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power of korea

스타일, 그리고 드라마

지난 7월 7일자 비즈니스위크는 2003년 디자인상을 발표했다. 삼성이 올해도 금상 하나와 은상 두 개를 탔다.
이 디자인상에서 지난 5년 동안 삼성은 애플에 이어서 두 번째로 상을 많이 탄 기업으로 꼽혔다. 처음에 삼성은 포르세 같은 곳에 의지해 상을 탔지만 올해 금상을 받은 LED TV는 사내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다.
우리 손에서 만들어진 디자인들이 상을 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지난 5년 동안 애플이 19개 삼성이 18개 그리고 IBM이 15개의 디자인상을 타서 종합 2위를 차지한 셈이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애플과 IBM의 사이에 선 삼성의 모습이 단순하게 자랑으로만 느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애플과 IBM은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삼성은 아직 이렇다 할 자신의 <스타일>을 세우지 못했다.

지난 해 뉴욕에 들렀을 때 맨하탄의 곳곳에는 커다란 ipod 광고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우리는 보자마자 그것이 애플의 제품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에 걸려진 그 커다랗고 하얀 광고에 애플의 로고가 쓰여져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우리는 그것이 애플의 제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스타일>의 힘이다.
상점의 진열대에 올려진 수 많은 LCD 모니터나 핸드폰들에서 제조회사의 심볼마크나 로고를 지워도 그것이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제품들은 이런 경지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으며 삼성은 이런 측면에서 기대치가 더욱 올라가는 위치에 있다.
만약에 <스타일>의 측면에서 점수를 준다면 삼성은 이 디자인상에서 OXO나 TARGET에게서 조차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몇 년전 우리는 하노버 메세에서 열리는 IF 디자인상 전시장에서 삼성을 발견하고 자랑스러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삼성이 <스타일>을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
<스타일>은 <시나리오>이며 <컨셉>이다. 상점의 진열대에 올려진 수많은 제품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시나리오>의 한 페이지를 모두가 똑같이 외쳐대는 모습을 하고있다.
오늘의 제품들은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품은 <드라마>여야 한다. 그렇지 안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세상은 어디를 가나 넘쳐나는 상품들로 북새통이다.

지난 달 딸아이가 혼자서 컴퓨터 쇼핑에서 ipod를 구입했다.
실제품은 사진보다 좋았다. ipod는 녹음이나 방송기능이 없었지만 그들의 <시나리오>에는 작품의 성격상 이런 장식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적과 본분을 지켰고 절제를 통해 품위와 고집을 세웠다.
딸아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ipod의 구입비용에 대해 이런저런 장점을 들어 타당성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ipod는 독특한 <드라마>가 있는 제품이었다. 딸아이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상점의 진열대에 올려진 수많은 제품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시나리오>의 한 페이지를 모두가 똑같이 외쳐댄다.
Copy & Paste.... Copy & Paste..... Copy & Modify.... Copy & Copy.......

우리는 서로가 다르지만 서로가 다른 머리 속에는 누군가가 잘 섞어서 넣어준 통념이라는 콘칩들이 들어있다.
우리 모두의 머리 속에는 어쩌면 다섯 가지도 안되는 콘칩들이 어지럽게 채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디어를 짜낼 때 이들이 섞이면서 랩을 한다.

"모토롤라, 펜텍, LG.... 다 좋아, 오-예... 다 좋다니까...
그 버튼 모양 이리로...다시 한번 비틀어서 그 버튼 저기로, 됐어, 됐어---,
오마이갓---, 손잡이?? 손잡이? 몰라, 싫어----,
이걸로 다시 COPY--- COPY----"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우리의 간판 기업들은 이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는 초기의 아반테에서 한국의 정서를 담은 <스타일>을 마련하는 듯 하다가 길을 잃었다.
삼성은 세계 시장을 재패한 핸드폰 모델을 입체로 만들어 드골공항의 광고탑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 광고탑은 맨하탄의 ipod 광고와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맨하탄의 ipod는 외친다.
"MY NAME IS APPLE!!"
드골공항의 핸드폰은 외친다.
"MY NAME IS NOBODY"

AUDI는 최근에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NEW A6에서 시작된 AUDI의 <스타일> 만들기는 TT를 거쳐 A4에 이르면서 확실한 <컨셉>을 세상에 심어주었다.
97년 프랑크푸르트의 출장에서 처음으로 호텔의 주차장에 서 있는 A6를 보고 나는 마음속에서 BMW의 3시리즈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TT를 본 순간 나는 또 A6를 지워버렸다.
나의 주머니 사정이 평생토록 TT를 살 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TT가 나오면서 BMW의 3시리즈는 졸지에 <기성품>으로 전락했다. TT는 3시리즈가 생각하지도 못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뉴욕 출장 때 소호의 주차장에는 마치 나의 요청에 의해 준비된 것 같이 TT와 3시리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우리 둘을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선택하세요.. 당장 살 돈은 물론 없겠지만.... "

글_구성회(프론트디자인 대표)
 

애플(apple)사의
ip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