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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2 : time, space, interface
face 6 cyber space

사이버 세계의 시간과 공간

기술은 사람의 힘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해준 것은 기술이지 신이 아니다.
신도 기술도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신이 인간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허상이라면, 기술은 인간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실상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기술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구원을 위한 노력이 일구어낸 결실인 것이다.

이런 기술사회의 한 정점이 이를테면 사이버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용어 자체는 여러모로 모호하다.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부터 분명하지 않다.
어떤 분명한 실체를 가리키기보다는 분명한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애매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기 십상이다.
도대체 어떤 이미지인가?
그것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 세상의 한계와 고통을 모두 넘어선 낙원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 세상의 한계와 고통이 더할 수 없이 진척된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같은 소설이나, 또 그런 소설을 시각화한 [코드명 J], [매트릭스]같은 영화는 이런 이미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는 현대 과학에 담겨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가능성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윌리엄 깁슨에 의하면 미래를 다루는 그의 작품은 사실 현재의 문제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미래는 저기 어딘가에 현재와 무작정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맞닿아 있는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요컨대 ‘우리 안의 미래’이다. 그것은 상당 부분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치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새로운 세계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물론 앞으로도 세계는 계속 변할 것이며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버 세계의 구성이나 특징도 마찬가지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사이버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사이버 세계란 사이버 기술을 이용해서 구성되고 운용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 기술이란 사이버네틱스를 응용한 기술, 쉽게 말해서 컴퓨터를 뜻한다. 사이버 세계란 컴퓨터를 보편적으로, 일상적으로,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사회이다.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정보 처리의 양과 속도의 비약적인 증가는 컴퓨터를 통신 단말장치로서 이용하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들을 가져왔다. 이 새로운 정보통신망은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며, 그것을 우리는 ‘인터넷’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은 우리의 실생활을 바꿔놓지 않는다. 다만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생성시킬 뿐이다.
사이버 세계란 이처럼 인터넷과 이것을 이용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가리킨다.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자연적 제약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의 기술적 능력 사이의 함수로 살펴볼 수 있다.
자연적 제약이 상수라면 기술적 능력은 변수이다. 따라서 기술적 능력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변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사회적 관계의 시공간적 범위라는 점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오랫동안 인류의 삶은 일정한 시공간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 태어난 곳이 세계의 전부라는 것은 오랫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분명한 진리였다.
이런 상황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은 산업혁명이었다. 화석연료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곳곳을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사회적 관계의 범위를 지구 전체로 넓히게 되었다.
지구적 차원의 동시성이야말로 산업혁명을 통해 전개된 근대화의 궁극적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시성은, 전근대의 사회적 관계에 비하자면 말 그대로 파천황의 변화였지만, 여전히 상당한 제약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 제약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통해 극복될 운명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방송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다.
월드와이드웹(WWW)에 바탕을 둔 인터넷의 대중화가 그것이다. 바야흐로 사이버 세계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인터넷의 대중화만이 사이버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일까?
텔레비전의 경우도 ‘지구촌’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의 실천적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인터넷은 대중이 직접 참여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통신망이다.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은, 비록 정보적 만남이라는 제한된 만남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한 부분이며, 기술의 발달을 통해 변화한 현실의 한 예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도 현실의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이 제약으로부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서로 소통하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사이버 세계의 물리적 실체는 지구적으로 열린 정보통신망이고, 주체적 실체는 그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며, 사회적 실체는 그 결과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관계이다.
이 세계에서 물리적 공간과 시간은 그 의미를 크게 잃는다. 나아가 이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시공간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이버 세계는 사이버 공간과 사이버 시간과 사이버 주체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물리적 세계에서 이루어진 변화이고, 이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의 문명이 이룬 커다란 성과이다.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과 24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물리적 세계가 휴지통 속으로 버려지고 영원히 삭제되지는 않는다.

글_홍성태, 상지대 사회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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