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Ⅱ 만화.애니메이션cartoon-Animation

SICAF 2001이 주목하는 이 작가, 이 작품

지난 8월 11일부터 19일까지 삼성동의 코엑스와 광화문 아트큐브, 정동 A&C에서는 국내 최대 만화·애니메이션 축제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Seoul 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이 열렸다.
각종 게임·애니메이션 캐릭터 모형과 국내 명랑만화 4세대를 보여주는 전시가 눈길을 끌었고 북한만화, 유럽만화전도 열렸지만,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올해부터 독립적인 행사로 치뤄진 영화제. 세계 21개국에서 출품된 총 285편의 경쟁작들과 80여 편에 달하는 세계적인 걸작들이 상영되어 상상과 꿈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감독상을 받은 [뮤턴트 에일리언]을 비롯해 이 행사에서 떠오른 감독과 작품을 소개한다. http://www.sicaf.or.kr

뮤턴트 에일리언 ___ 빌 플림턴 2001 80분 셀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를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플림턴의 최신 장편 애니메이션인 [뮤턴트 에일리언]은 그 이상의 자극과 재미를 보장해 준다.
작품을 통해 당연히 괴짜일 거라 상상하게 되는 플림턴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는, 그야말로 ‘독립 애니메이터’. [튠]을 만들 때에는 혼자 백그라운드, 스토리보드, 각본, 프로듀서,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등을 다 했다. 물론 그림도 모두 혼자서 그렸다.
하루에 300장 정도씩 뚝딱 그려내는 지독한 일벌레인 그에게 장편 애니메이션의 완성은 1년 반 정도면 충분하다. 그의 색채는 천변만화하는 형태들에 비해 단순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움직임과 형태를 생생하게 해주는 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갑자기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가 출현해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삼켜버린다.
거미처럼 긴 다리를 가진 개구리, 날개 달린 물고기, 악어 머리와 거대한 도마뱀 등 기묘한 형상의 에일리언들. 그리고 코와 눈들이 사는 행성과 우주선처럼 날아다니는 손... 이 상상을 초월하는 도발적인 상상력이야말로 [뮤턴트 에일리언]의 백미이다.
인간의 몸으로부터 코미디를 낚는 그의 최근의 실험은 바로 돌연변이 에일리언을 낳은 문명의 이기와 매스미디어, 권력에 향해져 있다.

오! 나의 여신님 ___ 코타 히로아키 2000 106분 셀/2D 컴퓨터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후지시마 코우스케의 [오! 나의 여신님]을 극장판으로 제작한 작품. 감독 코타 히로아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88년작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의 원화 등을 담당했던 애니메이터로, 1993년 [오! 나의 여신님]으로 인기감독으로 부상했다.
각 여신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완벽히 셀(Cell)화 하고, 여기에 성우들의 잘 어우러진 목소리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해낸 음악이 돋보인다.
모리사토 케이치라는 평범한 대학생과 미모의 여신 베르단디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이 애니메이션은 순종이 미덕인 동양여성관을 통해 90년대 최고의 히로인 ‘베르단디’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등장하는 울드, 베르단디, 스쿨드의 세 자매 여신은 노르딕 신화에 그 기초를 둔 캐릭터이고, 베르단디와 케이치 사이의 강제력을 유지시키는 컴퓨터 시스템 이그라드실(Yggradsil) 또한 신화에 나오는 온 세상에 가지를 뻗어나가는 생명의 나무를 지칭한다.
역시 [오! 나의 여신님]은 사랑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각색해 감각적 영상으로 내놓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기와 총체적인 캐릭터 산업으로 확장시키는 사업수완의 결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존재 ___ 이명하 1999 5분 40초 2D 컴퓨터

길을 지나던 개 한 마리가 비를 피해 바에 들어간다. 바 안에는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 한 마리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다.
술잔을 권하며 고양이를 위로하는 개. 이들의 대화는 개와 고양이의 대화답게 멍멍과 야옹으로 진행되고(감독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그 내용이 자막으로 처리되어 흐른다.
이 기발하고 독창적인 영상 속에는 감독의 존재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상대를 통해 부각되는 존재. 밝고 어두움, 시끄러움과 조용함, 개와 고양이라는 상대적인 존재, 또 그런 상대적인 존재가 한 사건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홍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온 이명하는 우연한 기회에 ‘태극기 사랑’이라는 공익광고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거기에 움직임을 주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평소의 낙서노트에서 탄생한 개와 고양이의 코믹하면서도 슬픈 이야기. 아마도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상에 대한, 그리고 일상으로부터의 섬세한 관찰력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오토 ___ 전하목 +윤도익 2000 5분 3D 컴퓨터

전하목과 윤도익은 “애니메이터는 머리는 공상가이고 몸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어야 좋은 작업이 된다”고 말한다. 이런 신조로부터 탄생한 [오토]는 올해 브라질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인 아니메문디와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시네픽스에서 일하고 있는 두 감독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오토메이션 시스템에 길들여진 인간의 행태를 깔끔하게 그려냈다. 아니, 오히려 그 부조화로 인해 다소 엽기적인 인상을 준다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자동항법장치를 탑재한 군용 관측기가 하늘을 부유하며 정보를 모은다. 할 일없는 앞좌석 조종사는 자고 있고, 뒤쪽의 관측실의 조종사는 지루해하고 있다.
그런데 지친 새 10여 마리가 날아와 비행기 날개에 앉고, 조종사는 오리 떼를 쫓아 보내지 못하자 약이 오른다. 최후의 수단으로 기관총을 난사해 쫓아내는데 그만 실수로 엔진을 맞추어 결국 비행기는 추락하게 된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앞좌석의 조종사는 자고 있다. 이 황당하기까지 한 결말은 자동항법장치를 단 비행기처럼 항상 정해진 틀 안에서 자동적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인간들과 직결되어 있다. 어쩜 그들의 추락은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하고 나하고 ___
정유진+김해정+이성희+이동재+박미선+김은수+이경하 1999 7분 2D 컴퓨터

이미 제 8회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경쟁부문의 본선에까지 오르는 기쁨을 누렸던 이 작품은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과의 학생 7명이 공동작업한 것.
엄마가 일을 마치고 외출을 한 사이, 혼자 남겨진 아이는 아빠의 손에 붙들려 성폭행을 당한다.
상처 입은 아이의 마음은 엄마의 자취가 남아 있는 환상의 공간 속으로 도망을 간다. 계부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온 한 아이에 관한 무겁고 끔찍한 이야기를 환상적인 장면들로 구성해낸 데에는 끔찍한 일상성의 배후에 숨어있는 모든 것들을 파헤쳐 보고자 한 야심찬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폭행당하는 소녀의 심리가 세심하게 고안된 장면들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무념무상한 일상을 대변하는 존재인 엄마는 특징을 생략하고 가능한 한 평범하게 표현했고,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자주 울어서 아이의 눈 밑에는 그림자가 져있다.
학생들의 작품이지만 그 주제나 영상에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수작으로, 이들의 앞으로의 작업이 기대된다.

글_편집실
 

뮤턴트 에일리언






오! 나의 여신님






존재






오토






아빠하고 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