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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2 time : space, interface
face 5 city

도시, 건축, 인터페이스, 의사소통

인터페이스라는 주제를 놓고 도시나 건축을 이야기할 때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도시/건축을 순수 이상사회의 구축이라는 원대한 플라톤적 추상세계에서 우리의 현실로 끄집어 내린다면 이 주제는 전혀 새로울 바 없다.
건축가의 의도를 여지없이 무너트리는 간판들 혹은 천태만상의 이국적 기호로 치장한 도시 속 건축물들만 보아도 도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인터페이스의 난무를 경험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로상에서 쇼 케이스처럼 화려하게 빛을 발광하며 러닝머신 위를 질주하는 반나체 일상인들의 도열이 드러내는 비일상적인 풍경을 보아도, 건축의 인터페이스가 새로운 국면에 이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쇼 케이스는 더 이상 마네킹 같은 허상이 아닌 실상의 마네킹 스펙타클로 진화하는 것이다. 과거로 따지자면 은밀하던 모든 것들이 반대로 노출증에 걸린듯하다. 미장원, 카페, 노래방 등등... 바야흐로 유리라는 건축소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사실 현대의 건축가들은 건물 바닥까지 투명하게 할 수 없을까 목하 고민 중이다.

우리 현대도시의 모습을 크게 두 가지로 가름하자면, 하나는 말 없는 건축을 들 수 있다.
자기참조적으로 완결된 디자인을 구축하고 어디에서나 보편타당한,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하에서도 결코 손상받지 않는 그런 건축을 추구하려는 유토피아적 근대건축의 의지를 지닌 건축을 말한다.
다른 한편에는, 앞서 열거한 듯이 닥치는 대로 말하고, 분위기(컨텍스트) 불문하며 개입하고, 수많은 기호와 이미지들을 거리로 쏟아내려는 현대사회의 욕구를 지닌 그런 건축이 있다.
현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는 이 두 가지가 뒤범벅이 되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도시와 건축은 결국 어디를 보아도 표리부동하며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현대도시에서는 준거점(reference point)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중앙과 주변의 변별이 무색해진다.
이것은 또한 요즘 많이 논의되는 공간 정체성의 방황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이 지점에서 굳이 체계화된 컨텍스트를 조작하며 만들거나 정체성을 배분하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 같지도 않고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노력이 빚어내는 억지춘향의 도시/건축 공간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인터페이스 난무와 함께 춤을 추는 가운데 새로운 인터페이스 체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사실 인터페이스로서의 도시/건축은 현대에 와서 부활한 것이다. 특히 밤의 문화와 함께 즉, 빛의 문화와 함께 더욱 화려하게 부활한다.
백남준이 ‘발광과 정보(illumination and information)’, ‘정보로서의 건축’이라는 아티클 소제목에서 중세, 르네상스시대의 건축적 역할(의사소통 매체로서의 건축, 사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을 통하여 성서의 내용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종교적 인터페이스의 한 부분이었다.)을 논하며 현대사회에서의 이러한 인터페이스 부활을 지적한 바 있듯이 이것은 상당부분 부활이다.
여기서 부활이라는 의미는 근세에 접어들면서 도시 혹은 건축이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폐기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 이 구절은 소설 속의 신부가 한 손에 든 성서를 ‘이것’이라고 가리킨 후, 또 그의 앞에 있는 성당을 ‘저것’으로 가리키며 한 말이다.
즉, 구텐베르크 이래로 시작된 문자 문명의 엄청난 팽창에 의해서 건축이 ‘이야기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끝내게 된다는 묵시이기도 하며 또한 속지 공동체로서, 그리고 의사소통의 장으로서의 성당의 역할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또한 마샬 맥루언이 말하듯 개인주의의 도래를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콘크리트의 회색 빛 도시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을 가보아도 그렇고 서양의 옛 성당을 가보아도 그렇고 예전의 건축과 도시는 분명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 도시와 건축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조각상들, 아이콘들, 그림들, 글씨들을 상상해보자. 풍수지리를 생각해보자. 그 도시/건축의 구법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무한대적 풍성함과 그 번역의 번역에 의한 풍성함의 발생들을 돌이켜보자.
그 이야기의 내용적 구성은 그 당시의 세계상을, 당시의 정주하는 삶만큼이나 안정되게 표상하고 교육하며 동시에 그 구성원의 삶과 활동이 그 세계상을 반영하여 무수히 그리고 대대로 복제해내는 역할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충실히 하였다.
도시/건축은 공간에 장소의 의미를 부여하며 그 자체로서 세상의 길을 찾는 안정된 지도였던 것이다. 풍수지리 또한 하나의 공간에 수만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체제성을 지탱하는 하나의 지도였다.
그렇다고 이러한 인터페이스 외형이 오늘날에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말 그대로의 지도 즉, 계량화된 도면지도에 의존하지 않고는 좀처럼 길 찾기를 할 수 없어졌다. 그리고 현대의 개발은 현대의 지도와 같은 형상이 되지 않고는 지도에 편입될 수 없다. 즉, 개발의 가치가 사라진다.
일의적 지도 매트릭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길 찾기 또는 개발하기는 그래서 무수한 일의적 지도의 확장을 초래할 뿐이다.
즉, 도로교통지도의 체제에 편입된 우리는 결국 이 모든 세상을 도로교통지도화 하는 것이고 이 교통이라는 관념의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부평초처럼 마찰 없이 미끄러져 가야만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일 뿐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양의 비자발적 마찰을 발생시키며 삶의 고통을 초래한다.
소설 ‘삼포 가는 길’이나 ‘파리-텍사스’라는 영화는 이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미끄러짐을 멈추는 순간 지도상에서 사라지기에 그 무지막지한 마찰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의 인터페이스 체제만으로 주도될 때 발생하는 비극일 것이다.

