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element : plastic

판타스틱 플라스틱 제네레이션

“가짜 플라스틱 지구 위에 놓인, 가짜 중국산 고무나무를 위한, 녹색 플라스틱 물병 그녀는 진짜처럼 생겼어, 그녀는 진짜 같은 맛이 나, 나의 가짜 플라스틱 러브”
- [라디오헤드(radio head)의 노래 '가짜 플라스틱 나무들(fake plastic tree)'중에서]

조화(造花)가 생화보다 비쌌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기로 만든 컵보다는 플라스틱 컵이 환영받고, 누런 종이 장판보다 ‘모노륨’을 까는 것이 더 품위 있어보였던 시절 말이다.
그 좋았던 시절을 보낸 플라스틱은 이제, 그 반짝거리는 표면에 ‘싸구려 가짜’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시장 길목을 어슬렁거리는 늙그수레한 옛 건달처럼.

라디오헤드의 노래에 등장하는 세상은 온통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러니까 진짜인 양하는 가짜의 세계다.
지구도, 그 위에 심어진 고무나무도, 심지어 사랑까지도 그럴듯한 플라스틱 가짜다.
당구공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난 태생 그대로 플라스틱은 아직도 ‘진짜인 양’하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 닮은 플라스틱 반지, 나무결 무늬를 복제해 만든 플라스틱 책장, 그리고 진짜 꽃 인양 꽃병에 꽂혀 있는 조화까지. 그것들은 하나같이 싸고, 유치한 색깔을 지녔으며, 천박한 광택으로 뒤덮여 있다.
고고한 진짜들의 세상에서 플라스틱은 영원히 원본이 될 수 없는, 싸구려 삶을 살아가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들처럼.

“나는 바비, 세상의 바비걸, 플라스틱 세상은 정말 멋져요... 상상해봐요, 세상은 당신이 창조하는 거예요.”
- [아쿠아(aqua)의 '바비걸(barbie girl)'중에서 ]

이런 플라스틱을 구원한 것은 플라스틱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이었다.
종이봉투보다 비닐봉투에 익숙하고, 헝겊인형보다 ‘마론인형’에 열광했던 아이들.
그들에게 있어 플라스틱은 물기 촉촉한 생화나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묵직한 컵, 고급 원목으로 짜여진 책장보다 훨씬 더 생생한 진짜일 수 있었다.
인공적인 삶의 환경에서 질식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모조성, 인공성, 일회성을 자신들 특유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플라스틱은 너무나 아름다운 색상을 지닌, 자신들 삶의 상징적 물질과 같았다.
아쿠아의 노래는 플라스틱에 부여된 새로운 미학을 발랄하게 노래한다.

“미스터 슈샤인에게 ‘안녕’하고 인사해봐요, 디바 아씨 곁을 지나칠 때, 멈춰서서 바라봐요. 아! 이건 너무 판타스틱해, 나는 플라스틱 세상에 살고 있어요.”
- [아쿠아(aqua)의 '화성으로부터의 귀환(back from mars)'중에서 ]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공적인 사물로부터 위안을 얻는 세대.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 이들에게 있어 더 이상 플라스틱은 싸구려의 대명사도, 원본의 대용품도 아닌, 표면적이고, 부유하는 자신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조건과 같은 것이 되었다. 더 나아가 큐어가 노래하는 플라스틱은 이미 가짜와 진짜 사이의 거리를 넘어선다.
라디오헤드의 세계, 즉 가짜 플라스틱으로 넘쳐났던 공간을 넘어, 이제 사랑스러운 여인도, 엄마도 플라스틱적인 열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플라스틱 열정은 사랑스러운 여인, 플라스틱 열정은 대리석으로 만든 엄마, 오! 이것이 플라스틱 열정”
- [큐어(the cure)의 '플라스틱열정(plastic passion)'중에서]

소각하면 악취와 함께 다이옥신을 배출하는 플라스틱.
썩지도 않고 몇 만 년 동안 그 자태와 색상을 유지하는 플라스틱. 그래서 우리에게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플라스틱.
그러나 이제 플라스틱은 그 우울한 비전에서 벗어나 무엇보다도 발랄하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사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흙을 그리워하지 않는 세대, 풀 내음보다 아스팔트 내음에서 안심을 느끼는 세대.
번쩍거리는 철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를 지나 유치하게 반짝거리는 플라스틱의 유희로 가득찬 시대를, 이 새로운 세대가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글_김형진,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