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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예술로 승화된 가난

Olle Anderson 올레 앤더슨

내 강연의 제목은 ‘예술로 승화된 가난’이다. 이러한 제목을 붙이도록 영감을 준 것은 19세기 중엽의 스웨덴 작가 Jonas Love Almquist가 쓴 ‘스웨덴에서 가난의 중요함’이란 책자이다.
이 책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이 시기는 스웨덴의 각 가정이 자급생활을 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고, 전통적인 스웨덴의 고전적 사회가 아직 산업화 되기 이전이다.
더욱이 19세기 후반에는 스웨덴에 자연주의적 낭만주의가 팽배해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쓰여진 Almquist의 이 책자는 지금도 스웨덴의 디자인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할 때 언급되고 있다.

독특한 지리적 위치, 자연, 기후, 천연자원 등을 지닌 스웨덴은 디자인에 있어 다른 나라와는 차별화 되는 자국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의 지리적 여건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에서 문화적 생활을 함에 있어 변화에 빨리 영향을 받도록 하지는 않았다.
Almquist는 그의 책자에서 스웨덴의 지리적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지도를 보게 되면 오래된 대륙과 반도로서 유럽의 북서쪽 코너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바다에 둘러싸여져 있는 곳을 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캠차프카 반도로서 다른 곳과 고립되어 있는데, 그곳에서는 문명화된 세계로부터 가두어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캠차프카의 북서쪽 변방은 위도가 높고 또 다른 반도는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진보와 발전의 결과물인 스웨덴의 디자인은 별반 손댈 필요 없는 완전한 것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스웨덴의 스타일은 스웨덴이 지리적으로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 유산과 외국의 영향을 흡수하여 자기화 하는 특수한 상호 연관성을 통해 발전되었다.
스웨덴은 오래 전부터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외국의 문물을 수용하여 왔고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비록 무역의 통로와 영감의 원천이 스웨덴과 같지는 않아도 이러한 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Almquist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그는
“이국적인 것에 강한 열정을 지녔던 상류 계층의 사람들은 스웨덴의 순수한 것들을 부정했는데, 이것은 자신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기본적인 열망에 있어 스웨덴식과는 다른 것들을 찾으려 했음을 의미한다.”
고 말했다. 오늘날 진정한 스웨덴의 정체성은 스웨덴의 가난한 농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Love Almquist는 평범한 대중 속에서 영감을 발견한 스웨덴의 첫 번째 사람이다.
그는 스웨덴을 유럽의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주장했고 또한 우리는 가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인용: “우리들 모두는 어느 정도 가난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난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고, 필요할 때 걱정 근심 없이 가난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 가난이라고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가난을 승화시킨 예술에 관해 기술했다. 또한 1800년대 중반에 일찍이 절약과 검소함을 찬미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중산층에서 이상적인 것을 찾으려 할 때 농부의 단순성의 가치를 얘기한 예외적인 사람이었다.
18세기 유럽으로부터 필요한 현실적 영감을 조심스럽게 채택하였을 때도 스웨덴에서 가난이라는 것은 이미 스웨덴에 기여하는 요소가 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지역적인 특성들을 갖는 이국적 개념들에 동화되는 동안에도 그것은 항상 건재했다.

구스타브 3세의 제위기간이었던 1771-1792년에 프랑스의 루이 16세 스타일을 스웨덴어로 번역한 것은 스웨덴의 수공예와 건축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한 획이 되었다.
이국적 스타일의 단순함과 함께 색상, 직조, 제품과 가구디자인 등에서 전형적인 스웨덴의 경쾌함을 그 기준으로 하였다. 어떠한 대륙적 스타일도 스웨덴 기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구스타브 3세의 제위기간 중 우아하고 단순한 것은 중산층 가정이나 시골집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외국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이 많아지는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전형적인 스웨덴식 스타일을 찾게 되었다.

