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문화상품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통문화상품을 기획.디자인해 오신 분으로서 현재 우리나라 문화상품의 시장상황 및 전망에 대해 얘기해
주십시오.
한마디로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 ‘문화’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70년대에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90년대에 들어와서야, 즉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고 나서야 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돌아보게 됐지요.
그리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불명확하게 비춰지자 자연
과거의 것에서 자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문화상품이라 하면 전통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향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경향이 최종적인 지향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것을 계속 찾는 것이 올바른
전통의 계승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단계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문화상품을 제작할 때 특별한 개발전략이랄까 소스를 취하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먼저 시각적인 관점에서 전통적인 모티브를 찾는다면 색채나 형태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색채의 경우는 ‘모듈화’시키기가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이에 반해 문양은 소위 현대 디자인에 있어서의 ‘그래픽’적인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지요. 한
예로 문양은 배경과 확실히 구분되기 때문에 쉽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전통문양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형태들입니다.
전통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통시적으로 검증된 형태가 공시적으로도 쉽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전통문양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죠. 그 밖에 특별한 개발전략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 제품에
가장 어울리는 소스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연히 전통문양을 집어넣는다고 상품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죠. 제품은
제품 자체로 승부해야 합니다.
제품에 문양을 적용할 때 어쩔 수 없이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선이 생략될 수도 있고, 특정 부분의
형태가 강조될 수도 있고…
전통문화를 아끼시는 분들은 이런 변형과 응용 과정에서 전통문양의 의미가 많이 손상된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문양은 원래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전병에 있는 갖가지 문양들은 서로
어울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냅니다. 거기서 하나의 모티브만 가져온다면 전체적인 맥락이 깨지게 되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떤 문양의 원래 형태와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본 디비(DB)를 구축할 때에는 그런 일에
많이 신경씁니다. 하지만 일단 정리된 기본 소스에서 디자이너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현재 조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몫이죠. ‘과거에는 이렇게 썼으니 이렇게만 써라’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사적(史的)인 관점에선 그럴지 몰라도 문화적인 관점에서는 다릅니다. 상징성이 있어야만 문양이라고 보는
건 사적인 관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써왔지요.
하지만 현대에 와서 상징성 대신 조형성에 중점이 맞춰지는 것은
문화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다만 사학자나 디자이너들은 그것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상품을 개발하실 때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가 있습니까?
즉, 아무래도 국제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전통문양을 적용하실 때,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시는지요.
물론 외국인들도 중요한 대상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거기에 맞추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솔직합니다.
좋은 것을 좋아하지 단지 색다르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제약을 둔다면 오히려 자승자박이 될 여지가 있지요.
물론 나라마다 금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보라색이 ‘죽음’을 의미한다든지... 그런 특별한 경우에는
피하도록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까 말했듯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느낍니다.
우리는 제품이라는 시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또 일차적으로 그렇게 제공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외면적인 조형성이 직접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내면적인
감성으로 이어져야만 제대로 전통문화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지요.
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실장
글_박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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