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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4 : body & interface
face 3 eye identity

관찰당하는 눈,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희생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의 최신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온갖 PPL(간접광고)에 짜증내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장치들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주어 사람들에게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변명한다.
갭(Gap)이 과연 2054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브랜드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러한 설명에 사람들이 얼마만큼 납득할런지는 모르지만, MIT 미디어랩 출신의 인터페이스 전문가 존 언더코플라 박사에 의해 창조된 미래의 광고는 현재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홍채인식 시스템이 실제 어떤 식으로 우리 생활로 파고들지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 동안 영화가 과학자들이나 실제 제품 디자이너들에게 미쳐온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또 덩치에 걸맞지 않게 끊임없이 1:1 마케팅을 부르짖는 다국적 기업들을 생각해볼 때, 머지 않은 미래에 사람의 홍채를 감식해 감미롭게 이름을 불러주는 광고가 등장하더라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조금은 경솔했던 것은 아닐까? 눈은 지금쯤 당혹해 하고 있을 것이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대상을 본다는 능동의 위치에서 관찰당하는 수동의 위치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낼지도 모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촉수가 여럿 달린 스파이더를 생각해보라. 수색영장(한가지 여담이지만 2054년에도 수색영장은 종이이다. 인쇄매체는 죽지 않는 것이다.)은 커녕 한 마디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사냥한다.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스필버그가 보여준 그 다양한 인물상의 끔찍할 정도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이 ‘눈’사냥을 벗어날 길은 어디에도 없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막 바지를 끌어올리는 순간이건, 사랑하는 사람과 정사를 나누던 도중이건 꼼짝없이 자신의 눈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 끔찍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the net], [enemy of state] 등의 영화를 통해 첨예하게 대립했던 공공적 이익과 프라이버시라는 골치아픈 문제를 이 영화는 너무도 쉽게 다루고 있어 찜찜하다.

물론 시스템 자체에는 오류가 없으며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라는 영화 내용과 같이 홍채인식 인터페이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1:1 마케팅의 효과와 그 부작용, 혹은 공공적 이익과 프라이버시라는 골치아픈 문제를 떠나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왜 홍채라는 아주 골치 아픈, 그리고 아주 내밀한 신체적 특징까지 동원해 사람의 신분을 인식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화적, 기술적 공황상태를 대변해줌은 물론 이러한 공황의 원인인 커뮤니케이션의 성질변화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전제는 대상의 인식이다.
의사를 표현하는 주체와 전달 받는 주체가 서로에 대해 인식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폭이 눈 앞의 대상으로 한정되었던 시대에는 기본적인 정보만으로도 이 과정은 순식간에 처리된다.
눈 앞의 남편이 바로 내 남편인지 알려주는 공감각적인 징후가 우리 뇌에서 순식간에 인증과정을 완성시켜 주었다. 얼굴, 몸짓, 걸음걸이, 목소리, 말투, 행동거지, 반응, 기억 등등...
하지만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의 폭은 그러한 인증과정을 무색케 해버렸다. 시간과 공간의 장애가 제거됨에 따라 외적인 폭이 넓어지고 있으며 내적인 측면인 커뮤니케이션의 주체 역시 꼭 사람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람이 정보와 의사소통 할 수도 있고 정보가 사람과, 혹은 정보와 정보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전래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충분히 상대방을 인식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또한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날려버린 기술의 발달은 현대인을 커뮤니케이션 압력 하에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언제 어디에 있는 사람이건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편리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자체적으로 힘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꼭 바람피고 있는 도중이 아니더라도 휴대폰과 각종 메시지 프로그램은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생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고문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능동과 수동의 문제는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며 쉽사리 화해할 수 없는 벽을 만들어내곤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개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이와 더불어, 누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느냐의 문제 역시 사회적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눈’을 놓고 보자면, 생리적으로 능동의 성격을 부여받은 자신의 위치를 박탈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단순히 통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력욕구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국가 역시 자신의 방어 본능에 충실할 뿐인지도 모른다. 급격히 변하는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불안해 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사실 홍채인식 인터페이스에 관한 한 논쟁의 핵심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공공적 이익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을 위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있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암묵적인 존중과 도덕적 규범이 마련되어 있다면 오류없는 시스템이 만들어가는 불행없는 사회로의 진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꿈 같은 이야기겠지만.

db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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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1 meeting with interface

	인터페이스, 만남의 또 다른 이름

inter2 time, space, interface

	시간, 공간, 인터페이스

	고지도와 현대지도의 공간인식

	달력을 둘러싼 과학과 권력의 이중주

	나침반과 방위인식

	시계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 건축, 인터페이스, 의사소통

	사이버 세계의 시간과 공간

inter3 UI for print

	인쇄매체를 위한 유저인터페이스

	책을 위한 인터페이스

	잡지 디자인, 차이를 위한 투쟁의 역사

	만화 인터페이스, 암묵적 기호에 의한 수사학

inter4 body & interface

	몸 & 인터페이스

	문 손잡이, 다른 공간으로의 인터페이스

	화장실 공간과 심리적 인터페이스

	관찰당하는 눈,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희생자

	옷은 피부로의 회귀를 꿈꾼다

	인터페이스에 대한 몇 가지 몸들의 물음

inter5 the_future_of_interface.come

	인터페이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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