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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line 4
기보 十五... 四十二 楚象 六十五

암각화_ 최초의 캐릭터

“캐릭터가 평범하다.”
아마 요즘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톡톡 튀어야 살아남는 개성시대에 이 말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까지 들린다. 옛말로 한다면 필부필부(匹夫匹婦) 정도가 될까.
별 특징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말을 누군들 듣기 좋아하겠냐만, 그 핵심을 짚어보면 두 시대에 말이 전혀 다른 알갱이를 가지는 것이 재미있다.
요즘에 캐릭터가 평범하다는 말의 초점은 ‘개성’이란 단어에 가 있다. 다른 것과 구분하여 차별화되는 성질, 개성이 없는 캐릭터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에 반해 필부란 말에는 그 사람의 성질이 드러난다. 훌륭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 마케팅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캐릭터가 대중들로부터 오랜 주목을 끌려면, 개성이 강한 디자인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현란한 비주얼이 넘쳐나는 현대에 캐릭터의 유일한 덕목은 주목성이 되었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강한 개성만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캐릭터를 면면히 살펴보면 캐릭터산업을 가장 먼저 일으킨 미국의 월트디즈니 프로덕션을 비롯해 그 소재를 주로 만화 속 인물이나 동물에서 따오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의 인지도나 인기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소재를 구하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히려 내게는 고대 미술 속에 나타난 캐릭터들이 참신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그를 현대에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먼 옛날 고대미술의 경우는 저작권 주장도 어려우니 잘만하면 골치 썩히지 않고 독특한 캐릭터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캐릭터라 할 만한 바위그림의 경우 그 간결한 선과 조형미는 현대 디자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 하나가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동 태화강 상류의 반구대 바위그림이다. 신석시시대와 청동기시대가 뚜렷이 구분되는 이 곳의 바위그림 속에는 사람의 얼굴을 새긴 인물상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큰 바위를 캔버스 삼아 두 시대 사람들이 그림을 그렸으되, 얼굴 그림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작품인 것이다.
쪼기 수법으로 바위그림을 남긴 신석기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줄새김 수법으로 금을 그어 쉽게 구분된다. 얼굴 말고도 교미하는 멧돼지, 거꾸로 뒤집힌 큰 고래, 고래를 부위별로 나눈 그림, 어딘가에 갇힌 짐승 따위를 한 무더기로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선명하게 새겨진 사람의 얼굴은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잡아당겨 크로즈업한 것처럼 또렷이 보인다.
얼굴의 전체 윤곽은 팽이모양의 삼각형이다. 눈썹과 코가 유별나게 길고, 눈은 크다. 얼굴의 윤곽이 역삼각 구도여서 턱이 뾰족하게 보여야 마땅한데, 결코 턱이 빈약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무슨 까닭일까.
귀는 왼쪽 하나만 달랑 새겼다. 수염도 적당히 자랐고 아무래도 이 얼굴은 범상치가 않다. 그러고 보면, 얼굴의 주인공은 태화강 유역에 모여살던 청동기인 집단의 우두머리쯤으로 여겨도 좋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흔적은 반구대 바위그림 곳곳에 나타난다.
일례로 바위그림에 등장하는 수염고래는 오늘날에도 잡기 힘든 덩치 큰 사냥감이다. 이런 동물을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잘도 잡았다. 여럿이 떼지어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림에 보면 어찌어찌 어려운 역경을 딛고 고래를 잡아 부위별로 나누었다는 것인데 우두머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혹은 고래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보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바위에는 교미하는 멧돼지 그림 등과 같이 풍요와 생식을 기원하는 그림들이 많아 이곳을 제의장소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 잡다한 그림 가운데 의연하게 자리한 이 수염난 얼굴을 부족 우두머리, 혹은 샤먼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보통 수염을 비롯한 남성의 털은 힘을 상징한다. 거기에는 남성다운 힘과 지배자의 권력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털이 많기로 말하면, 경북 경주시 석장동 금장대 바위그림의 얼굴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물체의 생김새를 바위에 새긴 물상암각화들 사이에 사람얼굴 열 여섯이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얼굴에 털이 돋아난 인물상은 둘이다. 길게 생긴 이등변 삼각형 얼굴에 삐죽삐죽 돋아난 털을 새겨넣었다.
이등변 삼각형이 오므라드는 머리쪽에 동그란 구멍 두 개를 뚫어 눈을 표시했다. 요귀도 물리친다는 벽사의 눈이다. 머리에 털이 난 얼굴은 바위벼랑 위쪽에 배치하고, 머리털을 아예 새기지 않은 민대머리 얼굴들은 아래쪽에 두었다.
그렇듯 위 아래의 서열을 분명하게 가른 금장대 바위그림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종속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벽사의 눈을 하고, 털까지 금장대의 다모증 인물상 역시 당시 청동기인들이 마음먹고 일부러 표현한 샤먼이자 우두머리인 것이다.

바위그림에 나타난 여성은 또 어떠한가. 위에 언급한 금장대 바위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역시 풍요와 다산의 뜻에서 여성의 생식기를 크게 드러낸 그림이 있다.
기다랗게 역삼각형을 새긴 뒤에 한복판에 세로줄을 긋고, 그 줄의 중간쯤에 구멍 하나를 뚫어놓은 방식으로 여성의 성기를 대담하고 또 전혀 에로틱하지 않게 표현해놓았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정교한 조각을 새길 도구가 없어 그랬을 수 있다.
허나 자기 캐릭터가 분명한, 개성이 세상을 뒤흔드는 시대에도 이들만큼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힘드니 그냥 하찮게 보아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대 미술 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어 소개한다. 경남 합천 반계리에서 나온 이른바 인면문마령이다.
남녀의 얼굴로 꽉 채운 청동제 말방울 한 쌍인데, 달랑달랑 소리를 낼 심을 집어넣느라 일부러 터 놓은 입이 마냥 돌아가 웃는다.
이 또한 요즘의 세밀하게 묘사된 캐릭터 못지않은 매력을 풍기니 눈여겨보기 바란다.

 

글_황규호, 전 서울신문 대기자
 


기보15...암각화...37 漢象 14 呼 장

 


경남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
길다란 역삼각형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경북 경주시 석장동 금장대 바위그림에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인물상.

 


경남 합천 반계리 가야시대 무덤에서 나온 얼굴모양의 말방울.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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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db 2002년 7 8월호 (180호) 첫페이지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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