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element : metal

메탈, 그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

인류의 문명은 불로 싹트기 시작해서 철로 꽃피웠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철은 그저 땅에서 나오는 단단한 광물로 비교적 간단한 철기도구에 사용될 따름이었다.
이러한 철이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735년 에브라함 다비가 적은 단면으로 높은 강도를 갖는 새로운 철을 개발하면서부터이다.
이를 더욱 발전시킨 그의 아들은 1775년 길이 30m, 높이 15m의 최초의 주철교를 완성시키게 된다. 영국 코울 브룩데일의 세반강에 놓인 이 커다란 반원아치 다리는 철이 가진 가능성의 가시적 출발을 고했다.
철은 이후 18세기와 19세기 내내 거대한 활화산처럼 건축과 도시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된다.

‘형태 결정인자’로서의 메탈 ([현대건축 사고론], 길성호, 시공문화사, 2000, p171에서 인용)
18세기 산업혁명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고전주의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기존의 모든 것들은 이성과 자연과학의 논리에 근거한 도시와 건축,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로 변화되어 갔다.
여기서 철은 건축 디자인에 있어 새로운 공간구성과 형태표현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고딕건축이 가진 구조의 명확성, 표현의 진실성, 그리고 섬세함과 강렬함이 시대정신과 교묘하게 동조하면서 철에 대한 기대는 날로 커져만 갔다.
건축공간과 형태의 형식적 변화와 진보를 확장시키면서 현대건축의 근간인 테크놀로지의 패러다임과 연결되기에 이른 것이다.

건축가 헨리 라브루스트는 1862년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설계 당시, 비올레-르-뒤크의 고딕 건축의 구조적 합리성을 반영하여 16개의 연철과 주철 구조체가 거대한 유리 돔 천장을 지지하는 미적 내부공간을 완성시켰다.
고딕건축에 심취한 그의 시도는 ‘형태결정인자’로서 철 구조의 스케일을 거대하게 발전시킨 계기가 됨과 동시에 솔직한 구조의 노출로 고딕건축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철은 ‘아르누보 건축운동’을 통해 다양성이란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게 된다.
아르누보 운동이 추구하는 바를 정리해보면, 첫째 건물에 작용하는 힘의 흐름을 강조하고, 둘째 재료를 정직하게 이용하며, 셋째 내,외부의 일치로 인한 윤리성을 표현하며, 넷째 수공예적 작업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거대한 구조물을 양산하는 기능적 소재의 발견이 아닌 인간적인 디자인 패턴을 고수하자는 다양성의 추구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철은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커다란 의미에서 그 시대의 정신적 자유성과 진실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미래의 급변하는 시대요구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추진력이 되었던 것이다.

근대 건축 속에 꽃처럼 피어난 메탈문화
아르누보 운동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빅터 오르타(Victor Horta 1861~1947)의 타셀주택은 철의 자유로운 공간구성 기법과 유리의 조화를 통해 유동적 공간의 역동성을 표현하는가 하면, 식물 장식을 첨가해 환상적인 내,외부의 조형을 완성시켰다.
또한 1871년 쥬르 소르니에(Jules saulnier)가 노우슬 슈르 마르누 근교에 건설한 뮤네 초콜릿 공장은 전체적으로 목조건축 풍을 살리면서도 철 구조가 외벽디자인의 장식으로 사용되어 기존 재료와의 접맥을 시도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근대 건축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 ‘대영박람회’는 무려 6백만 명이 모여든 시대적 행사였다.
이 때 세워진 조립식 공법의 연철과 판유리를 이용한 거대한 온실인 수정궁(Crystal Palace)은 조경가 죠셉 펙스턴(1801~1865)의 작품이었다.
메탈의 육중한 무게감을 유리와의 만남을 통해 날아가는 새처럼 경쾌하게 가감시킨 이 건물은 단순한 온실건물이 아닌 근대와 현대를 주름잡은 철과 유리와의 만남을 고하는 서막으로 평가된다.
또 하나 이 건물의 의미는 규격화의 시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9개월 동안 건설된 이 우아한 투명구조물의 모든 건축부재가 규격화되어 기계적으로 조립된 것이다.
유리판의 최대 생산크기에 따라 철 구조물이 제작된 생산성과 경제성 그리고 모듈화의 고려가 이미 이 시점에서부터 고려되었다.

이에 질세라 영국과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프랑스는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에 페르디반 듀티르와 빅토르 콘타만이 설계한 어마어마한 기계 전시관과 에펠이 설계한 탑을 선보였다.
기계관은 총 429m 길이에 세워진 20개의 아치구조가 115m의 거대한 스팬을 지지하고 있어 그 거대한 크기와 철재가 가진 곡선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 형태로 승화시킨 작품이 되었다.
반면 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이 없는 에펠탑은 300m의 높이로, 힘의 흐름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철 구조로 시각화되어 있었다.
당시 저층 일변도의 도시 스카이라인을 가진 파리에 자유로운 역학 개념을 그대로 노출시킨 에펠탑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의 격한 논란을 극복하고 에펠탑은 ‘구조적 힘의 이동에 대한 즉물적 표현’이라는 미학의 경지로까지 승화된 철구조물의 예술적 극치로 평가되고 있다.

