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element : fabric

패션, 옷감의 예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뒤지게 된다.
옷장에 옷이 많아도 종종 새 옷을 장만하는 이유는 물론 ‘패션’ 탓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 패션은 스타일, 색상, 소재 등의 요소들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의 요소들 중에 스타일은 가장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패션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인체의 형태와 동작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고 도는 패션 스타일은 과거를 참조하면서 문화적 의미의 켜를 더해간다.

요즘 복고된 1970년대의 보헤미안 히피스타일은 30여년 전 입던 옷을 소환하게 한다. 그러나 변화된 체형 탓도 있지만 어쩐지 선뜻 입고 나설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이는 주로 소재, 즉 옷감의 문제다. 유사한 디자인이라도 옷감의 차이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패션디자인은 종종 ‘소재의 전쟁’이라고 표현되곤 한다.
실례로, 지난 세기말 급부상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성공신화를 보자. 치열했던 패션계 각축전에서 그녀의 승리는 ‘프라다 원단’으로까지 불린 하이테크적인 옷감 덕택이 아니었던가.
프라다의 옷감 선택은 21세기를 디지털 문명의 시대로 낙관하면서 미래 지향적 테크놀로지를 표현하는 데 적중했던 것이다.

이렇듯 패션디자이너들에게 옷감은 새로운 문화의 감수성을 표현하고 디자인의 혁신을 초래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왔다.
패션사 역시 새로운 옷감의 개발과 함께 등장해온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이를 입증해 준다. 이는 옷감이 형식적 표현력과 문화적 상징성을 통해 패션디자인에 중요한 어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20세기 패션디자인의 혁신은 새로운 이념과 조형언어를 표현한 옷감 디자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초 이탈리아의 미래파 예술가들은 기계에 의한 힘과 속도가 지배하는 신세계를 전망했다.
따라서 그들은 현대 물질문명의 표명으로써 역동적인 비대칭과 사선의 기하학적 조형성을 회화, 조각, 타이포그라피뿐만 아니라 옷감 디자인에도 표현했다. 특히 화가 자코모 발라는 그의 회화에서 추구한 역동성을 옷감과 패션디자인에 반영했다.
이로써 패션은 장식적인 구시대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단순 기하학적인 형태로 현대 패션의 미학적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패션 소재의 물성과 함께 이뤄진 변화라기보다는 단지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에 의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20년대 입체파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소니아 딜러니의 추상적인 문양의 옷감이나 러시아 구성주의 화가 포포바와 스테파노바의 동적인 기하학적 문양의 옷감, 1960년대 히피문화를 표현한 패션디자이너 에밀리오 푸치의 사이키델릭 문양의 옷감도 이 부류에 속한다.

반면 소재의 물성을 문화적으로 해석한 경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세기 초 도래할 시대를 기계 물질문명으로 파악한 그녀는 1920년대 날씬한 여성상과 기계미학을 표현하는 소재를 발굴하고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저지(jersey)’라는 옷감으로, 원래 남성 내복을 만들던 값싸고 신축성이 많은 단순한 소재였다.
그러나 샤넬은 이를 해방된 신여성에게 활동성과 기능성을 주고 대량생산을 가능케하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획기적인 옷감으로 재해석하고 변신시켰다.
그 결과 저지로 만든 그녀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꾸준히 사랑받는 20세기 패션문화의 전형이 되었다.

한편 19세기부터 시작된 섬유과학 기술은 기존 천연소재의 단점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옷감을 개발해왔다.
견직물을 모방한 ‘레이온(rayon)’이나 ‘나일론(nylon)’, 신축성을 보완해주는 ‘라텍스(Latex)’나 ‘라이크라(Lycra)’ 등의 신소재는 과거 소재가 표현해온 패션디자인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예를 들어, ‘로도판(Rhodophane)’은 1930년대 아방가르드 패션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드레스 소재가 되었다.
이는 셀로판과 다른 합성섬유의 혼합물로 얇게 비치는 신소재로, 이를 사용한 스키아파렐리의 케이프는 착용자를 유령처럼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신비로운 환영을 추구했던 당시 예술사조인 초현실주의를 반영한 획기적인 패션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발명에 대한 스키아빠렐리의 독창적 감각과 소재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예술가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디자인을 기술이기보다는 예술로 간주함으로써, 예술과 패션간의 장벽을 없앤 선두적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다양한 비전통적 신소재를 패션에 접목시켜 예술적 감수성을 디자인에 표현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신소재 ‘라이크라’의 신화는 지난 세기말 ‘스포츠의 일상화’가 낳은 결과다. 현대인들은 20세기 내내 증폭되어온 스포츠에 대한 열광으로 신체의 노출과 함께 탄력있는 몸매를 가꿔왔다.
1980년대 절정에 이른 스포츠의 열풍은 기능적이며 멋진 몸매를 과시해주는 바디 컨셔스한 드레스의 유행을 이끌었다.
이때 탄성과 광택이 특징인 라이크라는 활동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하면서 역동적인 인체미와 자유를 표현하는 데 최적의 옷감으로 부각된 것이다.
라이크라 없이는 불가능했을 아제딘 알라이아의 몸에 딱 달라붙는 혁신적인 드레스는 당시 문화를 극적으로 표현해주었다.
이제 라이크라는 헬스클럽의 운동복과 일상복뿐만 아니라 파티복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현대 스포츠 문화를 상징하는 패션 소재로 자리잡았다.

