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일상 Design is Life

의자, 그 편안함에 대한 오해

20세기를 마감할 즈음 만난 한편의 영화 [matrix]는 몹시 마음을 심란케하는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그 현실, 진짜일까?” 라는 물음이었다.
키아누 리브스의 멋진 모습에 설레며 영화관을 나섰지만 이후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하는 의심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주변을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편하다고 믿고 있는 그 의자, 진짜 편한 걸까?”

바닥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공간에 몸을 기댈 수 있는 도구를 보통 ‘의자’라고 부른다. 바닥까지 앉았다 일어서기 위해 쓰고 있는 에너지를 반 이하로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의자생활은 편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개선된 생활 방식이라는 가치관을 담은 ‘입식생활’을 선호하고 그 중심에는 의자가 있다. 의자가 우리 주변에 편재하는 이유는 생활의 합리성과 효율이라는 기호 때문이다.

생활의 합리성과 효율을 지향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방향이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에 매인 개개인들의 삶에는 농축된 행위들이 필요했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먼 여행길을 떠나며 산전수전 다 겪어야 했던 때와 비교해 지금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까지 하루 이틀만에 다녀올 수 있는 농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밀도에서, 의자에 앉는다는 행위라고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의자라는 사물이 가진 의미가 편안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권좌에 앉았다’는 표현처럼 의자는 위계적 기호가 강했다.
물론 지금도 동일한 기호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사회이후 생산의 효율이 사회적 과업인 시대가 되자 의자는 의자를 생산하는 사람이나 혹은 의자에 앉아서 다른 무엇을 생산하는 양측의 사람들에게 효율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야만 했다.

의자를 생산하는 측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며 합리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의자를 생산’하는 것이 숙제였다. 이때 도입할 수 있는 것이 인체 표준 치수이다.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지만 이와 같은 노력은 우리 삶의 곳곳을 표준 인간형이라는 잣대로 마름질하게 하였다.
기성복을 파는 점원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어머 딱 맞아요. 그대로 입으시면 되겠네요.”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자신의 몸이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처럼 만족하기도 한다.

이처럼 ‘평균적 신체’를 고정시키고 나서는 인간공학적인 수치로 ‘표준 행동’을 마름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몸을 이상적인 상태로 꼿꼿이 고정시키고 평균적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의자에 앉을 때도 평균이라는 정답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하며 인간 공학적 바른 자세의 표준 편차 속에 자세를 고정하려고 노력한다(보통 이런 경우, 허벅지 근육이 좌석 끝에 눌리면서 다리가 붓게 된다). 획일적 기준 하나를 정하고 정답이라고 믿으며 사회의 효율을 기하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몸의 치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세와 필요 또한 너무나 다양하지 않은가?
흔히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곤 한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 “자, 고개를 왼쪽으로 아니, 그게 아니라, 턱은 약간 아래로 안경은 바짝 쓰세요.” 급하게 필요한 사진을 위해 15분만에 완성이 된다는 사진관을 찾아가서도 우리는 자세를 점검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증명사진 찍는 일을 아주 싫어한다. 결국 주눅이 든 얼뜨기나 화난 얼굴이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황에 따른 바른 태도 한가지를 상정하고 나서 우리는 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정진해온 것이다.

바르게 앉기의 기본은 허리를 S자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서있는 것보다 편하고 땅에 앉는 것보다 활동하기 좋은 상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의자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좌석의 높이가 40 -45cm가량이 되는 지금의 의자는 사람의 척추와 대퇴부가 약 90도 각도를 이루게 되어 있다.
이런 의자에서는 척추가 C자를 그리게 되는데 이런 자세는 오랜 시간의 작업을 방해한다. 여기에 허리를 S자가 되도록 받쳐주기만 하면 허리를 곧추 세우려는 쓸모 없는 근육의 노동이 감소되므로 ‘인간공학적인 의자’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작금의 현실 속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많은 의자들이 허리를 받쳐주는 S자 곡선을 그린 듯이 보이지만 등받이의 각도가 너무 뒤로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래 그림과 같이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경우, 등이 뒤로 기울면 머리의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목을 앞으로 쭉 빼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또 척추의 S자를 보완하기 위한 등받이가 목까지 이르게 될 때는 효력이 상실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발목 관절 90도, 무릎관절 90도, 고관절 90도를 만들어 앉기를 모델 삼아 편안함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좌석의 높이를 60 - 65cm로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갤런 그렌츠의 책, [의자]를 살펴보기 바란다. (김문호 역, 지호출판사)
지금처럼 좌석이 무릎보다 엉덩이를 깊숙하게 기울여 미끄러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걸터앉듯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퇴부와 척추사이의 각도가 120 - 135도를 유지하게 되며 마치 서 있는 것처럼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게 된다.
앉아있을 때가 서있을 때보다 30% 가량 더 척추에 압력을 받는다니 서있는 상태의 허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최상이 아닌가?

의자 치수의 변화는 식탁이나 테이블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존 의자에 맞는 책상의 높이는 75cm정도를 유지해 왔지만 의자에 걸터앉는 형식으로 자세가 바뀌면 책상도 높아져야 하고 윗면의 각도도 몸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럼 실내의 시각적 높이가 높아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다른 도구들도 치수가 변하게 된다. 우리의 환경과 도구들은 이렇게 매우 촘촘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의자, 그것은 다른 어떤 도구보다도 인간의 현대적 모순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보그를 창안해 냈던 인간의 역사는 자기 신체마저도 효율의 한계에 도전하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 최상의 조건을 고안해 내곤 했다. 몸을 몸만으로 놔두지 않고 도구와 접합시키고 확장시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예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목발이 있다. 한쪽 다리의 부족한 힘을 보충해주기 위해서이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에게 개념적이기만 한 바른 자세를 만들어 주고 거기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근육의 힘을 보충해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기계 미학을 찬양했던 20세기의 선조의 후예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 모든 것을 떠나 진정한 몸의 편안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방식으로든지 표준치수에 의해 행동이 마름질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이 한가지 고정된 자세로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몸을 다스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선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의 몸은 세상 모르고 자는 동안에도 조금씩 몸을 뒤척여 자세를 바꿔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자세를 상정하고 그 상황에서 가장 편한 형태를 디자인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가방을 툭 던지고 소파에 털썩 몸을 던진다. 순간, “아,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분 정도 지나면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고 결국 모로 눕게 된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몸이 좋아한다. 아! 自然스러움의 편안함!

생각보다 자주, 나는 의자가 없이도 편안하다.

글 _ 김희량(디자인 이론, 건국대 강사)
김희량은 서울대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공업디자인 전공)와
동 대학원(디자인 이론)을 졸업했다.
한샘 디자인박물관에서 일했고, 현재 건국대학, 성신여자대학에 출강중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