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 디자인의 역사는 전통적 조판방식을 고수해온 다른 인쇄매체를 상대로 벌인 피나는 투쟁의 역사이다.
타 인쇄매체와
차이를 두는 전략으로 잡지만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세월인 것이다. 우리가 서점에서 무심코 보아온 잡지의
각 페이지에는 그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15세기 중엽 구텐베르크에 의해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래 인쇄매체의
중심은 단연코 책이었다. 그러나 1665년 최초의 신문이 탄생되고 이후 산업혁명의 부산물로 잡지가 등장하면서 책과
신문 그리고 잡지로 이루어지는 인쇄매체 삼파전의 막이 오르게 된다.
초창기의 잡지는 뚜렷한 고유성을 갖지 못한 채 책과 신문의 중간 형태적인 조판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시작된 모더니즘 디자인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잡지는 비로소 책의 고유한 구성체계인 대칭적 조판방식을 탈피하고 신문의
수직적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잡지만의 독특한 구성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책은 각각의 페이지가 단순히 그 책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옆 페이지와의 시각적 상관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신문 역시 각기 다른 내용의 기사들이
한 페이지 내에서 이미 표준화된 활자규범에 따라 서로 중요도를 다투며 경쟁하듯 조판하는 체제였다.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은 초창기의 잡지에 그대로 차용되어 모든 페이지가 곧바른 수직적 기둥 형태로 조판되는 구조를 가지며
마주보는 페이지에서 각각의 페이지는 아무런 시각적 연관을 맺지 않는 경직된 구조였다.
그러나 잡지의 텍스트 구조는
책과 신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모더니즘 디자인 사상가들은 간파하였다.
모더니스트들의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곧 잡지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펼침면을 하나의 단위로 간주한다
전통적인 조판방식을 탈피하고 잡지만의 고유한 구성방식을 가지게 된 변화의 요소를 살펴보면,
첫째, 잡지 기사의 리듬을 고려하게 되었다.
기사의 형식은 잡지의 주제와 포맷의 규범을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페이지의
기사들과도 연관을 맺는다. 표지에서부터 목차 그리고 본격적으로 본문 기사에 들어가기 이전 전주에 해당하는 단신 기사들,
또한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기획기사나 특집기사를 강조하기 위한 갖가지 장치들까지 리듬을 고려하여 조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잡지의 형식은 매우 유기적이고 순환적이며 반 자율적인 구조를 갖게 된다.
둘째, 잡지의 마주보는 페이지를 하나의 스크린처럼 파악하게 되었다.
잡지는 대칭적 접근이 아니라 펼침 페이지에서
시선이 대각선으로 흐르도록 하는 페이지 연출법을 요구하게 된다. 본문의 기사는 펼쳐진 두 페이지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정된 텍스트와 그림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시선의 흐름을 고려하여 보다 창의적인 페이지 구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인식하고 초기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디자이너들은 1930년대 최초의 아트디렉터 시대를 열었던
거장 디자이너들이었다. 그 중 특히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는
이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셋째, 잡지는 각 활자간에 계급적 조직이 요구된다.
한눈에 그 기사의 모든 요소들이 수용될 수 있도록 제목, 소제목,
전문, 본문, 중간제목, 발문 그리고 캡션에 따른 각 활자간의 중요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가독성을 높이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으며 독자들의 시선을 기사에 고정시킬 수 있는 다양한 그래픽 요소를 고안해내야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잡지의 특성적인 조건들은 곧 잡지를 더욱 형식화시키고 잡지의 페이스(pace)와 연속성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드, 구속될 것인가 벗어던질 것인가
다른 인쇄물들과 달리 잡지는 표지를 비롯해서 목차, 특집기사, 일반기사 등등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 요구되는 연속물이다.
