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디자인

제가 아는 대학 2학년 남학생의 취미는 새로운 첨단기기를 모으는 것입니다.
한동안은 모바일폰에 심취해서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가슴 설레며 디자인이나 서비스의 내용, 내장된 컨텐츠의 질이 다르다며 새것을 구입하더니, 최근에는 PDA와 DVD로 관심이 옮겨 갔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용돈 쓰임새도 커졌고, 오로지 새로운 제품을 장만하겠다는 생각은 봉천동에서 성산동까지의 먼 거리를 불사하며 밤늦은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너무 벅찰 정도의 첨단기기들이 내일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고, 만족스러움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또 다른 개념의 제품이 마구 쏟아질 터인데, 이 욕망의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가는 것이 좋을지 짐짓 걱정이 되었습니다.

문화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신간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민음사 간)을 통해 ‘소유’의 시대가 지나고 ‘접속’의 시대가 왔음을 고했습니다.
상품의 주기가 짧아지게 되면 결국 소비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모두 경험할 수 없게 되므로 소유한다는 발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물론 ‘접속’의 시대가 몰고 올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우려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어쩌면 위에서 말한 남학생과 같은 모습은 물질문명이 몰고 온 가장 흔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매일 새롭게 나오는 신제품들은 눈이 번쩍 뜨이게 할만큼 매력적인 제품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벌고 모으고 쓰는데 관심이 집중된 소유 욕구 시대로부터 어떻게 즐겁고 뜻있고 보람있게 사느냐 하는 ‘삶의 질’이 중요한 초자본주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은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현대를 사는 인간은 자연환경 보다는 인공적인 환경에 의해 더욱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도시 그 자체에서부터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제품, 시각문화, 교통수단, 주거환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역이 이미 디자인된 사물의 군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이런 풍경에 지배당하며 끊임없는 상호교류를 통해 삶의 행복과 충만감을 느낄 수도, 그 반대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술관을 찾아야 하고,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공연장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디자인은 이런 영역과 같은 범주에서 그룹핑되는 또 다른 특정 영역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습니다.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즉 미술관을 찾아가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에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에 어울리는 의상을 챙겨 입고 집 앞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건물을 지나치고 입간판을 스치며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스쳐가는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세계들,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디자인의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디자인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동안의 좁은 그릇으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습니다. 디자이너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디비]는 장르에 구애됨 없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 없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상 문화를 소박하게 담아내는 그러한 책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재탄생의 의미와 온라인 designdb.com과의 연계성과 상호보완적인 형식을 이루는 새로운 개념의 잡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물질’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유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할 생각입니다. 머리 속의 생각을 형태로 올바르게 담아내기까지는 앞으로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지만, ‘디자인’이라는 화두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디자인디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꿈이 담긴 그러한 책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글_양난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