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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 四...四十三 包楚 四十一

에마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일본의 캐릭터 전통

12세기부터 13세기 일본 사회에서 유행하던 [로쿠도 에마키(六道繪倦)] 시리즈를 살펴보면 [지고쿠 조시(地獄草紙)], [가키 조시(餓鬼草紙)], [야마이노 조시(病草紙)]등 세태풍자적인 요소가 가득한 그림들이 있다.
로쿠도(六道)란 인간의 영혼이 각기 업(業)에 따라 천(天)에서 지옥까지 거쳐야 하는 여섯 단계를 말하며, 인간들은 생전의 업에 따라 여섯 가지 중 하나로 태어나게 된다.
여기에는 천상계(天上界), 아수라(阿修羅), 인간, 짐승, 아귀(餓鬼), 지옥(地獄) 등이 있다.

에마키(繪倦) 중 [지고쿠 조시(地獄草紙)], [가키 조시(餓鬼草紙)]에 등장하는 아귀들을 비롯한 각종 귀신, 요괴들의 독특한 캐릭터는 그 당시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멀쩡한 사람조차 칼부림에 고통 받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암울한 시대에 이들도 사람들과 뒤섞여 함께 부대낀다고 여긴 까닭일 것이다.
한편, 당시의 에마키들이 사회적 격동기 승려들의 행동을 풍자하고 있는 반면, 승려 자신들은 일본 역사상 파란 많은 이 시기의 죄악상을 보고 느끼게 된 동정심과 정신적 구원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는 [지고쿠 조시(地獄草紙)], [야마이노 조시(病草紙)]를 남겼다.
이들은 불교 철학이나 암울한 죽음이라는 사후관에 대중과 화가들을 끌리게 한 당시 세계관을 표현했던 것이다.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지옥의 단편적인 장면들은 무서운 경고로 비쳐졌을 것이다. 더욱이 이런 모습들은 내란으로 인한 폐허를 통해 직접 피부에 느껴져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중생을 구원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승려들은, 이를 벗어난 인간들이 겪게 될 영원한 고뇌를 누누이 설명한 불경과 그 주석에서 유래한 여러 단계의 지옥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고쿠 조시(地獄草紙)]는 모두 비교적 짧은 일정한 크기의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석의 뒤에 연결되어 있는 이 그림들은 죄인들이 세상에서 지은 죄의 정도에 따라 여러 종류의 고통을 받고 있는 불교지옥의 여러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장면들의 비슷한 묘법에도 불구하고 이 에마키에서 각각 다른 화가들의 솜씨를 구별할 수 있다. 회화적 관점에서 지하세계의 음울하고 어두운 배경을 뒤로 붉은 선혈이 낭자하고, 치솟는 불길아래 벌을 받는 인간들을 처참하게 그려낸 장면은 주목할만하다.
이는 무서운 공포로 다가서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약간의 경고쯤으로 보여진다.
[지고쿠 조시(地獄草紙)]의 화가는 헤이안시대 전반에 걸쳐 사찰 그림들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지문이나 병풍그림에 보이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지옥 장면들을 기초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지고쿠 조시(地獄草紙)]의 역동적인 표현은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도 훨씬 뛰어나며 여기에서 우리는 12세기 말엽 혼란한 사회의 묵시적인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지고쿠 조시(地獄草紙)]와 달리 [가키 조시(餓鬼草紙)]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아귀(餓鬼:pretas)들이다. 여기에서 몇 개의 장면들은 예리한 관찰력과 실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주의로 인간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생전에 탐욕 많고 인색하여 보시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귀로 태어나는데, 이 아귀의 가장 큰 고통은 멈추지 않는 허기와 갈증이다. 즉 영원히 기아에 허덕이도록 선고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사는 곳은 아귀도(餓鬼道)로, 인간세계와 지옥의 중간에 위치하며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몰래 섞여서 선량한 불자(佛者)들이 바치는 음식을 먹곤 한다. 만일에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인간들의 배설물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먹을 것을 두고 다툼이 많은데 이를 아귀다툼이라 한다.
또한 아귀는 배가 수미산만큼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아 늘 배고픔의 고통에 허덕인다. 그 때문인지 아귀들의 사지는 해골같이 야위어 있고, 벌거벗은 채로 뜨거운 고통을 받기에 늘 목이 말라 있다.
이런 흉측스런 모습의 아귀들 모습을 상상하여 정형화시킨 화가의 역량은 실로 대단하다. [가키 조시(餓鬼草紙)]에서 아귀들이 나타날 때 의례 등장하는 것이 아귀들의 갈증을 유발시키는 불과 그들을 한없이 허기지게 만드는 인간들의 음식, 그리고 그들을 약올리는 듯한 인간들의 즐거운 삶이다.
위와 같은 에마키들에 등장하는 역동적인 귀신그림들은 12세기 말엽 일본사회의 격동적인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안한 시대의 방황하는 영혼들은 세상살이의 반영이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바램이었다.

