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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중국에서.발견하는.우리

지난해 겨울, 산동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한나라 화상석에 관심이 있던 나는 산동공예미술학원의 특강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화상석 유적이 산동성에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의후 그들은 나의 관심에 대한 배려로 화상석 여행을 주선해주었다.
다음날 미술사 교수 두 분과 학교 차로 화상석이 발견, 보존되어 있는 쟈샹(嘉祥)과 이난(沂南)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학교 연구실에서 쉬쓰민교수가 보여준 1956년에 발간된 이난의 화상석묘 발굴보고서는 더더욱 나를 안달하게 만들었다.
그중 도깨비 모습의 귀면 탁본과 기괴하게 생긴 하나의 괴물 형상이 머리에 박혔다.
아! 치우(蚩尤) 같다. 치우다.

먼저 들른 쟈샹은 사진을 찍지 말라던 안내원과 같이 간 왕교수의 충돌로 뒷맛이 안좋았고...
그 날 저녁 공자님 고향인 취푸(曲阜)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 짙은 안개가 걷힐 때를 기다려 출발, 이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곳 책임자는 우리를 늦도록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지하 고분 석실로 안내했다.
어스름하게 비추이는 조명 속에서 도깨비와 그 신장이 보였다. 이 고분의 수호신이렸다.

앞쪽 방 북쪽 벽. 가운데 돌기둥 위로 주작의 정면 그림이 있고. 중간에 바로 그 신괴(神怪)가 있고, 그 아래 현무가 새겨져 있는데, 그 괴물의 흉칙한 형상이 희한하다.
입을 쩍벌려 이빨이 내 보이는 호랑이 머리 형상, 머리 위에 화살 셋이 잰 활이 붙어있고, 사지에 털이 길고, 왼손에 극(戟), 오른손에 칼을 들고, 또 양발에 칼을 쥐고, 앞에 방패를 막았다.
무시무시하고 또 희한하다. 가히 초현실적이다. ‘치우’렸다. 그냥 물었다. ‘이 그림이 치우인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사기에 따르면 동이족의 군왕 치우는“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이란 무기와 칼과 굽은 창과 화살과 돌을 쏘는 큰 활을 만드는”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니 사지에 철, 청동기로 된 무기와 머리의 활-화살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러한 상징으로 보였다.

언젠가 돌아가신 조자룡 선생을 뵈러 한밤중 속리산 뒷마을로 가다가 길이 막혀 더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동행했던 가족과 차를 두고 달밤에 걸었다.
조선생님은 술상을 봐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잠시 그는 열린 방문으로 보이는 불이 켜진 집 쪽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었다.
“저 집 보이지? 저 집에 치우장수를 모신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지. 우리나라에선 처음 봤어. 난 덩실덩실 춤을 추었네. 그 후 나는 이곳에 터를 잡았지”.
그 때 나는 치우가 누군지 몰랐다.

지난 주 아침. 변기를 타고 김지하 선생의 자서전 “흰 그늘의 길” 3권을 읽고 있었다.
“전쟁 터지다!. 한국과 중국의 필사적 세계관 전쟁, 탁록(?鹿)대전 발발하다” 라는 대목에 눈이 멈춰섰다. 그의 글은 계속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상고문화가 만나는 하나의 모태문명은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동이족 문화와 화하족 문화가 서로 갈라지는가? 서로 갈등하는가? 또 연속하고 공존하는가?. 장기간 대립하고 유통하는가? 이 분기점과 그 표출점이 바로 4,500년전의 치우와 황제의 탁록대전이 아닌가?”
바로 중앙일보에서 ‘동북아 상고대의 신화와 역사에서 현대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신시(神市)'라는 기획을 했었지만 불발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탁록대전이란 고조선족 치우(蚩尤)와 중국 화하족 황제가 맞싸운 신화적 사건이다. 아하!...

같이 간 중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치우 사당이 있습니까?’없다고 했다.
지난 번 서역 여행에서 우연히 복희 사당을 들른 적이 있었고, 여와나 황제 사당도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치우 사당만은 없는 것이다.
이상타. 치우는 화하족의 조상으로 여기지 않는가보다.

중국을 여행하며, 나에게는 계속 ‘우리’를 확인하는 버릇이 따랐다. 넓고 넓은 땅. 그 속에 운명처럼 우리와의 끈이 발견된다.
도깨비, 그리고 주작, 현무의 무늬. 산동 한 구석에서 ‘우리’가 발견되는 것이다. 우리와 중국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라고 느껴지는 그 무엇을 만나면 무언가 섬뜩한 기분이 든다. 중국은 점점 거대해지며 문화를 포식하고 있다.
우리스러운 그 주변 문화도 중국화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의 삼대 조상으로 동이족 조상인 신농과, 신화적 공포의 대상인 치우까지도 끌어들여 삼조당에 모셔놓았듯이.
이상하게도 중국 여행의 체험에서 계속 느끼는 것은 ‘우리’에 대한 자각이었다.

글_안상수(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