그런 점에서 1950년대 스위스파 디자이너들에 의해 소개된 그리드 시스템(Grid
system)은 잡지의 시각적 통합체계에 매우 유용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리드 시스템은 복잡한 작업물을 디자인
할 때 그 효과가 더욱 발휘되는데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잡지에서는 그 활용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수직
칼럼은 기사의 단을 결정할 수 있고 수평 구획은 사진과 일러스트 등 이미지의 크기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International typographic Style)이라 불리운 스위스 모더니스트들은
논리적이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커뮤니케이터의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이 그리드 시스템을 매우 유용하게 활용했으며 195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국제적인 디자인 어휘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일기 시작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난들이 80년대 중반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며 더욱 거세짐에 따라 그리드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거부당하는 위기로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에미그레]의 발행인 겸 편집자인 루디 반데라스(Rudy VanderLas)는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그리드 시스템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손으로 하던 시대에 필요했던 도구이다. 중략)컴퓨터를
사용한다면 그 모든 복잡한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라고 하며 그리드 시스템의 사용을 거부했다.
이 같은 태도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열병처럼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전통을 거부하는 반항의
몸짓인 듯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잡지디자인 분야로서는 넌그리드(non-grid)라는 또 하나의 시각어휘를
갖게 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유용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리드를 굳이 폐기시켜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여길 이유도 없고, 넌그리드가 더 효율적인 정보전달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자유롭게 벗어던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이에 대한 선택은 정보의 특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해체주의는 삼차원으로 이끌어주는 통로인가
디지털 시대를 살게 된 우리는 잡지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우선 평면적인 공간을 다층적 개념, 즉 레이어(Layer)
도입으로 인해 삼차원적인 아이템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전통적 방식의 파괴를 의미하며 시각 혁명이라 부를
만큼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동시에 해체주의적 디자인 방식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책읽기 방식까지
흔들 만큼 새로운 시각언어를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이제 잡지는 더 이상 평면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능하면 삼차원적인 구성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잡지의 정보는
각기 다른 기사간에도 연관을 가지며 페이지를 넘나드는 편집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한 페이지 내에서도 글자가 파편처럼
잘라지기도 하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서로 겹치기도 하면서 다중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 접근법은
잡지를 더욱 매력적인 시각물로 만들어준다. 이를 창의적으로 이해한 데이비드 카슨(David Carson)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잡지는 책이나 신문과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의해
또 다른 도전을 받는 기성장르로 자리잡았다.
잡지가 그러했듯 온라인 역시 자신의 고유성을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방식으로 ‘다름의 소통로’를 찾아헤매고 있다. 잡지는 이러한 온라인 매체에게 정보를 분류하고 가공하는 방식에서
전통적인 원칙을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잡지는 기성 장르인 책과 신문에서 대범함을 배웠고 건축에서 삼차원적인 공간개념을 차용해왔다. 또한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고유성을 확보하며 디테일을 다듬는 섬세함을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정보 전달력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잡지가
그러했듯 온라인 또한 스스로 매체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차이 만들기’의 비결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_유정미,[생각과 느낌] 아트디렉터
|
[더 페이스]의 목차 디자인.
네빌 브로디.
잡지의 연속성에 착안하여 매호마다 실리는 ‘contents’라는
글자를 처음에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다가 나중에는 형태만 남도록 디자인했다.
네빌은 [더 페이스]를 디자인하면서 단지 전통이기 때문에 유지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우측 상단의 작업은 마돈나를 소개한 페이지이고 우측 하단의 작업은 앤디 워홀을 소개한 페이지이다.
이니셜
M이 신선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제목들은 네빌이 직접 고안한 글자들을 사용한 것이다.
[하퍼스 바자]
1955년 7월호.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모델들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사진도 마진까지
바싹 배치시켜 화면이 더욱 확장되어 보인다.
[에미그레]
통권 19호 내지 디자인.
루디 반데라스
[레이건]
1994년.
데이비드 카슨.
재즈 아티스트 브라이언 페리를 소개한 페이지(위쪽).
하지만 읽을
수가 없다.
문자가 아닌 기호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슨의 디자인은 가독성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designdb Home > designdb �옟吏� > 181�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