한편, 일본의 강한 캐릭터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에마키로 13세기 이래 교토(京都)의 서북쪽 산에 있는 코잔지(高山寺)에 보관되어온 네 개의 두루마리 [쵸쥬기가(鳥獸戱畵)]가 있다.
귀신과 아귀, 요괴들이 등장하는 [로쿠도 에마키]와는 색다르게 [쵸주기가]에서는 동물들이 인간세상을 풍자하면서 등장한 점이 매우 이채롭다.
권력욕을 향한 인간들을 향한 조소어린 신랄한 비판에서 그 당시 화가들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무사계급의 대두 이후의 사회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승려들과 귀족계급의 세태를 꼬집은 사회풍자라고도 본다.
커다란 연잎과 오동나무잎으로 무사복장을 한 개구리들에게 쩔쩔매는 원숭이 천황 등의 모습이 단순한 먹선으로만 그려져 있어서 만화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이 [쵸주기가(鳥獸戱畵)]를 보고 있자면 최근 개봉한 미아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에 등장하는 폴짝거리는 개구리신이 떠오른다.
사람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구리들의 모습과 행동, 개구리들의 기발한 몸짓이 [쵸주기가]에 등장하는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다. 또한, 꼭 개구리가 아니더라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귀신과 요괴들의 모습은 예사롭지가 않다.
이 애니메이션은 뜻밖의 장소에서 부모가 돼지로 변해버리는 수난을 겪는 10 살배기 소녀 치히로가 갖가지 정령과 귀신들의 집합소인 다테모노엔 온천장에서 부모를 구해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혹독한 환경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전통 온천장을 중심으로 외부에서는 거리의 풍경, 내부에서는 빽빽하게 들어찬 장벽화를 배경으로 하여 일본 각지의 전래민화와 토속신앙 속의 정령, 귀신들과 각종 요괴들이 총출연한다. 상상의 세계를 잃어버린 현대 어린이들에게 일본 전통을 선사하고 싶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만의 바램이다.
미야자키는 이미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 [원령공주(もののけ姬)], [붉은 돼지(紅の豚)]를 통해 일본 전통 속에 살아 숨쉬는 인격이나 신격을 갖춘 동물들과 정령들, 그들의 변신하는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또 굳이 미야자키가 아니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12세기 에마키서부터 드러나는 강한 캐릭터 전통이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곧잘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다카하타 이사오(高畑 勳)감독의 애니메이션 [헤이세이 너구리대작전(平成狸合戰 ぽんぽこ)]의 그 많던 너구리들의 기발한 전투장면, 혹은 히라기 아오이(ひいらぎあおい)의 원작 만화 [고양이 남작 바론(猫の男爵バロン)]을 바탕으로 한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의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등의 애니메이션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귀신들과 요괴들, 인간에서 동물로 변신하거나 때론 그 반대되는 현상들, 인격과 신격을 함께 지닌 캐릭터의 근원이 바로 12세기에 등장했던 에마키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글_안혜정, 전남대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미술교사
 


[지고쿠 조시(じごくそうし)].
紙本着色.
헤이안시대(12세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가키조시(がきぞうし)].
紙本著色.
헤이안시대(12세기 후반).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쵸주기가(鳥獸戱畵)].
紙本水墨.
헤이안시대(12세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쵸주기가(鳥獸戱畵)].
紙本水墨.
헤이안시대(12세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미야자키 하야오.
2002.

 


[헤이세이 너구리대작전(平成狸合戰 ぽんぽこ)].
다카하타 이사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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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db 2002년 7 8월호 (180호) 첫페이지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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