Almquist는 단순한 형태로 지어진 집들을 모델로서 제시했는데, 어떻게 재료 자체가 주는 느낌과 아름다움 그리고 실용성을 위한 욕구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지고, 또한 어떻게 기능적으로 바람직하게 제작되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적인 접근방법은 기초에 불과했으며, 결코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물건과 장식들을 위한 욕망을 완전히 배제시키지는 못했다.

오두막의 벽들은 자연 재료나 또는 밝은 흰색을 띠는 목재로 만들어졌다. 농가 오두막의 실내에는 빛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집안에서 빛이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양초를 밝히기 위해 기름을 사는 것은 농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1850년대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낮과 어둠을 밝혀야 되는 밤의 세계로 나뉘어진 것은 변하지 않았으나, 20세기로 진입하면서 석유램프가 나오면서 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두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을 갖게 한다고 생각했다. 환상은 북유럽의 무용 전설들을 위한 전조가 되고 땅속의 요정과 난쟁이를 위한 신화가 된다고 보았다.
축제 기간 중 가난과 어두움은 낭비와 관대함 등의 반대적 요소로 변형된다. 무늬를 넣은 두꺼운 천 즉 일명 타피스트리는 벽에 풍요롭고 강렬한 색상을 선보인다. 검정과 오렌지색 등과 함께 자극적인 빨강, 파랑, 녹색 등은 리듬의 조화를 창출하고 쿠션과 베개 커버 및 천들을 화려하게 빛나게 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밀집 또는 해변가에서 채취한 마른 해초로 채워진 침대에서 잠을 잤으며, 메트리스나 침대 베개를 사용하지 못했던 때가 많았다.

19세기 후반, 스웨덴 농가의 오두막에서 러그들이 생산되었다. 처음에는 헝겊 자투리를 이용한 러그들이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텍스타일은 쓸모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점차 폐물의 텍스타일이 증가된 반면, 축제 기간 중에 주로 사용되었던 러그들은 주말은 물론, 추위를 막고 서로가 친숙해지고자 할 때 긴요하게 활용되었으며, 노인들이 특히 애용하였다.
러그는 여전히 스웨덴 가정이나 섬머하우스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떻게 새로운 사용을 위해 재료들을 재사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19세기의 스웨덴은 1년에 6개월이 춥고 어두운 겨울이였고, 항상 가난했다. 작은 다양한 직물 조각을 바느질하여 비록 제대로 된 번듯한 재료를 살 수 있는 돈은 없었지만 침대 커버를 제작할 수 있었다.
수공업에 의한 퀼트는 텐트 뿐 아니라 의식용 텍스타일과 깃발 등으로 제작되어 세계의 많은 문화권에서 수용되었고 영국, 독일, 스페인 등에 의해 미국으로 전해졌다.
우리는Amish(17세기 말 Ammanm과 함께 도미한 그리스도교도) 사람들이 단순한 기하학적 패턴과 강한 색채로 퀼트를 제작했음을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은 수공 퀼트 제작에 있어서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스웨덴 퀼트의 제작기법은1880-1890년대의 큰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에 이주해온 사람들에 의해 전수되었다.
그들은 낡고 오래된 천들을 이어 직조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가난한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오래된 집들과 많은 오두막집들 속에서 빛을 다루는 면에서 또한 규모나 세부적인 측면에서 놀랄만한 우수성을 발견하곤 한다. 산업화와 함께 부(富)를 축적하게 되었고 지역적인 환경도 많이 변화되었다.
사람들은 기계로 만들어진 장식품들로 집안을 꾸미고 인테리어들은 대중적인 패션들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몇 십 년간 스타일의 빈곤을 느껴왔다. 그러나 물론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전통적인 스웨덴식의 스타일을 찾고자 스웨덴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 조사했다. 진실로 스웨덴적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동원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고대 노르만 역사와 스웨덴의 무용담, 이교도의 향락적인 면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참다운 스웨덴적 요소는 근대기의 요구들과 형태들을 적용하고자 하는 방법들을 모색했던 1890년대의 스웨덴의 개혁자들로 귀결되었다.

