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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과 벅수. 이것들만큼 미욱하게 생긴 것들이 또 있을까. 오죽하면 “벅수같이 멍청하게 서있다.”라고
했을까. 신(神)은 신이되 가장 인간을 닮은, 그래서 신격(神格)과 인격(人格)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들. 가장
친근하지만, 또 그만큼 가장 미더운 것들. 그것들이 장승과 벅수이다. 제대로 된 전각 하나 없이 그저 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장승과 벅수인지라, 그 기원과 계통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지방에 따라 서울 근교에서는
장승, 삼남지방에서는 벅수라고 부른다고 하고, 또 다른 설명으로는 벅수란 선인(仙人) 법수(法首)의 상(像)을 나타낸
것이고, 장승은 이러한 전통이 신라시대 노표(路標)로 쓰였던 장생(長生)에 얼굴이 새겨지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참고로 조선시대 중종조의 찬수관이었던 이맥(李陌)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라는 책을 보면
선인 법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곰 무리와 범 무리가 서로 다투던 옛날 환웅 천황께서 아직 군림하시기
전...봉황은 날아들어 백아강(白牙岡)에 살고 선인은 법수교(法首僑)로 오고 갔으니 법수는 선인의 이름이다.”
좀더 거슬러올라가는 설명으로는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솟대나 선돌(立石), 혹은 남근 숭배의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이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들의 이런 어리석은 설명과 무관하게 그들은 그저 길가에 무심히
서있다.
이러한 장승과 벅수는 마을 어귀에, 혹은 사찰의 입구에 서서 마을을 보호하고, 방위를 수호하며, 산천을 비보하고 더
나아가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을 보호한다고 해봤자 산신(山神), 서낭신, 용왕신 등 마을을 지키는
상위신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하위신에 지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부처님, 보살님, 사천왕 등 내노라 하는
신들이 지키고 있는 사찰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그저 그곳에 서있는 것이다. 그렇게 멀뚱한 것들에게 마을의
초입을 내맡긴 사람들이라니. 그렇게 무던한 것들이 백성이고 장승, 벅수이다.
무서우면서도 인자한 모습. 이것이 이들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일단
생김새를 보면, 천하에 이렇게 못난 것이 따로 없을 것같이 생긴 것도 있는가 하면, 곱상한 것이 꼭 기생오래비 같은
것도 있다. 또 대개는 얼굴만 툭툭 깎아내어 만든 것들이지만, 문,무인석 뺨칠 정도로 공들여 만든 것도 있다. 크기도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것은 사람 키의 두세 배가 넘는 장승이 있는가 하면, 어른 허벅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이를 장승, 벅수라고 통칭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 못난 것들에게 변변한 이름이
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보통, 장승이나 벅수의 생김새를 한국인의 얼굴, 조금 더 감상적으로는 민초들의 얼굴이라고들 한다. ‘퉁방울 같은
눈, 주먹 같은 코, 반은 썩고 그 나마 성한 것은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이, 귀밑까지 찢어진 입([장승과 벅수],
김두하, 대원사, 1991, p8.)’이라는 애정어린 묘사에는 이것이 한국 민중의 얼굴이라는 속내가 들어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과연 이것이 한국인의 얼굴인가? 흔히들 하회탈을 한국인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하회탈과 장승, 벅수의 얼굴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하나는 양반의 얼굴이며, 또 다른 하나는 평민, 아니면 그보다도 못한 천민의 얼굴인가? 확실히 장승의 얼굴에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나를 해치려 하지 않고, 나의 소박한 믿음을 의탁해도 좋을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이를 굳이 한국인의 얼굴이니, 민초의 얼굴이니 하며 끌어댈 필요가 있을까?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충분히
우리에게 친근하며, 또한 사랑스럽다. 별 재주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돌을 쪼아내고, 나무를 깎아내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것들은 생김새와 상관없이 우리의 것이고, 백성들의 것인게다.
