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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2 : time, space, interface
face 2 calendar

달력을 둘러싼 과학과 권력의 이중주

달력의 최소단위는 ‘하루’이다. 이 하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최초의 존재는 바로 ‘해’이다. 이어서 한 달과 일주일이 생겨났으며 이를 위해 ‘달’이 새로운 기재로 작용하였다.
문명이 분화되면서 바로 이 ‘해’와 ‘달’은 시간측정을 위한 중심 역할을 놓고 서로 맞붙게 된다.

하지만 꼭 자연현상만이 달력의 지배권을 놓고 투쟁을 벌인 것은 아니다. 앞면만 놓고 볼 때, 달력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천문학과 물리학 그리고 수학 등 인간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는 문명의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끊임없는 권력의 간섭에 의해 변천해온 달력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잡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력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공간에 대한 지배만큼이나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현대 달력은 과학과 권력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이중주의 산물이며 이 이중주의 한복판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즉 시간을 측정하는 인터페이스를 둘러싼 암투가 놓여있는 것이다.

초기 로마인들이 사용한 달력에 따르면 1년은 10달 304일이었다. 아무리 천문학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이 숫자는 달의 운행과도 해의 운행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로마인들은 곧 이웃한 지혜의 나라 그리스의 태음력을 흉내내서 355일 → 378일 → 355일 → 377일로 변하는 4년 주기의 달력을 만들었다.
평균하면 1년은 365.24일로 현대 천문학이 가르쳐 주고 있는 1년의 길이인 365.24219879일과 상당히 비슷하기는 하지만 긴 해와 짧은 해가 23일이나 차이가 나는 터무니없는 달력이었다.
이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엉터리 달력이다. 심지어 달력을 주관했던 제관들은 윤달의 원칙을 무시하고 1년의 길이를 고무줄 늘리듯 늘였다 줄였다 하기도 했다.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를 정벌하고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권력을 잡음과 동시에 이집트의 태양력을 바탕으로 로마의 엉터리 달력을 개혁한다. 물론 기존 권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새우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였다. ‘해’라는 인터페이스를 기준으로 한 ‘율리우스력’은 달력을 간단히 하기 위해 매년 11분 14초를 무시한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1500년이 흐르고 보니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원래의 날짜와 무려 10일이나 차이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중세의 권력을 대표하는 로마 교황청은 부활절이 자연의 운행과 점점 더 일치하지 않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처방을 단행하였다. 바로 10일을 달력에서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다음날은 당장 10월 15일 금요일이 되었다.
그 후 로마 교황청은 과학적 지식을 달력에 도입하였지만 새로운 ‘그레고리우스력’은 오랫동안 교황청의 영향력을 벗어난 곳에서는 쉽게 인정되지 못하였다.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던 개신교 세력은 새로운 달력이 로마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함께 이중주의 주인공인 자연을 무시한 달력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며 결국 그레고리우스력이 현대 달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지 채 30년도 지나지 않아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은 왕권 안정의 연장선에서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그 노력의 결과 우리나라 역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칠정산’이 탄생하였다.
이 달력에 따르면 1년과 한 달의 길이는 현대 달력과 거의 일치하는 정밀한 값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왕권의 쇠퇴와 더불어 과학기술 수준이 급격히 쇠퇴하게 된 우리나라는 결국 중국 달력을 사용하다가 19세기 말에 그레고리우스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의 시간에 대한 지배욕은 우연이 아니다. 시간은 우주의 순리를 반영하는 질서 그 자체이며, 그 질서에 대한 규범을 바로잡는 일은 자신의 권력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천하에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권력에 의한 달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달력이 있다. 바로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그 나라 민중들이 가지고 있었던 달력, 자신들만의 시간감각이 그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과 선조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달과 해를 가늠하였다. 그렇지 않고는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달력 없이는 시절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새해 달력을 받고 나서야 경칩이 언제인지, 말복이 언제인지 아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inter) 대면(face)을 잃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태음력인 모슬렘 달력에서는 초승달을 봐야 새 달이 시작된다고 한다.
지난 2001년 모슬렘 제관들은 나쁜 날씨 때문에 새해가 시작될 것으로 믿었던 날, 초승달을 보지 못하자 다음 날에서야 초승달을 관찰하고 비로소 새해를 선포하였다. 결국 그 해에는 새해가 하루 늦게 시작된 것이다.
일견 우스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이 현대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갑다. 시간이란 것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다 진실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글_이정모,북메세 에이전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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