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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2 : time, space, interface
face 4 watch

시계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본적인 시계 인터페이스는 태양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시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햇빛이 내리비치는 땅 위에 막대기 하나를 꽂았을 때 시작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해시계이다.
보편적인 아날로그 시계의 인터페이스는 이 단순한 해시계의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일례로 아날로그 시계 문자판의 바늘이 오른편으로 도는 것은 잘 알려져 있듯이 북반구에서 해의 그림자가 오른편으로 도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인류 문명이 남반구에서 발생했다면 아마 시계바늘은 꺼꾸로 돌았을지도 모른다.

약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해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날씨가 맑고 남북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간단한 해시계를 즉석에서 만들어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자판이 오목한 주발 모양의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해시계가 널리 쓰였다. 이것이 세종 때에 개발되어 최초의 공공 시계로서 서울거리에 설치된 유명한 ‘앙부일구’이다.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들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
- [세종실록] 세종19년(1437년) 4월 15일

시신(時神)이란 시간을 나타내는 12지를 문맹자도 보고 알 수 있도록 동물 그림으로 표시했다는 뜻이다.
세종에게는 아무래도 교육자적 감수성이 있었던 듯 싶다. 이 공공 시계도 조선말기에는 대만 덩그러니 남아 일반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앙부일구는 담뱃갑 반 정도의 크기로 작게 축소되어 선비들의 휴대용 해시계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휴대용 앙부일구에는 남북을 맞추기 위한 나침반이 밑에 딸려 있고, 방사선 모양의 시각선에 교차되는 동심원 모양의 계절선이 함께 그어져 달력의 역할을 겸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해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해시계를 쓸 수 없는 밤에는 별들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아는 것으로 족했다. 도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예전의 통행금지 사이렌에 해당하는 저녁의 인정종과 새벽의 파루종 소리로 밤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에서 시간을 알리는 북과 징은 밤에만 울렸다. 시간의 알림이 주로 민간의 통제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북과 징을 울리는 시간은 물시계를 가지고 측정했다. 물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아주 오래된 방법이다.
물을 공급하는 큰 항아리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는 물이 물을 받는 항아리에 괜 높이를 보고 시간을 재는데, 이 시간을 재는 일을 맡은 사람은 밤새 쉬지 않고 물시계를 지켜보아야 했다.
가끔 물시계를 맡은 군사가 졸다가 시간을 놓쳐 처벌되거나 파면되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그래서 일정시간이 되면 스스로 시보를 알리는 물시계를 고안한 것이 바로 세종 때의 자격루(自擊漏)이다.

사람이 시보를 알리든 기계가 시보를 알리든, 일반인들에게 물시계는 궁궐이나 도성 깊숙한 곳에서 시보의 종소리나 북소리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왕이나 관료를 제외한 보통 사람들은 1각(15분 정도) 이상의 오차로 정확한 시각을 알 일이 없었다. 그보다 더 정확한 시간의 측정은 왕권의 표상, 즉 왕의 특권에 속하는 일이었다. 특히 하늘과 직접 교통하는 국가의 제례에서는 축시 전 5각, 신시 후 1각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한 시각이 요구되었다.
서양 중세의 시간이 ‘영주적 시간’, ‘기독교적 시간’이었다면, 조선시대의 시간은 ‘국왕적 시간’이자 ‘유교적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자연의 시간’이 적용되었다. 즉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낮과 밤의 시간을 재는데 있어 정시법과 부정시법이 혼용되었던 것도 이러한 자연주기에 따른 생활 사이클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초반, 디지털 시계가 ‘전자시계’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디지털 시계는 초 단위까지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짝 유행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디지털화 되어갔지만 시계는 증권사 건물에 붙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날로그 모드로 복귀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가장 자주 드는 것은 아날로그 인터페이스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공간성, 즉 두 시점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라는 말은 ‘비슷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즉, 데이터나 물리량의 연속적인 변화량을 다른 매체의 유사한 변화량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의 흐름과 하룻동안 해그림자의 움직임이 ‘유사한 것’이라고 사유에 포착되는 순간 새로운 매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시계 인터페이스에 있어 아날로그 문자판의 생명력은 그것이 단순히 유사한 것을 넘어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이 태양의 운행과 하늘의 움직임을 재현해 온 가장 오래된 방식이며 수천 년 동안 해시계를 사용해온 인류의 역사적 기억이 베어있는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글_편집실

앙부일구.
조선시대 후기.
시반면 직경 24.1cm, 높이 12cm.
성신여대박물관 소장.

자격루.
국보229호.
1536년,덕수궁소장.
1434년 장영실이 처음만든것을 개량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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