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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에 새끼발가락 성할 날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변
사람들은 여간해선 문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문은 문일 뿐이다.
직장이나 학교, 집을 오가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많은 문들을 지나칠 것이 분명한데 문은 여간해선 우리의 대화 소재로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가 문지방에
발을 찧거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 틈에 몸이 끼었을 때조차 우리는 그(녀)의 부주의나 민첩하지 못한
몸놀림에 혀를 찬다.
정작 높은 문지방이나 빨리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기야
그 사람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잘만 사용하는 문을 나무라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하나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통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연령과 신장,
성별, 성격, 혹은 신체적 특징이 다양한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고정된 문을 잘만 이용한다. 과연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크기와 방법이 고려돼야 하진 않은가? 예를 들어 손에 힘이 없는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병실
문에 레버식 손잡이 대신 돌려서 여는 실린더 손잡이를 달아놨다면, 그래서 환자들이 문을 열 때마다 힘들어 한다면 환자를
탓할 것인가.
고개를 돌려 제일 가까운 문을 쳐다보자. 이제 그를 의심할 차례이다.
문 손잡이의 위치선정과 Usability
일반 대형건물이나 상점과 같은 곳에서는 보통 양쪽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일명 자재문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뒤로 개패가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반면 그만큼 충분한 공간이 필요한 문이다. 이런 종류의
문 앞에 서게 됐을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과연 당겨서 열 것인가 밀어서 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에 큼지막한 글씨로 ‘PULL’이라고 써 있는 경우, 나는 잠시지만 심적으로 약간의 갈등에 휩싸이곤 한다.
영어를
모르면 좋으련만 분명히 당기라고 지시하는 사인을 앞에 두고 내 몸은 그 문을 밀라고 명령한다. 물론 이런 갈등은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간다.
내 머리가 그 동안 살아오며 나름대로 길러온, 혹은 제멋대로 자라난 눈칫밥을 이용하여 주위의
모든 정황(때와 장소, 심신의 피로도 및 장애요인, 문 건너편 상황 등)을 쥐도 새도 모르게 판단한 후 그에 합당한
결정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밀든 당기든 서슴없이 문을 통과한 후 일말의 재고도 없이 가던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왜 이런 심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당기라고 하는 사회적인 약속 이전에 인간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생리적으로 인간의 신체구조는 당기는
행위보다 밀어내는 행위에 훨씬 힘이 적게 들기 마련이다. 한 쪽으로만 밀도록 약속한 것은 다른 편에서 나오려는 사람이
있을 때 충돌을 막는다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보통 자재문이 유리로 되어 있는 것은 건너편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한 기능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 따지면 상업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약속에
다름 아니다. 보통 건물 문은 안으로 들어갈 때는 밀고 들어가게 되어 있고 나올 때는 당기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건을 사러 들어오는 사람이 이미 볼일을 마치고 나가는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치졸한 자본주의 상술에 지나지 않다.
그러므로 문에 붙어 있는 사인은 조금 길지만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If nobody out there,
PUSH’
밀고 당기는 문제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더 남아 있다.
보통 문 손잡이는 안팎으로 같은 위치에 달려 있다.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이것은 중요한 문제를 유발한다. 밀고 당기는 동작에 있어 사용되는 힘이 다른 것처럼 각 동작에
유리한 위치도 다르다.
즉, 당길 때는 허리 정도의 높이에서 가장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미는 동작에서
가장 편한 위치는 가슴께이다. 대부분의 문 손잡이는 허리 높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유리문의 가슴 높이에 끊임없이 지문 자국이 생겨 아르바이트생을 괴롭히는 원흉이요,
행여나 문에 글씨나 시트가 붙어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유독 그 부분만 너덜너덜해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손잡이의
위치를 적당히 조절하면 될 것 같지만 건물 내부의 바닥이 높고 외부가 낮은 경우, 턱이 있는 경우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높이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가장 쉽고 평이한 해결책은 손잡이 방향을
수직으로 해서 길게 부착하는 것일 터인데 이렇게 하면 신장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린이, 노약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며느리도 모르는 문의 잠금방향
Francis D.K. Ching의 [건축 인테리어 시각표현사전]은 손잡이의 잠금방향에 대해 ‘움직이는
방향의 경우 전형적인 사용자가 제어작동 관계를 판단하는 데 합당한 기계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각각의 위치에
따라 합당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기대할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나는 손잡이의 잠금방향을 이보다 더 어렵게 묘사하고
있는 예를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말뜻을 곰곰이 곱씹어보면 대충 이런 뜻이다. ‘모름지기 제품을 만들 때에는 항상
사용자가 제품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격언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잠금장치가 문틀 쪽으로 들어가야 잠기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열쇠를 잠그는
방향은 문틀 방향이고 여는 동작은 그와 반대일 것이라고 인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의
잠금장치는 이러한 사용자의 기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이다.
나만 하더라도 새로 이사한지
석 달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밖에서 열쇠로 열고 들어올 때 다른 쪽으로 돌리기 일쑤다. 아마 이에 대한 적절한 변명은
문과 손잡이가 따로따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손잡이가 문의 어느 쪽에 위치할 지 모르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니면 도둑이 침입을 시도할 때 조금이나마 헷갈리게 만들려는 목적이던지 어느 쪽이 진짜 이유이던 대게 네 가지
조합으로 문이 열리기 때문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밀고 여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소한 불편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닫는 인터페이스를 생각해보자. 예전에
수동이라면 도대체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며, 요즘처럼 버튼 식이라면 어느 쪽을 눌러야 하는가? 금방 떠올릴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험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인터페이스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괜시리 삶이 고달파진다. 조금 몸이 불편하고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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