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element : glass

유리, 건물의 무게를 가볍게 하다

새로운 것은 혁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은 정치적, 군사적 혁명도 있지만 여러 방면의 혁명도 있다.
예컨대 이 시대 자본주의 사회의 서막을 알리며 생산수단은 물론 일상의 생활, 문화, 과학 등 전분야에 영향을 고루 미친 결과를 낳았던 일대 사건, 산업혁명이 바로 그러하다.
건축의 역사 역시 혁명의 역사와 함께 한다. 혹자는 이 사건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건축에 관한 한 이 사건은 이후 변화 판도의 가장 확실한 동인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산업혁명은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네 일상이 지녀왔던 여러 상식적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의 축을 그려간다. 가장 먼저 보인 변화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이다.
수단과 기술과 방법이 이로 인해 변화를 맞게 되고 건축의 생산과정 역시 이 산업혁명의 시대적 변화 앞에서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건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건물의 무게감을 줄인 데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만을 뜻하지 않고 건축조영(造營) 방식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1850년대 영국에서 있었던 만국박람회에 거대한 유리건물, 이름하여 ‘수정궁(Crystal Palace)’이 지어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로 해서 건축의 역사는 그 지리한 봉건의 터널을 벗어나 ‘희망에 찬’ 근대를 맞게 된 셈이다.
말하자면 건축조영 방식에 있어 기존의 고전적 전통적 원칙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이 세워지려면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원칙, 예컨대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에서부터 지켜져야 했던 3단 구조로 대표되는 형태와 구조의 법칙이 무너지고 구조적 장치나 시스템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 서막이 바로 수정궁의 등장이었던 셈.

수정궁은 당대의 상식과 문화, 기술로서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박람회 전시장으로 임시건물로 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종교건축으로만 보아왔던 거대건물이 새로운 시대와 테크놀러지를 상징하듯 투명한 거대공간, 유리궁전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조셉 펙스턴이란 건축가의 작품인 이 건축물은 유감스럽게도 박람회가 끝나고 곧 철거되었다.
목적에 따라 이처럼 쉽게 집을 짓고 부술 수 있게 한 것도 건축의 진보 과정의 한 단편이다. 말하자면 건축이 지니고 있었던 과거의 관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법과 재료가 건축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게 된 셈이다.
철을 뼈대로 하고 표피에 유리를 붙인 수정궁의 건축적 조형은 지금 우리 시대에 하이테크 건축이란 이름으로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의 원형질과 같은 중요한 구실을 해냈다.
물론 건축 조형의 변화가 공법과 재료만으로 쉽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이런 환경을 건축물의 설계작업, 즉 디자인에 여하히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진행형의 문화적 현상이며 유효한 화두이다. 이런 변화의 힘은 바로 디자인이라는 창발적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리가 건축을 가볍게 하는 데 기여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건축 재료로서의 기능보다 공간의 미학적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은 그 변화 과정에서 많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창발적 상상력이 건축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의 대형 고층 오피스, 그것도 유리건축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유리 마천루(skyscraper)’를 설계한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건축적 상상력은 기계미학적 감성을 디자인에 적용한 예에 속한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안이었던 이 구상은 지금 시대의 건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탄탄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유리의 ‘혁명적 지위’ 변화를 알리는 단서이기도 했다. 이른바 고층 건축 유형은 바로 미스 반 데 로에의 건축적 상상력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유리는 건축조형의 변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를 제공해왔다. 그것은 이 재료가 지닌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유리는 과거에는 창이나 문의 장식재 등으로 건물의 한정된 부위에만 쓰이던 재료였다.
일반적으로 깨어지기 쉬운 유리의 성질을 견고한 성질로 변화시키는 테크놀러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입되면서 요즘은 인테리어의 장식적 제스처나 외부를 감싸는 표피로서 외장재가 아니라 실제 구조적인 힘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강한 유리까지 개발되어 건축공간의 표현수단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10여 층 규모의 건물을 모두 유리블록만으로 외부를 감싸 지은 건물도 등장했다. 이런 조형적 접근으로 해서 건물은 기술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유리의 투명성을 블록을 써서 번안한 조형성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낮에는 자연광이 은은하게 내부로 들어와 아늑한 실내 분위기를 만들어 주며, 밤에는 실내 조명이 유리블록을 통과해 밖으로 번져 나감으로써 건물전체가 빛을 발하는 커다란 발광체처럼 보이게 해준다.
유리 재료의 쓰임새를 한층 더 다양하게 꾸민 예라 하겠다.