따지고 보면, 장승, 벅수도 불상, 보살상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像)이다. 물론 각각에 투영된 믿음의 차이는 엄청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눈과 코, 입, 귀가 달린 존재로부터 위로받고자 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선돌과 같은
추상적 형태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 자신의 하소연을, 억울함을
보다듬어 줄 수 있는, 굽어내려다 봐주는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뭇짐을 지고서, 보따리를 머리에 얹고서
마을 앞을 오가며 그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자신들의 속내를 늘어놓았을 것이다.“이 못난 것아, 내 말 좀 들어봐라.”하고
말이다. 돌아서면서 그 못난 것에 고개 숙일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만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못난 것들.
마을 입구가 어디인지, 동구 밖이 어디인지 도대체 알 수 없게 된 요즘, 이 못난 것들은 그나마의 쓸모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아쉬운지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 장승이며 벅수를 세운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우상숭배’라며 열심히들 잘라내는
모양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이 모시는 그 지고한 신(神)과 이것들은 급수가 벌써 다르다. 장승이니 벅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전염병을 막고, 그저 마을에 흉한 일이 들지 않게 하는 것 뿐이다. 세상을 창조해냈다는 신을
믿는 자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너무나 낮은, 너무나 못생긴 것이 장승이고 벅수인 것이다.
사진_이일섭 글_양효경.MBC 문화부 기자
홍선미씨、 길을 걷다 장승을 만나다
세상이 온통 월드컵(World Cup)이다. 그 잔(Cup)에서 흘러나온 축제의 열기에 취한 사람들 속을 표표히
헤치고 걷던 나, 대퉁대퉁한 커다란 눈알 여섯 개와 딱 마주쳤다. 월드컵 메인프레스센터가 설치된 COEX 건물 앞에
장승 세 척. 대관절 언제부터 그곳에 몸붙이고 있었는지 모를 노릇인데, 잠깐 다리 쉬어갈 겸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나...............날씨가 꽤나 더워졌지요?
장승1..........글쎄, 저희야 워낙 무딘 체질들이라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나
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나 보다 할 따름입지요.
나...............그거 참 부러운 경지네요. 아마 장승분들에겐 장승的 퍼스낼리티라는 게 있나 보죠, 나무색깔로
봐선 생긴 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저도 이 근처 살지만 처음 뵙거든요.
장승2..........맞습니다. 여기가 아마 월드컵 기자들 본부쯤 되나 본데, 그 앞에 뭔가 한국 전통적인 상징물을
두어두고 싶었나 봅니다. 사실 저희들로선 이렇게 번화한 대로변에 서있는 게 다소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한 일입니다.
흠, 흠.
나...............어이쿠, 수줍은 장승이라니, 전혀 뜻밖인 걸요. 세 장승분들 생김새도 제가 익히 보아온
장승분들과는 달리 꽤나 익살스럽고 젊은데요?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한 몇년 전까지 저희 학교 운동장 어귀에 서있던
장승분들은 꼬장꼬장 마른 데다가, 표정도 어찌나 험상궂은지 지나다니면서도 격의없이 말 붙이긴 좀 무서웠다구요.
장승3..........저희 장승계에도 몇 년 전부터 퇴출 바람이 불고 있어서 말입니다. 예전의 근엄함이나 뻣뻣함만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 사는 모양이나 심성이 많이들 변했으니까요. 요즘은 웃는 상을 하고 있는 친근한 장승,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키높이를 낮춘 미니 장승, 12지신이라든가 유명인의 얼굴이라든가 이렇게 자기 분야가 확실한
장승이 인기랍니다. 뭐 지방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이야 그럭저럭 자리보전을 하신다지만, 새로 태어난 젊은 장승들로선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지요.
나...............늘 한결같은 표정을 하고 계셔서,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무래도
옛날 장승님네들과는 작업환경이나 일의 성격이 다르긴 하겠어요. 아스팔트 보도에,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차소리에, 바쁘게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그래도, 묵묵히 서 계시는 세 분 장승을 뵈니 갑자기 숨쉬기가 좀 낫네요.
장승 일동.....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희야 그런 보람이 제일 크니까요.
나...............그럼, 욕들 보시구요. 대화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헤어졌다. 당신도 만약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고 느껴진다면, 어느 흐린날
오후나 술취한 밤에 삼성역 근처를 지날 적에 이들을 만나보라. 서글서글하고 무던한 젊은 장승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세상이 조금쯤은 참을만해질지도 모른다.
글_홍선미(필명),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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