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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디자인으로 도시만들기

도시 디자인의 관점에서 지역의 경관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민단체 역시 삶의 질을 보장하는 주거환경권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마을 만들기’ 혹은 ‘지역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도시개발에서 배제되었던 시민과 주민들이 생활의 주체로서 자신의 권익을 보호받고자 하는 인식을 키워가고 있는 것도 변화의 요인이며, 행정가들도 도시 ‘개발’에서 도시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개선’에 무게를 싣고 있다.

| 도시 마케팅, 장소 마케팅
지역에는 오래 지속되어 온 삶에서 우러나는 매력과 특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삶이 가진 지속성과 다양성을 형상화하는 사회적 디자인이 요구된다. 유서 깊은 공간일수록 그 필요성은 절실하다.
공간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장소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장소를 디자인하는 것은 바로 그곳의 삶을 디자인하는 과정이다.
겉으로 보이는 미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우러나는 생활의 역사와 문화를 뒷받침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강제하지 않는 디자인, 디자인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디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 지역, 그 장소의 매력과 특성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산업과 연결시켜 나가려는 도시마케팅, 장소마케팅이라는 개념에서 더욱 그렇다.

얼마 전부터 장소성을 살리기 위한 실천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되고 있다. 대구 삼덕동 골목에서는 한 개인이 담장을 허물고 집안의 정원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은 자신의 정원을 주민들과 함께 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제공, 어린이 그림 전시, 한여름밤 인형극 상영 등을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사무소를 비롯하여 주변의 집들도 서서히 담장을 허물면서 매우 특별한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발전하고있다.
부산 금샘문화클럽은 9년째 삭막한 아파트를 생활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문화 행사와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작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사동에서는 인사동의 골목길과 경관을 살리고 그 속의 작은 가게들이 갯벌처럼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시설계에 들어갔다.
서울 용두1동 꽃길은 저비용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골목길을 쾌적하고 인간미 넘치는 공간으로 가꾸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듯 장소성 깊은 디자인은 삶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고 다양성과 지속성을 살려내는 집단적 창조활동이라는 점에서 한 전문가의 개인 작품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도시 디자인은 겉치레가 아니다.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은 더더욱 아니다. 그곳의 삶을 디자인하고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각각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작업이 끝난 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의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책임지고 가꿀 수 있는 마음을 스스로 갖도록 하는데 지속성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 과잉 디자인을 지양하며
주민 주도 행정지원형의 사례인 일본 도쿄 세타카야구 도시디자인 작업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른바 일본 마치쓰쿠리(마을 만들기)의 견본이라고 평가되는 이 작업은 구청 내에 도시디자인 지원실을 설치하여 주민들이 처음부터 계획의 주체로 참여하고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주도하는 마치쓰쿠리 협의회 활동, 건축 협정을 통한 경관 만들기나 구청의 전문가 파견제도 등을 통해 도시디자인의 전망은 결국 주민들에 의한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수렴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마을 만들기는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상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그들과 함께 꿈꾸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도시설계가나 건축가들이 풀어낼 수 없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인 도시 디자인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굳이 돈이 많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도시 디자인이 강조되고 있지만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정확하게 자리매김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관련 행정 부서도 여전히 부가서비스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지원사항도 미비한 수준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디자인이 살려면 디자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시범 사업이나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사업은 과잉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주민들이나 방문객들의 정서와 괴리된 조형물들, 지역의 삶이 담겨 있지 않은 가로 디자인들, 이 모든 결과는 정해진 행정 스케줄에 따라 전문가가 임의로 작성한 디자인이 그 원인이다.
주민들의 참여나 의견 수렴 역시 대단히 형식적이며 자의적이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2001년 자치구의 걷고 싶은 거리 시범 사업의 경우에는 과잉 디자인 요소와 불필요한 조형물을 배제하는 것을 일차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개발 만능의 시대를 거치고 삶의 질을 논하는 시대에 들면서 도시디자인이 시급하다는 현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디자인은 절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행정적인 공급 논리에 의해 디자인이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양산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디자인 부재의 도시가 될 것이다.
주민이 주체가 되도록 전문가와 행정은 힘껏 도와야 한다. 삶을 단절시키고 배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삶을 뒷받침하고 건강한 생활의 문화를 키워내는 디자인, 사적 공간에서 공공 공간에 대한 디자인의 개념을 확대시킬 때 우리 삶의 질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글 _ 최정한(도시연대 사무총장)
최정한은 현재 도시연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 아파트지구개발 자문위원회 위원, 버스정책위원회 위원, 건설교통부 광역교통실무협의회 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인사동의 골목길과 경관을 살리고 그 속의 작은 가게들이 갯벌처럼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사동 만들기의 핵심이다. 사진/ 박정훈 기자



부산 금샘문화클럽이 주체가 된 문화행사의 한 장면

인사동의 골목길과 경관을 살리고 그 속의 작은 가게들이 갯벌처럼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사동 만들기의 핵심이다. 사진/ 박정훈 기자


은평구 녹번초등학교 옆에 마련된 생태공원. 낡고 헌집을 헐고 조성된 생태공원은 주민이나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해준다.


전농1동 골목 놀이터 가꾸기. 매월 1회 골목 안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