건축의 질적 척도가 디테일에 있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말하자면 형태구성도 공간구성도 입면의 모양새나 구조적인 안정성도 모두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장인적 미적 감각을 동원하여 조화롭게 구성하여 건축공간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에 디테일한 감각이 따른다는 것이다.
건축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단서가 바로 디테일에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테크놀러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유리건축이다.
말하자면 투명성을 소재의 성질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투명한 성질을 그대로 살리고 다른 재료와 만나 건축적으로 기능과 구조와 안정성에 부합되는 형국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공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정교한 시공성과 미적 감각을 살린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도록 시스템화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과정이 바로 건축설계와 시공의 발전적 진보를 도모하는 계기를 가져다주게 된 것이고, 아울러 건축의 진보를 다루는 척도가 바로 유리건축의 디테일한 디자인 감각과 기술에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유리는 건축에서 가장 흔히 선택해 쓸 수 있는 재료인 만큼 그 특성을 살린 디테일한 디자인 방법들을 만들어 나가는 전문적 받침을 통한 건축술의 진보를 전망해 본다.

유리의 성질이 지닌 또 하나의 요소는 투명성이다.
이런 유리의 성질이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시키고 공간의 깊이를 더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융통성 있는 공간구성도 가능해졌다.
예컨대 과거 솔리드한 막힌 벽체로만 구성된 방들간의 관계가 유리라는 소재가 도입됨으로써 보다 보이드한 투명한 공간을 연출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단순히 공간을 투명하게 함을 넘어 내부공간 구조에 변화를 주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적 공간적 융통성이 강조되면서 방들간의 사회성도 그 공간이 아무리 개인적이라 해도 보다 공적 기능을 갖는 공동체의 문화로 변화해갈 수 있게 되고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투명함은 시각적으로 물리적인 명징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성의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다. 우리 사회가 투명하면 공정하고 정직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집 역시 투명하면 정직한 집이 될 수 있다.
그 투명함이 유리의 투명성이 주는 물리적인 성질로 뿐만 아니라 건축을 둘러싼 환경인자들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한 삶의 지혜로 옮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디자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글, 사진_이주연, [공간] 편집주간

투명한. 비밀스러운. 깨지기 쉬운. 고급스러운. 날카로운. 깨끗한. 밝은. 얇은. 응축된. 평면적인. 가로지르는. 금지된. 동경하는. 무색무취. 슬픈. 흐릿한. 흡혈귀. 비치는. 복제하는. 허구의. 뒤바뀐. 끌어들이는. 이중의. 내면의. 잠재적인. 격리하는. 소름끼치는.

1851년 런던의 박람회장으로 쓰였던 수정궁.
조셉 펙스턴.
산업혁명 시기의 ‘파르테논’으로 통하는 이 건물은 길이가 564m나 되고, 비계 없이 공사를 해낸 일화로 유명하다.

미스 반 데 로에가 설계한 유리 마천루 목탄 스케치.
현대의 고층 사무소 건축의 모델을 제시해준다.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이오 밍 페이.
고전의 규범에 대비되는 현대의 문명적 코드를 유리 피라미드로 은유하여 표현함으로써 시간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일본 도쿄포럼 중앙 아트리움.
라파엘 비뇰리.
도쿄역 부근의 복잡한 도시풍경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건물은 중앙 홀의 공간이 시야를 압도한다.

독일 연방의회 청사 유리 돔.
노먼 포스터.
19세기에 지어진 복합양식의 기존 제국 의사당을 통독 후 연방의회 청사로 리노베이션해 쓰면서 유리 돔을 설치했다.

LA 컨벤션센터 메인 로비.
콥 & 프리드.
집회와 전시 기능의 원형이랄 수 있는 수정궁의 형식을 현대적 해석으로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퐁피두센터.
렌조 피아노.
문화시설의 고정관념을 깨고 설비의 노출과 재료의 솔직성을 보여줌으로써 기계미학의 개념을 드러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