눈을 자연스럽게 명문으로
유도한다.
언뜻보면 이목구비가 없는 듯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눈두덩, 두뺨, 코, 입가의 미소 등이 고스란히 보이며
머리카락, 귀걸이는 물론 심지어 배꼽까지 묘사되어 있어 상체가 누드임을 드러내고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덕대왕신종에는 구름문양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양이 구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런 모든 무늬의 구름화는
신종의 커다란 특징이다. 구름 한 점 없는데 온통 구름인 것이다.
당좌(撞座)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역시 우리나라 종의 독특한 양식이다.
좌우로 8개의 겹쳐진 꽃잎을 가진 연화문이 자리잡고 있는데
역시 상대연화문에 비해 거칠고 마치 점토로 빚은 듯한 질감을 띠고 있어 우람한 종의 형태에 어울린다.
특히 신라종들은
당좌의 위치가 종이 매달린 부분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는 절묘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종소리의 여운을 살려줌과
동시에 종의 수명을 늘려준다.
하대(下帶)
상대와 마찬가지로 보상화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8능형, 즉 직선이 아니라 아름다운 곡선을 여덟 번
반복하여 띠를 이룬다.
이런 하부의 형태도 신종의 아름다운 종소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 외에도 8각
형태는 불교미술에서 널리 애용된다.
8은 인도 숫자의 기본단위이며, 원에 가장 가깝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글_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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