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Ⅲ 서울을 다시 본다 seoul review

서울.지리정보시스템의.과제와.전망 / 지도 디자이너의 서울 유감

도시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쉰다. 그래서 도시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기 마련이다. 수많은 오토바이의 물결로 분주하게 아침을 여는 방콕은 언제나 번잡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느긋하게 노천카페에 앉아 햇볕을 즐길 수 있는 파리는 언제나 느긋한 듯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은 어떠한가.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하루 하루를 전쟁터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을 닮아서인지 계속 바쁘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정권의 정당성을 명분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급하게 무너뜨렸고, 늘어가는 도시인구를 수용한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서둘러 건설했다.
거품경제로 갑자기 부자가 된 기업들은 그 규모를 과시할 사옥이 빨리 필요했고, 거품이 꺼지자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시 한 번 이 도시는 급히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그래서 어제의 옷가게가 오늘은 식당으로 변하고 오늘의 서점이 내일은 치킨집으로 바뀐다. 10여 년 만에 찾은 파리의 길모퉁이 꽃집이나 빵집은 그대로 있는데, 단지 열흘 동안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면 세탁소가 피자집으로 변해 10년이 넘게 살아온 나를 낮선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지난 역사의 아픈 기억을 지워가며 기형적 확장을 거듭하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종종 지도제작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한 장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하기도 전에 다시 서울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끝없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도 디자이너로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은 600년, 아니 그 이상의 오랜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임에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외관은 급격하게 정체성을 잃었지만 그 내면에 흐르는 문화는 질곡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도는 위치를 찾기 위한 정보가 담겨져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리정보]는 그런 기초적인 정보 이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원래 지리학이란 “지리와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만들어 내는 과학으로 땅과 바다, 하늘에 대한 표현이자 식물과 동물, 인간 사회와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산업에 대한 표현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제3의 눈이 되어주는 [지리정보]는 단순히 지형, 지물에 대한 이해를 넘어 보다 풍부한 정보의 관계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쉰다.”

정보, 기록과 전달에서 이해로

인류는 이미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부터 주변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도는 ‘정보’를 주어로 한 디자인 행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방법일 것이다.
지금 디자이너는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를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전달한다고 해서 이것이 모두 대중들에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체계는 정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구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해가 동반되지 못하는 체계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이 정보를 이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 정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조직화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이해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해를 결정하는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정보와 함께 연상하는 의미나 패턴이다.
지도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 질서를 부여한 패턴이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시각적 질서가 부여된 지도제작에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지도제작에 있어서 디자이너가 그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 일반 대중에게 제공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는 기획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컬러나 서체가 선택되고 픽토그램이나 아이콘이 습관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디지털 복제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습관적 제작 프로세스의 양산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의 미궁도시 서울

올해는 ‘한국 방문의 해’이고 내년에는 ‘월드컵’이 개최된다. 물론 이런 국제적인 행사가 아니더라도 서울은 이미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1년이면 수백만 명의 외국인들이 서울을 찾아오고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서울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구의 1/3이 매일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제공되는 이 도시에 대한 ‘정보’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인천공항의 입국 로비에는 공항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표시된 지리정보시스템이나 제대로 된 사인보드 하나 없다.
그래서 처음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수많은 노선의 리무진 버스 정류장 앞에 망연자실해 서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역 광장과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설치된 지리정보는 새로 개통된 지하철 노선이 빠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지하철 노선도는 각 역이나 객차 안에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원래 있었던 노선도에 새로 개통되는 노선을 조금씩 추가하다보니 노선도 자체가 복잡하게 뒤엉켜버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조차도 땅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게 만든다.
버스 정류장이나 버스 안에 붙어있는 노선도는 더욱 가관이다. 지하철 등 다른 교통기관과 연계성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마을앞, 가게앞 등의 정류장 명칭은 그 버스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고궁이나 박물관 등에서는 내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컴퓨터 터치 스크린 방식의 정보시스템은 상상할 수도 없고, 아직도 페인트로 허술하게 그려진 조감도가 어설픈 기와를 이고 서 있다. 최근 각 정부 기관이 앞다투어 개발한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지리정보 역시 원하는 정보를 찾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서울은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낮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지리정보에 눈을 뜨자

앞으로 서울이 지리정보를 제공하는데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수없이 많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시급한 것들을 몇 가지 지적하면서 그 대안을 생각해보자.
우선 각 정부 부처간의 사전 협의나 정확한 통계자료를 바탕에 두지 않고 수많은 지리정보가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광공사, 각 구청은 각각 많은 예산을 투여해 서로 비슷한 내용의 지리정보를 다른 형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표현 방법이나 영문 표기 등에 일관성이 없어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리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지극히 제공자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 있다. 처음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이나 지방에서 서울을 방문한 사람은 종로가 어디에 있는지 명동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사용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 제공자 중심으로 지리정보가 제작되고 있어 결국 사용자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리정보는 단지 목적지를 찾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의 와인 맵은 각 지역의 와인 라벨로 만들어져 있고 미국의 풋볼 맵은 전국의 풋볼 팀 심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역사와 사람의 이미지를 가슴에 깊이 담아주는 정보다. 서울의 역사,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끈끈한 정을 지리정보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각각의 지리정보가 하나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가이드북과 맵이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제작되어야 하며 웹사이트와 같은 온라인 미디어는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정보의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거리의 사인 시스템이나 키오스크 역시 다른 지리정보와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서울이 가진 600년의 숨결은 마치 함께 살아온 이웃처럼 친근하게 전달될 것이 분명하다.

글 _ 김경균(시각디자이너, 정보공학연구소 소장)
 

요코하마 테마지도
‘칠복신을 만날 수 있는 절과 신사를 찾아서’. 칠복신의 특징을 형상화한 아이콘이 지도가 전하려는 정보를 단숨에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맨하튼 조감도.
아이소매트릭 도법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지도



프랑크 프루트의 미술관 안내지도 앞면. 뒷면은 미술관의 외관을 디자인에 응용한 각 층별 안내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