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element : metal

철기시대 이후, 금속과 무기

“전쟁은 역사의 근본적인 일부분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삶의 여러 핵심 요소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과 안전한 거주지는 원시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렇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전쟁의 역사]중에서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철을 생산하는 한 기업의 CF에 등장하는 멘트이다.
그러나 철만큼 시끄럽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또 있을까? 처음 철길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 무거운 철덩어리가 움직인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야만 했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 경, 철기가 발명된 이후 가장 변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농기구일 것이고,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기일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것은 역사상 조용한 적이 없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무기는 철을 뭉뚱그려 만든 철퇴였다. 그에 대응해 단단한 투구가 등장하자 인간은 도끼를 만들어 내었고, 이어 칼, 창이 발명되었다.
모순(矛盾)의 우화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행진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어 러시아가 스커드 미사일을 만들면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만들고, 이라크가 단단한 방공시설을 만들면 미국은 이를 뚫는 딥디거(Deep Digger) 미사일을 만들어낸다.
이 어리석은 연쇄는 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희귀한 자원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아마 이런 말을 믿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불량 국가(Rogue State) 혹은 ‘악의 축(Axis of Evil)’으로부터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최근 유행하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무기가 권력의 정치적 도구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요즘의 사정은 좀더 복잡하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과 무기는 정치적 도구라기보다는 경제적 도구에 가깝다.
1차 대전 이후 지독한 공황에 빠졌던 미국 경제가 회생한 것은 뉴딜 정책의 성공과 함께 2차 대전 발발에 크게 힘입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뉴딜 정책을 이끌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병기창이 되어야 한다.”라며 신나게 무기들을 찍어냈다. 1943년, 미국 내에서 전쟁 관련 직종에 취업한 인구수는 6,500만 명에 달했다. 고질적인 실업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음은 물론이었다.
또한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일본 경제가 극적으로 되살아난 것은 다름아닌 한국 전쟁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상식이 되었다.

이것은 인류가 무지몽매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로마클럽]의 보고에 따르면, 냉전 논리가 아직 유효했던 1980년대, 미국의 500대 다국적 기업 중 125개가 무기 사업에 손대고 있었고, 일본의 경우 25대 기업 중 10개가, 서독과 영국, 프랑스의 경우 국제적 명성을 지닌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무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냉전이 끝났으니 이제 이 기업들이 냉장고나 자동차, 혹은 핸드폰이나 팔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냉전 직후에 벌어졌던 걸프전 이후 미국 경제가 10여년 가까이 호황을 누린 사실은 전쟁과 경제간의 함수관계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현대 디자인에서 기능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도 좋을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무기 디자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디자인해야 가장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장 무해한 기능을 무기에 부여할 수 있을까를 디자이너가 고민해야 한다면? 아마도 기능성이 디자인의 적이라는 전혀 다른, 또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현대의 무기들은 대부분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형태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묘한 심미성을 지니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경구에 쉽게 동의하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날씬하게 생긴 전투기나 미사일을 보고 사람들은 섹시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금속 덩어리를 보고도 아름답다거나 디자인이 훌륭하다고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_김형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