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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3 : UI for print
face 3 comic

만화 인터페이스, 암묵적 기호에 의한 수사학

만약 만화를 ‘종이 위에 그려진 글과 그림이 어울린 매체’라고 정의 내린다면, 만화는 지금 ‘혁명’을 경험 중이다.
잡지나 책으로 보는 만화(종이 만화)가 아니라 컴퓨터 상에서 보는 디지털 만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대중화된 디지털 만화는 초기에는 단행본 만화를 단순히 스캔한 뒤 온라인 상에서 보여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는 종이 위에 펜으로 밑그림만 그린 뒤 나머지 작업(특히 컬러 작업)은 전부 컴퓨터 상에서 이뤄지는 단계로 발전했다.
특히 밑그림조차도 마우스로 그려 모든 과정이 컴퓨터 상에서 완성되는, 즉 종이와 일절 관련이 없는(종이에 인쇄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디지털 만화까지 등장함으로써 이제 ‘종이로 된 매체’라는 만화의 정의는 수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만화가 종이 위에 그려지던, 컴퓨터에서 그려지던 만화는 만화다. 다만 만화가 만화이기 위해서는 만화를 만화답게 만드는 요소를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화를 규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칸’의 존재다. 카툰이나 캐리커처 같은 한 컷 만화의 경우 칸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만화라고 지칭하는 스토리 만화의 경우 칸은 필수조건이다.
아무리 만화처럼 생겼어도 ‘칸’(을 구분하는 궤선)이 없다면 그것은 만화가 아니라 ‘그림동화’라 불러야 할 것이다.

만화에서 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컷과 컷을 구분짓는 경계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의 진행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만약 칸이라는 인터페이스가 독자들을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그림과 그림이 서로 겹치거나, 겹치지 않더라도 눈을 현혹시켜 독자들이 만화를 읽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칸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해주는 동시에 만화의 진행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우리 만화의 경우 제일 위 왼쪽 칸에서 오른쪽 칸으로 읽어간 뒤, 한 칸 내려가 다시 왼쪽 칸에서 오른쪽 칸으로 읽어가는 게 규칙이다. 미국이나 유럽 만화도 이 규칙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일본만화는 예외다. 일본만화의 경우 우리 만화와는 정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간 뒤, 한 칸 내려가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게 원칙이다.

재미있는 것은 만화의 등장인물은 이 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이뤄져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이런 전제조건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 칸의 존재를 알아차리거나 더 나아가 칸을 이용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칸 속의 그림이 칸 밖으로까지 튀어나오는 ‘칸의 파괴’가 자주 나타나면서 이러한 암묵적 약속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만화의 인터페이스에서 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칸과 칸 사이에 자연히 발생하는 ‘칸 사이’ 또는 ‘칸 간’(일본에서는 간間이라고 부른다)이다.
이 ‘칸 사이’야말로 만화의 진행을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칸에 의한 만화의 진행은 영화의 필름과 달리 다음 칸이 그 전 칸의 바로 다음 장면이 결코 아니다. 작가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장면만 묘사될 뿐, 그 중간 과정은 생략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전 칸과 다음 칸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 두 칸을 연속된 것으로 간주하는 데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칸과 칸 사이가 갖는 공간의 힘이다.

만화를 만화답게 만드는 또 다른 인터페이스로 ‘말풍선’(말칸이라고도 함)이 있다.’ 말풍선’은 대사를 담는 칸의 형태가 풍선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만화의 발달과 함께 말풍선의 모양도 진화해 현재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만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글은 칸 내에 쓰여진 지문(설명문이나 독백 등)과 말풍선 속의 대사로 다시 나뉜다.
이중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말풍선 속의 대사다. 왜냐하면 지문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숨겨진 속마음을 드러내는 보조역할에 그친다면, 말풍선 속의 대사는 만화의 진행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풍선 속의 대사는 보통 등장인물끼리 서로 주고 받는 대화인 경우가 많지만 입으로 내뱉는 대사가 아닌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말, 즉 독백이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나타난다.
이 때는 말풍선의 꽁지를 물방울지게 만들거나 말풍선의 선을 파선 등 특수한 선으로 그림으로써 독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한다.
이 밖에 말풍선 속에 대사가 아닌 의성어나 의태어, 그림이나 기호 등의 아이콘이 들어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아이콘화된 의성어 또한 만화만의 독특한 인터페이스이다. 의성어.의태어를 사용하는 것이 만화만은 아니지만, 만화의 사용법은 다른 장르와 달리 좀 특이하다. 의성어.의태어를 글의 일부가 아니라 그림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이콘화된 의성어.의태어를 사용하는 것은 만화뿐이다. 그림의 일부로 그려진 의성어.의태어를 정지 화면인 만화에 소리와 움직임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무언가가 폭발하는 장면에 그려진 ‘쾅’이라는 의성어는 마치 실제로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술 취한 사람 옆에 그려진 ‘비틀비틀’이라는 의태어는 칸 속의 등장인물이 결코 움직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비틀거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독자와 만화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약속의 묘미이다.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나 입김, 코에서 나오는 콧김, 화가 날 때 머리에서 피어나는 김 등을 상징하는 입김기호, 빨리 달리는 표시의 증거로 남겨지는 스피드선, 격렬함을 의미하는 땀,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전구표시 등 아이콘화된 기호에 의해 표현되는 어법은 만화만의 고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연출에 있어서도 만화만의 고유한 기법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과장표현. 만화의 기본 속성 중의 하나가 과장이다 보니 만화에서는 다양한 과장표현이 사용된다.
한 대 슬쩍 얻어 맞았는데 하늘 높이 날려간다거나, 조금 아프다고 눈물.콧물 흘리며 온갖 비명을 지른다거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면 금방 혹이 생긴다거나 하는 표현 등.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만화적인 연출이자, 또한 만화이기에 가능한 연출은 야한 장면을 보거나 야한 장면을 상상할 때 코에서 코피가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표현.
이런 극단적인 과장표현은 과장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만화에게만 사용이 허락된 일종의 ‘특혜’라고 하겠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 매체에서 그 의사전달 수단이나 체계를 인터페이스로 본다면 이러한 요소들이야말로 독자와 만화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인터페이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_김이랑,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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