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2일(목)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의 새로운 보금자리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를 찾았다.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직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벌써부터 달라진 새로운 디자인 공기(?)가 감지된다.
한결 부드러워진 직원들의 옷차림서부터 사람들의 표정까지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작년과 올해 이코그라다(icograda)와 익시드(ICSID) 등 국제적인 디자인 행사들을 치르느라 밤잠을 설쳐가며
바빴을 사람들.
이제 이곳을 한국 디자인 진흥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또다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리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분주했을 사람이 바로 정경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일 것이다.
달라진 분위기를 확인시켜주듯 정원장 역시 딱딱한 정장이 아닌 오렌지색 스웨터를 입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2001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한국 디자인이 내딛은 첫 항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ICSID와 icograda, 한국 디자인의 달라진 위상
● 작년과 올해 국제적인 행사를 연달아 치룬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십시오.
○ 우선 뿌듯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두 행사 모두 훌륭한 대회로 국내외 인사들에게 인식되어 다행으로 생각하며
무엇보다도 디자인계의 단합된 노력과 정부, 재계, 업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룬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대회들이 우리 나라 디자인계의 국제적인 위상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십니까?
○ 과거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993년 우리 나라는 ICSID 대회 유치 경쟁에서 캐나다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당시 진흥원을 중심으로 유치 노력을 벌였으나 국내 디자인계의 공감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하나로
응집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국제기관에서 활동하는 보드멤버들도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제 디자인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마침 1995년 내가 ICSID 보드멤버로 선출되어서 책임감을 느끼고 활동에
임하기 시작했지요. 당시 경제적인 지원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3개월에 한 번 있었던 미팅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1997년에는 작정을 하고 교환교수로 미국에 가서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제20회 토론토 대회에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있습니까?
○ 먼저 세계 디자이너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2001년 한국 유치가 결정되자 그 전에는 제가 먼저 찾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자진해서 찾아와 말을 걸고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준비를 해오는 동안 우리 나라는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행사 유치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하면 ‘일본’ 밖에 모르던 사람들도 이제는 국제 디자인계에서 ‘한국’도
한 몫을 크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것 같습니다.
●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 힘든 일이야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금년에 미국 테러가 일어나는 바람에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다행히 오프닝 행사가
끝난 다음날까지 공습이 늦춰져서 큰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지요.
또 미국측 사람들이 2007년도 샌프란시스코 익시드
행사 유치에 열심이어서 대거 참석한 것도 행사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 국내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까?
○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 디자이너들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디자이너들은
충분한 자질이 있었음에도 그 동안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논의되는 디자인 정체성이란
문제도 자부심과 자신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한 국민들의 디자인 마인드를 높이는 활력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기간 중 코리아디자인센터를 다녀간 일반인이 무려 7만 6천명이 넘었습니다. ‘디자인’이란 주제로 이렇게 단기간에
일반인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일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 이번 행사가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어떻습니까?
○ 이번 행사들을 계기로 기업 내부에 디자인경영 시스템과 투자가 촉진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1980년대 이후 디자인 경쟁력이란 말이 나오고부터 그 동안 착실히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이러한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으며 대기업의 경우 이미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그 동안 뿌려진 씨앗이 활짝 필 수 있는 ‘횃불(Beacon)’로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코리아디자인센터, 한국 디자인 진흥의 새로운 중심지
● 10월말 대학로에서 분당의 새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사실 코리아디자인센터의 입지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솔직히 걱정하는 의견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판교와 야탑, 그리고 서현
벤처타운으로 구성되는 트라이앵글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많이
이주해옴에 따라 산업적인 인프라가 서서히 구축되고 있으며 디자인도시를 선포한 성남과 경기도가 디자인 육성에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통 면에서도 인천 공항에서 1시간, 삼성 코엑스 전시장에서 20분 거리이고 분당
시외버스 터미널이 바로 옆에 있어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서도 서울 중심지보다 유리하다고 자신합니다.
● 건물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아무리 좋은 건물이라도 용도에 맞지 않으면 고치고 적응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마련입니다. 반면 이 건물은
외관서부터 세부 구조까지 처음부터 디자인센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ICSID 행사에 참석한 해외 인사들이
모두 이 건물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니 다들 부러운 눈치더군요.
벌써 타이완 대표단이 이 곳을 다녀갔고 칠레에서도 우리를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웃음).
● 코리아디자인센터의 자세한 운영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1층과 지하 1층은 전시장을 비롯한 공공 디자인 서비스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2, 3층은 각종 디자인 지원시설들이
입주할 예정이며 특히 3층은 e-디자인아카데미와 디자인정보자료실을 운영하게 됩니다. 4층과 5층은 각각 성남디자인벤처센터와
경기벤처빌딩 성남센터가 입주하여 지자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6층은 국제 컨벤션홀과 연구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터 공간으로 활용하며 7층은 진흥원사무실, 8층은 연회장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 활성화 방안에 대한 자체 수익 전망은 어떻습니까?
○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기획 중이며 2-3년 안에 확실히 수익을 낼 자신이 있습니다. 한 예로 이번에 개최한 ‘알레시
디자인 워크숍’만 하더라도 400명 모집에 1,700명이 몰려들어 돌려보내느라 혼이 났습니다. 프로그램과 기획만 좋다면
사람들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2002 월드컵, 한국 디자인의 또 다른 기회
● 마지막으로 앞으로 진흥원이 나아갈 방향과 내년에 있을 월드컵에 대한 준비 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 처음 원장직을 맡을 때 밝혔듯이 봉사하는 진흥원으로서 충실할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입니다.
정부와 디자인계를 잇는 가교로서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도와줄 수 있도록 단계도 간소화하고
투명성도 더욱 높여 서로 강한 신뢰관계를 맺어나갈 것입니다. 월드컵의 경우 이미 진흥원과 월드컵 조직위가 주최하는
‘월드컵 디자인 공모전’이 공식문화행사로 선정돼 있는 상태이며 그 밖에 많은 디자인 관련 행사들이 있을 예정입니다.
월드컵만큼 세계의 조명을 받는 큰 행사도 드뭅니다.
월드컵을 디자인이란 넓은 범주로 감싸 안아 성공적으로 시각화해낼
수만 있다면 그 효과는 대단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는 코리아디자인센터의 활성화와 월드컵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업무를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인터뷰어 | 김향희 편집장
정리 | 박활성 기자
사진 | 윤행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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