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1세기와 함께 찾아온 디자인 전성시대

최근 신세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연예인 못지않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회조사 결과는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처럼 디자인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이야기로 들립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이미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는 연구중심의 과학영재 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근년에 이르러 우수한 학생들이 산업디자인학과에 몰리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훌륭한 디자인은 과학과 예술의 결합체라고들 합니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지은 책처럼 이제 ‘디자인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Invention by Design)’가 되어가는 걸까요?
최근 박인석 씨가 펴낸 디자인 에세이집 [디자인,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제목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비춰볼 수 있다는 것은 디자이너야말로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을 정확히 보고 그 속에서 문제해결의 길을 찾으려는 지적 호기심과 성실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하나의 학문적 틀로 갖추어나가기 위해 더욱 많은 연구와 새로운 방법론이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여 새로운 이론과 결과물들을 제시하는 연구자들이 많아져야 더욱 풍요로운 디자인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디자인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의�식�주라고 배워왔습니다.
추위나 더위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해 입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렵과 경작을 하고, 무서운 맹수와 적으로부터 또는 자연의 재해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짓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자신의 멋과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멋진 옷과 좋은 집을 선택하고, 더욱 분위기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즉 디자인된 옷을 입고, 디자인된 음식을 먹고, 디자인된 집에서 사는 것이 이제는 보다 중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디자인의 시대입니다.
패션잡지는 이미 패션디자이너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멋내기 좋아하는 둘째 아들과 막내딸, 그리고 로맨틱하고 중후한 멋쟁이 할아버지도 즐겨보는 세상이니까요.
요리잡지 역시 요리전문가만이 읽는 시대가 아닙니다. 요리솜씨를 자랑하는 엄마는 물론, 식도락을 즐기는 아빠나 고명한 선생님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 잡지도 더 이상 디자인 전문가만을 독자층으로 고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디자인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디자인 잡지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듯한 세상입니다. 특히 디자인 산업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라도 디자인이 대중 앞에 바짝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그렇다고 모든 디자인지가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때에 새롭게 변신한 [디자인 디비 designdb]에 바라는 소박한 기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평소에 ‘디자인’이라는 일반명사를 쉽게 입 밖에 꺼낼 수 있도록 일반인들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잡지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대 곁에만 서면 주눅들어 나를 작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잡지는 되지 말아 달라는 것이지요.

올 가을에는 우리나라 디자인계가 무척 분주해질 것 같습니다.
디자인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산업디자인대회와 이제 세계적 규모가 된 제5회 아시아 디자인학술대회에서는 17개국에서 2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건국 이래 처음 맞이하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으며, 비전문가나 인접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화의 시대로 예견되는 21세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디자인을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보다 개성적이고 감성적이며 창의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문화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디자인 범국민운동본부라도 하나 있음직 하지 않을까요?

글_김명석(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아시아디자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