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element : glass

나는 너를 반영하지 않는다_공포영화 속의 거울

그/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그/그녀의 눈이 나의 눈과 마주친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이런 행동을 취할 때 관객들은 잠시 영화적 허구로부터 벗어나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서 인식하게 된다는 주장, 즉 영화란 결국 허구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 매개체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특히 기이하고 환상적이며 때론 소름끼치는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보이는 공포영화의 스크린 앞에 선 관객들에게는 그러한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공포영화의 관객들에게 있어서 그/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은 영화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이 유령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 전에 우리는 한동안 그/그녀가 되어 불안하게 복도를 걸어가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그녀의 시선은 바로 나의 시선이다.
이것이야말로 그토록 많은 공포영화에서 시점쇼트(Point-of-view Shot)가 (때로는 별다른 고려 없이도) 애용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 융합은 파괴된다.
스크린은 거울이 되고 거울 저편에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서 있다.
문제는 이 거울, 스크린이라는 거울을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영화화면 속에 거울이 보여질 경우 이 거울은 종종 비인간적인 존재의 비밀을 드러내 보이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뱀파이어 영화에서 흔히 흡혈귀는 거울에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지 않는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장 루이 뢰트라라는 영화학자는 이러한 흡혈귀의 특성이 영화 카메라 자체의 비가시적인 속성과 유사한 것임을 지적한다.
영화 카메라는 거울에 비친 피사체를 잡을 때조차 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비단 흡혈귀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매우 오래 전에 만들어진 무성공포영화 [프라하의 대학생](스텔란 라이 감독, 1913)에서도 거울은 파우스트적 계약에 자신을 내맡긴 주인공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장치로서 묘사되고 있다.
거기서 거울이 깨어지는 순간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의 반영을 되찾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을 목전에 앞둔 최후의 시간이다.

공포영화에서 거울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기서 종종 거울이 그 고유의 속성, 즉 그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는 속성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물처럼 제시되기 때문이다.
보여져야 할 것이 보여지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보여질 때, 혹은 사물의 좌우를 뒤바꿈으로써 예상치 않게 비밀을 드러내는 순간 - 가령 [샤이닝](스탠리 큐브릭 감독, 1980)의 경우 - 감당해내기 힘든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이다.
혹은 때로 공포영화에서의 거울은 그 앞에 놓인 대상을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두려운 것이 된다.
이때 거울 안에는 우리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이 다른 세계의 존재는 자꾸 밖으로 뛰쳐나오려 하거나 인물들을 그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물론 그 세계는 앨리스가 경험한 동화적인 환상공간만은 아니다.

존 카펜터의 정말 소름끼치는 영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의 한 장면은 바로 이러한 거울 속의 세계를 그려내 보이고 있다.
이처럼 괴이한 거울은 약간 학술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인물들(과 관객들)이 지니고 있던 자신의 신체에 관한 ‘상상적인 충일성’, 세계에 대한 총체적 감각을 파괴해 버리는 그런 것이다.
이때 인물들(과 관객들)은 거울 속에서 발견한 이상적 이미지로부터 자신이 분리되어 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혹은 더 이상 거울은 그러한 이상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순수한 사물이 되기를 거부한다.

앞에서 영화 스크린은 그 자체로 거울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지 영화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주장을 반복하기 위해 끌어들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성질을 지닐 수도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사실 흔히 스크린은 그 밖의 현실을 충실히 기록, 재생해내는 거울처럼 받아들여져 오기도 했다.
다만 실제의 거울이 지나가는 현재를 반영하는 것인 반면 스크린은 보존된 과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스크린을 찢고 (혹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모니터를 깨부수고) 무언가가 밖으로 빠져 나오는 순간은 이중의 이유로 두려운 순간이 된다. 즉 이곳과 다른 세계일 뿐 아니라 다른 시간(과거)으로부터 찾아온 공포의 대상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1983)이 가장 좋은 예가 되겠지만 [링](나카다 히데오)을 떠올려 보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거울과 관련된 가능한 모든 예들 가운데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을 빠뜨리고 지나가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 거울과 유리가 지니는 의미심장한 잠재력을 극한까지 밀어 붙여본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거울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나타난 거울들과 같은 판타스틱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의 거울들은 그저 거기에 무심히 놓여 있을 뿐인데도 자꾸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이코](1960)의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 마리온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화장실 벽에 걸린 거울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거울은 인물의 외양이 아니라 내면의 죄의식을 비추는 사물이기에 그 어떤 판타스틱한 공포영화의 그것보다 더욱 두려운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한편 [스트레인저](1951)에서 풀밭에 떨어진 안경을 통해 왜곡되어 보여지는 살인자의 모습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범죄를 지켜본 관객들의 정신 속에 이 세계가 언제고 순식간에 낯설고 두려운 이미지로 전환될 수 있는 것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결국 영화에 나타난 거울이 두려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미 지니고 있던 통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거울 속의 존재들은 그저 거울 밖 존재들을 따라 보여질 뿐이라는, 거울은 언제나 외양만을 충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통념. 공포영화는 그러한 통념과 그에 대한 위반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의 게임이다.
정작 이상한 것은 그 불가능한 위반을 상상적으로나마 체험해보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욕망이다.
혹시 그것은 거울 저 너머의 세계야말로 중심이 위치한 곳이고 우리는 단지 그 변두리에서 마주하기 두렵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피해가며 초라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은 아닐까.

사진_Everett Collection, 유로포토
글_유운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