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flash

인사동 Syndrome

대중들이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이해할 때, 불행히도 대개 그 이미지는 정태적이다.
하지만 인사동은 한 번도 변화를 멈추어본 적이 없으며 그 얼굴 또한 여럿이다. 조선 후기 보수적인 안동 김씨들이 차지했던 주거지역으로서의 인사동 일대는 개화기 시절엔 민씨 일가를 그 주인으로 맞았다. 그리고 일본 식민기에는 김두한과 기녀들, 그리고 세력가들의 첩들이 설쳐대는 골목이 되기도 했으며 동시에 독립만세운동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유명 의료원들이 몰려있던 병원 골목이기도 했고, 전국을 시장으로 하는 대형 가구점들의 골목이기도 했다. 인사동의 세력권에 속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은 본디 고려이래 시끌법석의 절터였는데, 연산군은 그 곳에 관기들의 거처를 마련함으로써 도화살 어린 땅의 기운에 화답했다.
그렇게 기이한 팔자를 지닌 터는 대화재 이후 오래도록 방치되었고 외국 사절들의 건의에 따라 근대식 공원이 된 것이었다.
식민기의 일본인들은 지금의 공중 화장실 자리에 어린이 야외 수영장을 만들기도 했으니 인사동의 표정은 한 둘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분열적이었다고 해야 옳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인사동 - 전통의 거리’ 이미지는 다분히 피상적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근본 없는 싸구려 개량한복 같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옛 말구유를 엎어서 찻상으로 쓰며 입구에 장승이나 하나 뻣대어 놓은 꼴을 ‘인사동의 전통’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970년대의 일이다.
1960년대 한일국교 정상회담 이후 일본인들에 의한 골동품 매매가 늘어나면서 고서화와 관련된 필방, 표구점들이 많이 들어섰다. 그와 더불어 고급 한식당과 요정들이 덩달아 그 수를 늘여갔고 1970년,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현대화랑’을 시작으로 여러 화랑들이 문을 열어 미술문화의 꽃이 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적지 않은 화랑 주인들은 소위 ‘복부인’에 불과했다. 1960년대 말에 개발제한이 풀린다는 풍문이 돌면서 이미 인사동 일대에 부동산 투기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사진을 보면 인사동의 거리풍경은 여느 골목이나 마찬가지로 얌전할 뿐이다. 진정한 키치로서의 싸구려 전통 이미지는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선술집, 전통찻집 등이 성업을 하며 만들어낸 사이비 전통이 대중에게 유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설왕설래가 시작된 것은 1997년 화랑주를 포함한 지주 중심의 이익단체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차없는 거리의 날’ 행사를 벌이면서부터였다.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마련한 행사가 과도하게 많은 인파를 불러모으면서 오히려 기존의 소위 ‘고급문화’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고 뜨내기들을 상대로 하는 좌판과 싸구려 민속품들이 가두를 점령했다.
지가가 상승하자 지주들은 재빨리 서울시 의원들을 들쑤셔 개발의 입김을 불어넣었고 시민단체와 예술가들은 그에 격렬히 저항했다.
문화연대(http://www.dosi.or.kr)를 비롯한 시민운동세력은 개발을 어느 정도 저지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사동은 급격히 개발되었다.
건축가 김진애 씨의 설계에 따른 정비사업은 중국을 연상시키는 전돌 바닥과 바바리아적인 가로등,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석물들을 남겼고 같은 기간 동안 몇 채의 서양식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오랫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아온 주민들도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행히(?) 거의 묵살되다시피 했다.
모든 도시의 공간들은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겪으며 발흥과 퇴행의 시기를 맞게 마련이다. 그러니 인사동이 일부 중.장년 식자층 중심의 고급문화를 잃고 1970년대 이후 태어난 2차 베이비 붐 세대의 청년들로 넘쳐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음식점과 찻집, 술집 등이 문을 열고, 값싼 물건들이 들어서고, 지가와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존의 고미술상들이 문을 닫는 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그 퇴행의 속도를 늦추고 전통에 무지한 젊은 세대들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극장표를 끊어 놓고 남는 시간을 때우러 카페와 길거리를 쏘다니는 선남선녀들이 전통문화에 무지, 무관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인사동에 몰려드는 인파는 인사동이 견딜 수 있는 적정선 이상이다. 그러니 종로에 산재한 극장들이 끌어들이는 젊은 데이트족들을 을지로나 기타 다른 방향으로 유도할 유인 장치가 필요하다. 아니면 인사동은 새로운 문화를 배태하지 못한 채 늙어갈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급한 것은 무지한 청년층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적 공간의 마련이다. 인사동 주변에 전통문화관련 뮤지엄이 세워지면 새로운 세대에게 전통문화의 정수를 가르쳐줄 수 있을 뿐더러, 동시에 유동인구를 분산하여 각 공간에 묶어둠으로써 인사동 중앙 골목에 인파가 몰리는 병적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인사동이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긍정적인 기능은 그런 집단적 교육의 능력일 게다. 앞으로는 당대미술의 메카가 될 수도 없고 검정차가 들락거려야 먹고살 수 있는 고미술상점이나 고급 한복집들의 일번지가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섣부르게 인사동 사랑을 부르짖으며 문화의 보존을 주장하지 말라. 인사동에는 현재 너무 많은 돌팔이 의사들이 붙어있다.
양의의 처방과 한의의 처방이 맞서고, 금전적 이익만을 노리는 악의적인 처방과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상주의적 처방이 혼재한다.

나는 인사동에 관여하려는 디자이너들이 간판의 일제 정비와 시각적 표현방식의 일률적 통일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들을 때마다 그 파쇼적 발상에 하얗게 질리곤 한다.
돌팔이 처방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제 개발과 변형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규제를 받게된 것으로 보인다.
2001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시정개발연구소의 홈페이지(http://www.sdi.re.kr/insadong)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들의 노력은 가상하고 접근방식은 적절해 보인다. 그들에게선 전통을 정동적으로 이해하고 바라보려는 탈전통주의자의 새로운 태도가 엿보인다. 앞으로 인사동이 맞이할 변화가 궁금한 분은 그들이 마련한 인사동지구단위계획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글.이정우 subgaytales@hanmail.com
'씨네21'에서 진행되었던 퀴어영화 논쟁을 통해 글쓰는 일을 일삼았다.
무크지 '디자인 텍스트'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계간지 '공예와문화'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