하이테크 디자인의 새로운 접맥
시간이 흐르면서 철은 점차 최초의 단순한 구조가 가지고 있던 육중한 구조적 골격의 이미지에서 보다 가볍고, 보다 가늘고, 보다 솔직함을 지닌 소재로 개발되었다.
물론 메탈 즉, 철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오래 전부터 론 헤론의 ‘움직이는 도시(Working City)’나 아키그램 그룹의 ‘플러그인 시티(Plug-in-city)’에서 보여지듯 이상도시에 대한 다양한 기계적 해석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결국 이러한 다양성은 현대 과학의 하이테크와 만나 보다 진보된 미래성의 그림 속에 자리하기에 이른다.

건축에 있어 하이테크 디자인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는 1977년 파리에 세워진 ‘퐁피두 문화예술센터’를 들 수 있다.
당시 디자인을 맡았던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는 파리의 빈민, 사창가를 도시적 의미로 훌륭하게 재해석 해냈다.
구조의 노출은 물론이고 계단과 배관의 돌출 등은 솔직함을 넘어서서 기술에 대한 과시와 실험적 건축으로까지 전이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철은 구조적으로 단순히 힘을 전달하는 역할 외에도 미적인 측면의 디자인이 가미되었으며, 때로는 가느다란 철사 뭉치인 와이어가 그 힘을 분배하는 등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적 요구를 훌륭히 소화해고 있다.

한편 하이테크 건축의 징표로 1986년 지어진 노만 포스터의 홍콩 상하이 뱅크는 외관의 강인한 구조가 표피로 노출되어 물리적인 하이테크 디자인을 상징화 시키고 있으며, 같은 해 완성된 리차드 로저스의 영국 로이드 보험빌딩 사옥은 오히려 메탈이 가진 표피의 금속성을 극렬하게 전달하면서 구조와 설비의 외부노출로 하이테크 디자인을 전달하고 있다.
이는 건축에서 철이라는 소재가 단순히 구조의 물리적, 구조적 요소에서 벗어나 건물의 표정과 이미지, 그리고 기술적 진보를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건축가 니콜라스 그림쇼의 1993년 영국 워터루 공항터미널은 구조성, 솔직성이라는 일반적 개념에서 한보 더 나아가 인체 생물학적 구조의 해석이 건축으로 표현되는 신선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과 미래를 향한 건축
디자인의 근원이 되는 원소로서 메탈, 즉 철재의 역할은 건축의 구조뿐 아니라 외관의 구성재료로서 무한한 영역을 넓혀왔다.
특히 20세기 현대건축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청동, 황동, 스테인리스, 부식철판, 티타늄, 알루미늄 등의 메탈을 사용해 역사적 기호와 형태를 인용하였으며 이러한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지루한 기능주의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현대건축에 가장 두드러진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작품에서 보여지듯 철은 파격적인 조형의 골격을 담당하고 외피의 이미지는 강한 티타늄 메탈이 감싸는 보다 복합적인 디자인 요소로서 자리하고 있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난 해체주의 건축과 디지털 건축의 경우, 이들을 하나의 조형적 ‘이즘’이라고 한다 해도 메탈을 근간으로 하는 중심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건축에서 두드러진 시도는 디지털 영상과 프로그램을 이용한 조형 디자인이다. 즉 건축 자체의 프로세스가 인간의 사고가 아닌 영상 속 신호변화나 흐름의 궤적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건축의 조형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디지털 건축’은 아직은 실험단계이지만 그들의 완성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재료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재료가 발견되어 18세기의 흥분을 재현할 것인지, 아니면 유리나 콘크리트와 함께 현대건축의 주체가 되어온 메탈이 언제나 그랬듯이 가능성의 프레임이 되어 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홍콩상하이 뱅크. 노만포스터. 1986.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프랑크 게리. 1991~1997	영국워털루 공항터미널 개념도. 니콜라스 그림쇼. 1993.

글, 사진_박민철 간향건축 소장

프랑스 파리 노틀담 사원.
비올레-르-뒤크가 복원한 고딕건축의 대표작.

비올레-르-뒤크.
철과 조적조로 돔을 이루는 개념.
1864.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헨리 라부르스트.
1869.

타셀주택.
빅터 오르타.
1895.
내부 철재장식.

영국 로이드 보험빌딩 사옥.
리차드 로저스.
1986.

뮤네 초콜렛공장.
쥬르소르니에.
벽 전체는 거대한 격자 트러스 역할을 한다.
1872.

퐁두피문화예술센터.
렌조피아노,리차드 로저스.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