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산업디자인 잡지 > 165호

디자인 프롤로그

디자인과 국제경쟁력

필자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서양 사람들의 독창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곤 한다.
새가 나는 것을 보고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비행기를 발명해 내고, 이를 제작한 서양인들의 뛰어난 독창성에 감탄하는 것이다.
우리도 물론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 만든 비행기를 보고 이를 모방하여 만드는 우리와, 전에는 없던 비행기를 새롭게 처음으로 제작해낸 서양 사람들의 독창성 사이에는 쉽게 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공항은 일본인이 자랑으로 삼는 관문이다. 그러나 이 공항을 설계한 이는 이탈리아의 건축가로서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사람이다.
자기 나라의 관문을 지으면서도 자국인은 아이디어가 부족하여 서양 사람에게 설계를 맡긴 것이다.우리는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IMF 사태를 맞기 전에는 세계 전체에서 경제규모가 11번째로 큰 ‘경제대국’이었다.
짧은 기간에 국민 소득이 1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도성장은 주로 모방(Imitation)에 의한 것이었다.
즉, 선진국 사람들이 만든 자동차나 텔레비전을 잘 보고 이를 모방하여 생산, 수출함으로써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모방에 의한 수출이나 성장은 곧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혁신(Innovation)을 하여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서 생산, 수출하는 식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선진국이란 정의 자체가 남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을 이룩할 수 있는 나라이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수출품이 선진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시장 점유율은 88년의 4.6%에서 98년엔 2.8%로 급감하였다. 또한 일본에서의 시장점유율도 같은 기간 중 6.2%에서 4.3%로 크게 감소하였다.
우리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려면 소득이 높아 시장의 규모가 방대한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계속 늘어나야만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즉, 우리는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에 밀리고 있다. 이는 한국 수출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 수출품이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 몫을 잠식한 결과이다. 즉, 우리는 중국에 중, 저가품에서 가격경쟁력이 뒤져 패하고 만 것이다. 이는 중국의 임금과 물가가 우리와 비교하여 매우 싸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한국은 중국보다 20년이나 먼저 공업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값싼 중, 저가품에만 매달림으로써 품질이나 디자인 등의 측면에서 비(非)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였다.
지금쯤은 의당 좋은 품질의 고가품을 수출함으로써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섬유, 신발, 가죽제품 등 경공업 분야도 패션이나 디자인을 새롭게 개발하면 얼마든지 첨단 산업으로 육성할 수가 있었는데 너무 일찍이 경솔하게 사양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그 결과로 전체 공업부문에서 경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인 일본보다도 훨씬 낮은 결과가 빚어졌다.

경공업품뿐만이 아니라 다른 제품의 경우에도 선진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즉, 품질이나 디자인의 우수함이 가격보다 훨씬 중요한 국제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에도 이제는 성능이나 기술면에서 국가간 격차는 크게 좁혀졌다.
따라서 경쟁력은 주로 자동차의 디자인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아야 한다.

경제 성장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우리 수출은 주로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수출이란 주로 중, 저가품의 수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안이한 수출방식을 계속하니 중국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환율이 조금 떨어지면 수출이 안된다고 아우성들이다. 환율인하가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수출이 디자인이나 품질로 승부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가격이 싼 중, 저가품 수출만을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이는 이윤도 별로 남지 않고, 후발국의 추격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런식의 수출방식으로는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도 없다.

하루빨리 싸구려 물건을 대량으로 실어 내는 식의 수출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머리를 써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을 이룩하여 소비자의 취향에 알맞은 고가, 고품질의 제품을 세계 만방에 수출할 수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출현해야만 수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고, 우리 경제도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천년 고도 경주에 갈 때마다 기와의 문양과 디자인이 뛰어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현대 감각으로 볼 때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의 기와를 그 오래 전에 이미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글, 금속활자, 거북선 등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은 원래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단지 우리가 그 잠재력을 현대에 되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는 노동, 자본, 기술 등의 전통적인 생산요소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식이 제일 중요한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의 시대가 되었다.
즉, 머리로 모든 것의 승부가 판가름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디자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조하여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 경쟁력의 기본이 된 것이다.
이제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안이한 경쟁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때가 되었다.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독창성을 발현하여 뛰어난 디자인으로 일등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나와야만 한다. 이 길만이 기업도 번창하고 국민경제도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정창영
1943년 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원 경제학 석, 박사
경제기획원 경제정책자문위원,
코리아 이코노믹 리뷰 편집인,
한국경제학회장 역임.
현재 기획예산처 예산자문위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재직중.


 
산업디자인잡지 목록으로 가기designdb 메인화면으로 가기
산업디자인 1999년 07 08월호 (165호) 첫페이지로 가기
프롤로그
디자인 프롤로그
리뷰 : 1999 어울림 한민족 포스터 대전
특집
1999 서울 어울림 국제 디자인 워크숍
예술로 승화된 가난- 올레 앤더슨
날조와 날림 - 최정화 가슴시각연구소
인간과 자동차, 그리고 디자인의 랑데뷰
디자인 데스크
디자인비지니스-한국기업의 브랜딩 전략 문제와 대응책
디자인비지니스-쌈지의 '아트마케팅'
디자인과 의장법-지방자치단체, 단체상징상표 및 캐릭터 확보에 노력
KIDP 개발지원상품
톱 10 지도위원
  이유섭    /    정진영    /    이권식
  하기옥    /    최종석    /    정동성
해외 산업디자인
핀란드의 제품디자이너, 요하니 살로바라
해외우수디자인업체, 미국 'IGUANA'
산업디자인 정보
올 커뮤니케이션
김현선 디자인연구소
디자인 상품 전문매장 '디자인 숍'
문화상품 디자인 기술개발에 관한 연구
소비자 선호형태 창출을 위한 제품형태 분석방법에 관한 연구
인터뷰
차기 이코그라다회장 '데이빗 그로스만'
컬럼, 에세이, 디자인센서스
'T' 자형 인간
이제는 '브랜드 시대'
산업디자인 정보 - 원형을 찾아서
옹기,고려청자,분청사기 / 조선백자
design 소식
디자인 뉴스


잡지/웹진 '산업디자인'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간하던 격월간 잡지로 1970년 11월 '디자인·포장' 창간호가 1983년 2월까지 발행되고, 1983년 4월(no.67)부터 '산업디자인'으로 명칭변경되어 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조회수 :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