본인은 스웨덴의 푸진 러스킨과 모리스처럼 이론가이며 건축가였던 사람들과 함께 영국 개혁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1893년 첫 발간된 영향력 있는 잡지 “Studio”는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도 읽혀졌으며, 예술가인 칼 라센도 읽었다. 라센은 일찍이 스웨덴 가정의 몰락에 대해 신랄하게 썼는데, 이는 중산층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평범한 것을 얻고자 했던 농민들과도 관련성을 갖는다.
만약 전형적인 스웨덴식의 빨간색 페인트가 계속 농가에 사용되지 않는다면 중산층처럼 농민층도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라센은 생각했다. 스웨덴을 방문한 외국인은 농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빨간색 페인트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것이다.
농가에 사용되는 빨간색 페인트는 Falun 지역에서 도금 생산물을 제작하고 남은 것들로 만들어지며, 열을 가했을 때는 빨갛게 되고 아마인유와 물과 함께 끓여지며, 색소, 철, 산화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도금 생산물이 이미 오래 전부터 생산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1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는 철 산화물을 가지고 있다.

1899년 칼 라슨은 “가정”이란 책자를 발간했다. 그 책에는 Sundborn 지역에 그의 가족들이 살 집의 재건축을 담고 있는데, 이 집은 아직도 Dalecarlia 지역에 남아 있다.
그 집에 칠해진 빨간색 페인트, 환경적 요소, 가정의 장면들은 스웨덴 지역의 사람들과 그밖의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실내장식과 디자인을 위한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집 대문 위에는 손님을 환영하는 칼 라센이 칠해 놓은 잘 알려진 시(詩)가 쓰여져 있다. 이 집은 오래된 가구와 새로운 가구가 혼합된 새로움과 더불어 멋진 상류층과 단순한 시골풍 등이 완전히 새로운 패션으로 혼합 배치되어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농부와 신사의 이상을 낭만적으로 혼합시킨 것이다.

스웨덴의 사회 작가이며 또한 비평가이며 교육자인 엘렌 케이(1849-1926년)는 칼 라센에 의해 영감을 받고 “모든 이들을 위한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책을 썼다.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책자는 1919년에 발간된 “좀더 아름다운 일상 생활용품들”로 미래 스웨덴의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는 “비록 제품값이 비싸지 않더라도 제품 생산에 있어 재료적 측면을 생각할 때 그것은 항상 재료를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의 수준대로 계속 소비한다면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다 소비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산업 관련 협회는 제품의 품질과 함께 재료들을 아껴 써야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1919년에 이미 생태학에 관한 의식과 인식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의 공예협회를 통해 점차 시장 소비자들에게 우호적이고 합리적인 상품이 제공됨으로써 이 같은 사회적 목표가 형성되었다.

현재 예술가들은 산업과의 협업을 시작했고, 스웨덴의 공예가협회는 1920년대 후반 또 다른 그것의 높은 차원에 도달했다. 즉, ‘스웨덴의 우아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비스웨덴적인 장식들과 부유층을 위한 제품들에게서 발견되는 우아함에 대해 바로 이의가 제기되었다.
1930년 개최된 스톡홀름 전시회는 스웨덴의 기능주의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좋은 디자인과 건축에 의해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향상되었다. 기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다.
1931년 발간된 홍보용 잡지인 ‘Acceptera’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대량 생산된 가구 및 다른 상품들을 수용하고 과거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들은 기능적인 가치들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기능, 안정, 내구성 등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것이 되었으며, 또한 공간과 빛 그리고 공기는 이 시대의 표어가 되었다.