물론 저지처럼 전통적인 패션 소재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되어 새로운 문화를 훌륭히 표현해준다.
예를 들어, 견고한 실용성 때문에 하류층 노동자의 소재로 사용되던 가죽이나 진은 1950년대 영화배우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란도에 의해 젊은이의 유니폼이 되었다.
이로써 이들은 젊음과 반항의 상징을 가진 새로운 소재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부활된 자연주의는 민속풍을 유행시켜, 진은 다시 낡고 바랜 반문화적 거친 이미지로 변화되었다.
또한 70년대 문화적 키워드의 하나였던 노스탤지어는 로라 애쉴리의 19세기말 소박한 면 프린트와 랄프 로랜의 서부개척시대 ‘칼리코(calico)’나 ‘깅검(gingham)’ 같은 전통적인 소재로 표현되었다.
당시 이브 생 로랑 같은 하이패션 디자이너들도 ‘트위드(tweed)’, ‘크레이프(crepe)’, ‘개버딘(gabardine)’ 등을 사용해 클래식한 레트로 시크를 표현하여 오랜 역사 속에 형성된 옷감의 문화적 의미가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패션디자인 진화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옷감의 혁신과 개발이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의복을 일컬어 착용자를 읽게 해주는 ‘사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의미 체계가 의복의 소재인 옷감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옷감이 한 시대의 기술과 예술이 종합된 한 문화의 집약체이며, 패션을 예술로 직조하는 가장 구체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화된 최초의 산업이며 산업혁명을 주도한 옷감생산이 현대적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표준화되면서 옷감의 문화적 의미는 퇴색해버렸다. 2차 대전 이후 이에 대한 반성이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와 같이 대두되면서 섬유예술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디자인 영역에 다원주의, 역사주의와 장식의 부활을 유도했다.
이로써 흥미로운 소재가 실험적 정신과 공예 기법으로 다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패션디자이너들은 최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전통적 공예 기법을 활용해 독창적인 신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그들은 풍성한 ‘소재의 어휘’로 패션을 디자인할 때 21세기 예술문화 생산자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소비자는 옷감의 문화적 상징성과 의미를 이해하고 패션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시각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문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글_김성복 [디자인 문화비평] 공동 편집인, 한성대 예술대 교수

부드러운. 순수한. 유행의. 따뜻한. 질긴. 타기 쉬운. 신축성. 여성적인. 감수성. 우아한. 오래된. 촘촘한 . 순응적인. 모성의. 도발적인. 숨기는. 표현적인. 비치는 .편안한. 보헤미안. 조용한. 버네클러. 종교적인. 우유부단한. 검소한. 스타일.

소재를 통해 미래지향적 테크놀로지를 표현해 낸 프라다 가방

샤넬의 ‘저지’로 만든 ‘리틀 블랙 드레스’.1926.
Richard Martin & Herold Koda.
1995.
Haute Couture.
New York: Metropolitan Meusem of Art.
p26.

포포바의 기하학적 옷감 디자인.1923/24.
Lidya Zaletova & others.
Revolutionary Costume.
New York: Rizzoli.
p93.

발라의 남성 슈트 스케치.1914.
Germano Celante.
1996.
Art/Fashion.
Milan: Skira editore.
p118.

딜러니와 그녀의 추상적인 옷감 디자인들
Jacques Damase.
1991.
Sonia Delaunay.
New York: Harry N. Abrams.
p168.

푸치의 사이키델릭문양으로 만든 후드 달린 케이프.1965.
Shirley Kennedy.
1991.
Pucci. New York:
Abbeville. p105.

스키아파렐리 '도로판' 으로 만든 케이프.1934.
Palmer White.
1986.
Elsa Schiaparelli.
New York: Rizzoli.
p127.

알라이아의 '라이크라' 드레스를 입은 모델 그레이스 존스.1985.
Pamela Golbin.
1999.
Fashion Designers.
New York: Watson-Guptill.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