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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 二...五十五 楚卒 四十五呼장

손오공. 천궁에서도 자유롭고、 진경만큼이나 매혹적인 캐릭터

중국철학을 공부하는 내가 [서유기(西遊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중국과 중국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이라는 틀만이 아니라 역사나 문학을 통해서도 폭넓게 접근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중국문학 중에서도 이른바 4대 기서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바다. 그 중에서도 [서유기]는 서가에 꽂아놓고 시집을 펼쳐보듯이 꺼내 읽다가 그 새삼스런 재미와 깨달음에 종종 무릎을 치며 감탄하곤 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우선 제목부터가 걸작이다. [서유기]란 말 그대로 서쪽(정확히 말하면 중원의 서남쪽에 있는 서천, 즉 인도)으로 ‘놀러간(遊)’ 이야기라는 뜻이다. 당나라의 삼장법사(玄奬)와 세 제자인 손오공(孫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이 서쪽으로 ‘놀러간’ 까닭은?
불교의 진경(眞經)을 구하기 위해서. 오묘한 진리를 담은 불경을 구하러 인도에 간 것을, 그것도 배낭여행 하듯 가볍게 다녀온 것이 아니라 ‘여든 한 가지 난(難)’에 달하는 갖가지 고초를 겪으면서 갔다 온 것을 어떻게 ‘놀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제목부터가 따지고 보면 흥미롭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일본에서 연속극으로 만든 서유기 속의 손오공은 상당히 진지하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이는 삶을 대하는 일본인의 자세나 성격이 작품 해석에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결과가 아닌가 짐작된다.
하지만 노는 것을 즐기는 ‘원숭이의 끼’가 제거된 손오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우습다.
[서유기]의 주연은 유약한 성격의 무능한 삼장법사가 아니고 탐욕스럽고 편협한 저팔계도 아니며 근면 성실하고 순종적인 사오정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서유의 주체는 천궁에서 난장판을 칠 정도로 겁 없이 용감하며 낙관적인 캐릭터 손오공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손오공이 빠진다면 서유기는 서‘유’기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놀기 좋아하는 ‘유원인’의 이름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그 ‘공(空)’을 깨닫는다는 뜻의 오공이라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원숭이가 고승의 법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혹시 공을 깨닫게 되면 손오공처럼 기민하고 용감하며 낙관적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결국에는 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순간에 불과한 것을 영원한 것처럼 집착하기 때문에 손오공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삼장법사 일행이 인도에 도착하여 아난과 가섭에게 처음 받은 불경이 아무런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무자진경(無字眞經)이었으며 그것이 도중에 바람에 날려 산산히 흩어졌다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자연 자체가 하나의 불경이라! 이 이야기는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는 비결이 적혀있는 비급을 천신만고 끝에 구했더니 거기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더라는 어느 무협지의 이야기나, 글자가 적혀있는 인간의 책(有字人書)만 읽지 말고 글자가 없는 자연의 책(無字天書)을 읽으라고 했던 모택동의 말과 함께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이야기다.
언젠가 해인사 가던 길에 가야산 관광안내도에 절이 많이 표시된 것을 보고 “산에 절을 뿌려놓았구나!”라고 했다가 같이 간 일행에게 멋진 표현이라고 두고두고 칭찬받은 일이 있다. 이 이야기를 좋아한 덕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이야기이다.
무자진경을 잃어버린 일행이 석가여래를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글자가 있는 진경을 구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안간 광풍과 뇌성벽력을 만나 경문이 물에 흠뻑 젖는다. 그리하여 경을 돌에 널어 말렸는데 그 중에 한 장이 붙어 떨어지지 않자 삼장은 낙담한다.
그러나 손오공은 이렇게 스승을 달랜다. “무릇 하늘과 땅에는 모자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이 경만은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붙어서 찢어진 것은 불완전이라고 하는 진리에 호응하는 것으로 인력으로는 어쩌지를 못하는 겁니다.”이는 애초부터 자연을 완전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중국인의 자연관이 잘 드러나 있는 이야기로 손오공의 입을 통해 설파되는 또 하나의 진경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유기에는 모두 세 가지 불경이 나오는데 첫번째는 무자진경이고 두번째는 유자진경(有字眞經)이며 세번째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모두 고통스런 일이다. 아마도 이런 마음을 가졌기에 손오공은 대범하고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신출귀몰하고 용감무쌍한 천하의 영웅 손오공도 꼼짝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정심진언(定心眞言)’ 혹은 ‘긴고주’라고 하는 주문이다. 유약하고 무기력한 삼장법사가 대단한 신통력의 손오공을 통솔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손오공의 머리에 박힌 금고아를 조이는 주문이다. 손오공이 나중에 부처가 된 후에 이것을 가장 먼저 벗어던지고 싶어했던 것을 보면 그가 이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알 수 있다.
금고아를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에서는 헬맷처럼 그리고 있지만 원래는 살 속 깊이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삼장법사가 이 금고아를 조이는 주문을 외우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사람을 이렇게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곤 한다. 아마도 그것은 헬맷처럼 외부에서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아픈 기억이 아닐까.
긴고주는 그 기억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일 것이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고해와 같다는 인생을 살면서 영혼에 상처를 입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평소에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다가도 문득 맥이 빠지곤 한다. 원숭이처럼 잘도 돌아다니던 마음이 한 생각에 억눌려 꼼짝 못하는 것이다. 이건 어느 곳에서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우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캐릭터 때문일까.

 

글_황희경, 성심외국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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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db 2002년 7 8월호 (180호) 첫페이지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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