전쟁 후인 1940년대,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는 삶의 표준이 향상되었고 삶을 위해 소비할 수 있는 돈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스웨덴은 단순하면서도 좋은 가구들을 양산했다.
주거생활을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들이 1940, 50년대에 행해졌고 건축 뿐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에 있어서도 견고한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v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 기간 동안 스웨덴의 디자인은 이태리를 포함하여 많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의 우아함은 스웨덴의 근대적 요소와 스칸디나비아의 근대적 요소로 대체되었다. 1967년 업무를 시작한 스웨덴가구조사협의회는 합목적성, 견고성, 안정성에 적합한 가구 생산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 기술적인 기능성과 유용함, 품질 등 가구에서 요구되는 속성들을 평가했다. 그러나 가구에서의 이러한 검소함은 새로운 영감과 충격을 찾고자 했던 80년대 초에 이르러 점차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따분하고 시시한 것이 되어 갔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 이 시기의 새로운 영감은 남쪽에서 왔다. 15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 영향과 자국의 고유한 것을 결합 활성화시킨 스웨덴의 디자인을 다시금 평가해 본다.

Almquist는 “자기 자신의 유산을 알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초로서 그것을 오랫동안 사용한다면 스웨덴과 같은 디자인 성과는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본인은 스웨덴 가구 디자인의 중요한 영향을 다음에서 간략히 요약하고자 한다.
먼저 1700년대 후반의 구스타브 3세 때의 스타일로 농가형 가구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지금도 우리 세대에 직접 적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약간 변형되어 적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최근의 스웨덴 가구는 자국의 전통성을 고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동질적인 건축 문화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이 흥미를 갖고 있음을 안다. 단순함은 현 시대에 있어 동시대적인 경향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경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함에 대해 언급하는 것과 기능에 대한 관심은 인테리어와 건축과 같이 복잡한 것들과도 어느 정도는 연관성이 있다.
스웨덴의 건축가와 내부 디자이너들은 각각의 개별적인 세부 요소와 건물의 전체 형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예술적인 열망과 힘이 건축에서 만나게 된다. 측량과 사용될 재료들의 결합을 통해 건물의 기능이나 공간이 영향을 받는다.
사용될 소재의 선택, 색상구조, 디자인 언어 등을 통해 인테리어의 목표가 실현된다. 또한 빛의 예술적인 조절에 의해 건축물과 방들이 그 빛을 발휘한다.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우리의 감각을 끌 수 있는 기능과 아름다움의 적절한 조화의 결과를 반영하여야 한다.
많은 스칸디나비아의 공공 조형물에서 그 지역 사람들이 접근하는 특성인 정신과 육체의 조화적인 태도를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성, 명료성, 경제성 등을 포함한 인간적인 태도로서 표현된다.
사회 민주적인 복지 시스템은 대중을 위한 유용한 디자인으로 경제적으로 이익 추구를 실현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계승된 미학적 이상들과 사회적인 원리원칙들이 서로 보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발표한 것은 스웨덴의 인테리어 건축과 디자인에 있어 기반을 닦은 소수의 사람들과 디자인 운동에 대한 영향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스웨덴은 원자재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오늘날의 스웨덴은 19세기의 Almquist 시대와 더 이상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시대에 가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전 세계의 자원적 측면을 생각한다면 가구에 대한 일반적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으로 건축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감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성공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좋은 예들과 모델들을 제시하는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생각과 사상들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스웨덴)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갖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고립시킨다면 우리의 발전이 침체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새로운 사상과 함께 예술적인 협력에 의해 우리가 경험하게 될 놀랄만한 변화는 모든 단계에서 그 진가가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우리 나라를 믿을 수 있으며 진실된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디자인에 큰 자극제가 되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Olle Anderson.


 


Bowl.
제작:Metal Smith.
Tore Suensson Iron & Gold.


 


Lighting Fitting.
Olle Anderson.
1986.


 


White Design Studiuo Web Site.


 


Ericson White Architects의 건물 인테리어.
1997.


 


Cupboard.
Kerstin Olby.
1990.


 


Arm Chair.
Bruno Mathson.
1950.


 


Chair.
Olle Anderson.
1998.


 


항아리.
Christer Hallgren.


 


전통적인 텍스타일 소재를 이용한 침대 커버용 헝겊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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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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