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db Home > designdb 잡지 > 180호

story-line 4
기보十六... 楚馬 十三

마트로슈카(Matryoshka)_ 러시아를 담는 무한수열 캐릭터

어머니의 어머니는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낳고...

오뚝이처럼 생긴 목각인형, 마트로슈카(Matryoshka). 뚜껑을 열면 똑같은 모습의 인형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 특이한 인형의 유래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나라가 그러했듯 19세기 러시아는 격변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보면 뒤늦게 근대화의 물결에 참여하긴 했지만 농촌을 중심으로 여전히 농노제의 전통이 뿌리깊게 남아 있었고, 이와 반대로 도시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혁명의 움직임이 싹트고 있었다.
사상적으로는 19세기 민족주의의 영향 아래 도스코예프스키, 러시아국민악파 등 문화 예술적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던 시기였다.

‘마트로슈카(Matryoshka)’라는 말은 러시아 여성 이름의 하나인 마트료나의 애칭으로 어머니를 뜻하는 ‘마티’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하나의 인형 안에 같은 모습의 인형이 차례로 포개진 형태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농경 사회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보통은 3~12개의 인형으로 이루어지지만 경우에 따라 60~70개의 인형이 겹쳐진 길이 1m 이상의 슈퍼 마트로슈카도 볼 수 있다. 형태 또한 전체적으로 매끈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어 여성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반영한다.

정확히 언제 처음으로 마트로슈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1890년대 말 Children’s Education이라는 러시아의 한 공예품 가게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S.V. 마류친이라는 러시아 화가가 처음으로 제작했다는 설, 혹은 모스크바 교외인 아브라무츠에보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대부호 마모토프 집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의견 등이 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것은 러시아의 오랜 목공예 전통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마트로슈카는 나무로 부활절 달걀 모양의 공예품을 만들던 러시아 전통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 무렵 러시아로 건너온 일본 인형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널리 공인된 사실이다.

처음에 만들어진 마트로슈카는 순전히 아이들 장남감을 위한 것이었다.
초기에 정형이 잡히지 않았던 시기에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형태가 존재하였지만 곧 현재와 같은 오뚝이 모양으로 굳어졌으며 러시아 내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로 지방의 공예품 장인 길드를 중심으로 발전해오던 마트로슈카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장난감으로 시작된 이 인형은 그 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품으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미술의 한 장르가 되면서 당대의 내로라 하는 러시아 미술가들이 너도나도 마트로슈카 제작에 손을 댔으며 기법에 있어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유명한 장인이 만든 마트로슈카는 귀족이나 부자들만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가 계속되면서 마트로슈카는 점차 대량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였다. 하나하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줄어들었으며 소재 또한 현대화되었다.
특히 모스크바 근교의 세르기예프, 바사트 등에 세워진 공장들은 싸구려 마트로슈카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속 공예품으로서의 마트로슈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좀더 다양해졌다고나 할까, 현대의 마트로슈카는 값싼 관광품에서 최고급 예술품까지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는 전천후 민속 공예품이 되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질 경우 마트로슈카의 작업공정은 매우 까다로우며 특히 자고르스크, 키로프, 칼리닌, 고리키 등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하다.
제일 좋은 재료로는 라임나무와 자작나무를 꼽으며 일일이 조각하고 그림을 새기고 변색을 막기 위해 굽는 등 총 15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마트로슈카가 탄생한다.
특히 안쪽에 들어가는 1~2센티미터 길이의 작은 인형을 만드는 데는 정교한 솜씨가 요구된다. 이 중 어떤 과정에서도 치수를 재거나 측정하는 일은 없다.
모든 공정은 장인의 눈대중으로 이루어지며 ‘이만하면 되었다.’하는 직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트로슈카에 그려지는 가장 전형적인 그림은 러시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아니 있었던) 부인의 모습이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앞치마를 걸친 이 부인은 보통 손에 곡물 다발이나 닭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러시아 특유의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부인의 모습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풍요로운 기원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트로슈카의 소재는 다양해졌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나 민담의 장면 등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내용은 물론 대중가수 및 정치가 등 정치적 격변기인 80~90년대에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등 최고 지도자들의 마트로슈카가 인기를 끌었었다.
최근에는 러시가 국민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푸틴 마트로슈카 역시 눈에 자주 띄는 소재이다.
이럴 경우 마트로슈카는 민감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은 물론 대중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미국의 클린턴이나 부시 대통령, 비틀스 등 외국의 유명인사들도 등장하며, 월트 디즈니, 사우스 파크와 같은 만화 캐릭터도 인기 있는 소재이다. 속된 말로 마트로슈카의 소재로 등장하지 못한 인물은 러시아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어떤 그림이 그려지던 그것이 러시아의 민속 공예품 마트로슈카임을 몰라보는 사람은 없다.
즉 하나의 캐릭터로서 마트로슈카의 정체성은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식과 소재의 자유로운 만남, 이것이야말로 러시아 인형 마트로슈카가 가진 생명력의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문화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담을 수 있는 민족의 항상된 그릇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문화적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다.

 

글_박활성 기자
 


기보16...마트로슈카...1 楚馬 13

 

 

designdb잡지 목록으로 가기designdb 메인화면으로 가기
designdb 2002년 7 8월호 (180호) 첫페이지로 가기
db note
동양의 고전놀이 장기판 위에서 벌어지는 옛 캐릭터들의 한 판 승부
prologue
漢이 열 일곱 수로 승리할 때까지
등장캐릭터 소개 및 역할
특집 : 캐릭터열전 story-line 1
꼭두각시놀음, 나무로 깎은 우리의 모습
손오공, 천궁에서도 자유롭고, 진경만큼이나 매혹적인 캐릭터
장승과 벅수, 만 가지 이야기를 품은 마을 지킴이
에마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일본의 캐릭터 전통
특집 : 캐릭터열전 story-line 2
허수아비, 미소와 조롱을 넘어서라!
마네키네코, 복을 부르는 고양이 캐릭터로 살아 남다
미인도, 옛 그림 속에 나타난 한국의 여성
특집 : 캐릭터열전 story-line 3
천계의 상들, 극락 위계질서에 따른 불교 캐릭터
산해경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만남
시바, 세상을 채우는 신의 몸짓
특집 : 캐릭터열전 story-line 4
신라 토우, 캐릭터로서의 미학적 가치
암각화, 최초의 캐릭터
마트로슈카, 러시아를 담는 무한수열 캐릭터
epilogue
다시 앨리스로 돌아가...
yellow page
주 註 / 도움주신 분들 / 참고사이트 / 참고도서
db news
진흥원 뉴스
db plus
2002 [IDEA] 심사 후기...멋진 한국, 새로운 디자인 파워하우스
조회수 : 1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