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 수와 인간의 새로운 중개자

존재의 흔적, 혹은 부재의 탐구

External Measures는 키네틱 조각 혹은 ‘살아 있는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인터랙티브 설치물 시리즈다. 투사된 이미지의 위치, 움직이는 속도, 형태 등은 관객의 머리 위에서 관객의 움직임과 위치를 추적하는 카메라가 보내주는 신호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독특하고 역동적인 드로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관객들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어떤 힘의 양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반응이 아주 빠르게,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구성이 얼마나 복잡한가, 어떤 그래픽 요소가 생기는가는 공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카미유 우터백(Camille Utterback)이 주목하는 것은 이 데이터와 관객의 움직임의 관계, 즉 컴퓨터 알고리듬과 인간의 제스처 사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춤’이다.
처음 작품을 접하면서 작품과 ‘내’가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실험해보던 관객은 어느새 자신의 움직임을 스스로 ‘안무’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동시에, 화면 속에 그려지는 형태와 양상은 관객이 자신의 움직임을 ‘측정’하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사람의 움직임을 기하학적 형태로 바꾸어 보여주는 충실한 ‘번역자’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그려지는 흔적과 이때문에 지워지는 흔적을 통해 ‘존재와 부재’에 관해 질문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끊임없는 흔적 만들기’는 결국 그들 존재의 흔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게 만든다. 존재의 흔적이 되는 회색 선이 개성 없는 회색 선들이 엉켜 붙은 실타래로 바뀌면서 어느 순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부재’에 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열거’에는 대상을 설명하는 기능과 그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고 언급했던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카미유 우터백은 뉴욕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이자 프로그래머로, ‘인터랙티브 설치물’을 통해 현실 세계와 가상의 세계, 물리적 세계와 상징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www.camilleutterback.com

External Measures(사각형)과 (원) , 2001 External Measures(사각형)은 프로젝션의 형태가 사각형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선의 개수와 방향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푸른색의 기하학적 형태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잡히며, 컨트롤 포인트가 되는 Bezier 곡선과 형태는 사람들의 수와 움직임에 연결되어 있다. 공간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모여 있는가는 밝은 회색의 흐릿한 윤곽의 픽셀로 나타난다. External Measures(원)은 프로젝션이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상을 트래킹한 것은 여기에서 보라색의 음영으로 나타나며 사람들이 움직임에 따라 작아지거나 커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듯한 붉은 선은 흥분한 고무 밴드처럼 휘거나 툭 끊어지기도 한다. 수평의 검은색 선은 역동적인 붉은 선과는 대조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직선으로 배열된다.

External Measures 2003 관객은 우선 천천히 흐르는 회색의 선들로 가득한 프로젝션과 마주하게 된다. 머리 위에 설치된 카메라가 공간 속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면, 그의 몸에 반응하는 검은색 영역이 회색으로 가득한 피드에 구멍을 만들기 시작한다. 회색 선이 이 구멍, 즉 '부재의 영역' 을 건드리면서 화려한 컬러로 바뀌게 된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이 화려한 컬러의 선들이 움직임의 궤도를 요약해 보여준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화면의 영역이 지워지거나 바뀌게 되며, 그들의 움직임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새로운 흔적을 만들어 나간다. 긁힌 듯한 흰색 선은 사람들과 그들 각자의 출발 지점을 연결해 보여준다. 갈색과 검은 색의 낫 자국같은 선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그려 보여준다.

Interview with Camille utterback

어떻게 예술과 프로그래밍, 그리고 양자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가?
프로그래밍은 사람들이 어떻게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어떻게 그것과 인터랙션하게 할까에 대한 룰을 만드는 작업이다. 디지털 미디어로 작업을 하기 전, 나는 사람들을 참여하게 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례로 35개의 병에 화장품을 비롯해 미용에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것들을 집어 넣고 핑크색 왁스로 병을 밀봉해, 섬세한 조각으로 만들어본 적이 있다. 마치 스노우 글로브처럼 위아래로 흔들어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소위 ‘화장’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성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를 어떻게 ‘준비시키는지’를 생각해보길 바랬다.
1990년대 초 나는 CD-ROM을 보면서 사람들을 위해 이런 종류의 버추얼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뉴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하게 된 건 이 때부터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물리적 세계와 상징적 세계 사이의 공간을 탐구하는 데에 유독 집중해 온 것처럼 보이는데.
실재와 상징 세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상호작용은 우리 인간을 동물들과 구분지어주는 요소 중 하나다. 동물들은 단순히 물리적 세계에만 머물러 있으며, 그들에게도 감정은 있지만 언어나 추상적인 사고는 없다.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사고의 추상적인 왕국으로 너무 쉽게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먹거나 씻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우리가 동시에 이 두 세계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나는 생각하며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키보드를 두드리기 위해서는 내 통통한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고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몸을 빠져나가 기계에 우리의 의식을 집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흔해 빠진 환상 중의 하나지만, 설사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기계 속으로 들어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불러야 할 것이다.

당신의 작업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데,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기를 바라나? 그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관객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작품을 ‘즐기고’ 발견하기를 바란다.
우리 세계에서는 어른들이 ‘탐색할’ 공간이 거의 없다. 나는 나의 모든 작업에서 사람들이 탐색하고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레이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령 가장 단순한 단계로, ‘이 공간이 내 몸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 때, 작품의 ‘반응’과 사람들의 행동 사이에서 ‘대화’가 만들어진다. 인간과 작품 사이에 작은 ‘춤’이 생겨나는 것이다.
각 작품들은 또한 서로 다른 컨텐츠를 가지고 있다. ‘External Measures’에서는 알고리듬적 드로잉과 인간의 제스처 사이의 긴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신의 움직임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동시에 당신의 흔적을 계속해서 지워나간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정체성에 관한 탐구이다. 우리는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관객들이 내 작품을 ‘즐기기를’ 바란다. 내 작품에 참여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며, 친구를 끌어들이기도 하는 사람들을 봐왔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이 있다면 누구인가.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좋아하는 작품이 바뀐다. 최근에는 칼더(Caler)와 몬드리안 같은 고전적인 모던 아티스트들에 대해 생각해왔다.
나는 칼더의 모빌이 특정한 공간에서의 기후나 움직임에 따라 어떤 리듬, 어떤 구성을 만들어내도록 디자인되어 있는가를 흥미롭게 보아왔는데, 짐작하겠지만 이는 내 작품과도 관련이 깊다.
몬드리안의 작품에서는 수평, 수직의 선들과 한정된 컬러 팔레트를 이용해 그가 스스로에게 어떤 변수들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즐겁다.

수와 디자인, 수학과 디자인학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수학과 관련이 있지만,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반드시 수학을 잘 하거나 수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이 추상적인 수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비례와 구성 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을 이용해 어떤 형태를 그릴 때 흥미로운 것이라면, 일단 그려진 어떤 형태를 기반으로 변수를 바꾸거나 변수를 다른 것에 붙여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글_김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