인터페이스 체제는 번역의 체제다. 우리 삶의 그 이질성, 다양성, 그 특질들이 단 하나의 번역 체제로서만 세상에 드러난다면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현재는 앞서 말한 듯 의사소통의 제스처만이 길거리로 쏟아지며 난무하고 있지만, 여기서 얻는 것이 있다면 엄청난 양의 인터페이스 인프라들이다.
그래서 더욱 현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체제의 고민이 절실해지는 것이고 그 가능성이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현대도시의 인터페이스 과잉에 지쳐버린 나머지 귀머거리, 벙어리 그리고 장님이 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도시 인터페이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신체 감각적 마비 혹은 자발적 장애를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사소통 혹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속의 고독한 인간’이라는 근세 이래의 이 영원한 테마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쉴 새 없이 번식하는 우리의 화려한 도시 야경에서 존재감의 상실은 그 깊이를 더해가는 것 같다.

이쯤 되면 과연 현대도시가 그 인터페이스라는 것을 통해서 서로 간에 무엇을 관류시키려 하는지 정확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불성실한 또는 회피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과거의 안정된 체제의 고집스러운 소환이 아니라, 조성된 그 인터페이스의 인프라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역류시키거나 새로운 관계를 조직할 가능성은 없는지도 탐색해 볼 만하다. 또 다른 인터페이스 체제의 가능성은 없는지 추구해봄직 하다.
근자에도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것을 계기로 도시의 구성요소들, 도시의 인터페이스 인프라들이 얼마나 혁명적으로 고유의 문법을 해체시키며 서로 반응하는 가운데 새로운 체제를 일순간에 형성하는지를 보았다.

도시의 컨텍스트뿐만 아니라 도시와 건축의 생산방식마저도, 인터랙티브한 조건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하는 요즘의 상황에서 ‘제도판에서의 철두철미한 계획(이론)과 그것의 묵직한 실천’이라는 순차적 이분법에만 익숙한 근대의 도시계획가, 건축계획가들은 inter라는 단어의 의미를 훨씬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리라고 본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을 통해서 우리는 지배적 지도의 광활한 외부로 진입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또 다른 현실과의 ‘자발적’인 마찰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상황’에 대하여 그리고 다양한 번역에 대하여 다양하게 ‘반응’하고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도시/건축적 인터페이스의 실현, 새로운 도시지도의 실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짚어본다.

글_김광수,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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