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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면의 혁명, 티셔츠

“ 티셔츠는 절대로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티셔츠는 이미 패션을 넘어서 있다.”
- Elle

당신의 옷장을 열어보라. 그곳에는 틀림없이 몇 벌의 티셔츠가 납작하게 개어져 있을 것이다.
T자 모양으로 재단된 면 조각, 사람의 상체를 그대로 빼닮은 이 단순한 옷이 전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지 이제 반세기 가량이 지났다.
오늘날 티셔츠는 일년에 2억 벌이 팔리는, 가장 보편적이고 동시에 가장 신화적인 사물이 되었다.

티셔츠는 19세기 말, 미 해군의 속옷으로 등장하였다. 하얀 면으로 만들어진 티셔츠는 신축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위생적인 느낌을 주었다.
위생상의 필요로 만들어진 이 기묘한 옷이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약 반세기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는 그들의 사진과 함께 전해지면서 하나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용 티셔츠를 제작했던 Roebuck and Co. 회사는 티셔츠의 다른 가능성을 발빠르게 알아차렸고, 곧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를 만들어내었다.
“당신만의 개인용 티셔츠를 갖기 위해 꼭 군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티셔츠가 20세기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좀더 자극적인 촉매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섹시했던 두 남자, 마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보다 제격인 사람은 없었다.
1953년의 영화 [The Wild One]에서의 마론 브란도와 1955년의 영화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서의 제임스 딘은 각각 속옷처럼 몸에 달라붙는 옷, 티셔츠를 입고 나와 기성사회 질서를 조롱했고, 이 제스처는 불만에 가득찬 전후 세대의 감성을 폭발시켰다.
젊은이들은 이 하얀 속옷을 입고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하였고, 그것은 그 자체로 부모 세대에 대한 통렬한 야유가 되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디자인된 옷이 바야흐로 그 질서에 대한 조롱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히피의 시대였던 60년대와 펑크의 시대였던 70년대를 거치면서 티셔츠는 단순한 패션이 아닌, 불만에 가득찬 젊은이들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가장 적절히 드러내는 매체로 자리잡아 갔다.
티셔츠의 앞면과 뒷면은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캔버스와 같았다. 하얗기만 했던 티셔츠에는 몽환적인 나염과 직설적인 구호가 가득차게 되었다.
티셔츠는 발언권을 제한당한 청년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티셔츠가 부여한 자기 표현의 공간은 태생적으로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극히 개인적인 사물임과 동시에 대량 생산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히피와 펑크들은 완전한 무정부주의를 노래하기에 앞서 소비자가 되어야만 했다.
젊은이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을 제공했던 패션디자이너들(예를 들어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같은)은 점차 거대한 패션 산업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와 동시에 티셔츠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메이저 패션 회사들은 발빠르게 거리의 스타일을 자신들의 아이템으로 편입시켜 갔다.
100% 면으로만 제작되던 티셔츠는 이제 고급 소재인 실크나 라이크라와 같은 신소재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히피와 펑크 스타일, 그리고 곧 이어 등장한 힙합 스타일은 샌프란시스코와 런던, 브루클린을 넘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최신 유행이 되어갔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패션. 이렇게 티셔츠는 민주적이고 개성적인 특성과 지극히 상업적이고 대량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발전해나갔다.
장 보드리야르가 “모든 구매과정은 개인의 개성과 제품의 개성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지적했을 때, 그것에 가장 걸맞는 예로 우리는 티셔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와 질서사이의 이러한 묘한 긴장이 티셔츠를 다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상품 질서에 포획당하긴 하되 완전히 사로잡히지는 않는 것, 언제나 거리의 스타일이 브랜드 숍의 스타일을 앞서가는 것, 그것이 티셔츠인 것이다.

앤디 워홀은 코카 콜라를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민주적인 사물이라고 칭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하게 티셔츠야말로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개성적인 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아이들은 최대한의 개성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다.
그 소중한 시도의 한가운데에 티셔츠가 있는 것이다.

글_김형진, 객원기자

체 게바라 티셔츠
체 게바라 티셔츠...티셔츠에 새겨진 메시지는 그것이 비록 정치적이라 할지라도 패션이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2차 대전 중인 1942년

7월 [라이프]지 표지
아나키즘에 대한 글이 빼곡히 적혀있는 티셔츠.
티셔츠행동당

몽환적인 분위기로 염색된 티셔츠.
티셔츠행동당.

때수건도 때론 개성을 나타내는 훌륭한 아이템이다.
티셔츠행동당.

자료제공 :
티셔츠행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