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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04. 인간과 자동차

인간과 자동차, 그리고 디자인의 영원한 랑데부

인간은 왜 자동차가 필요했던가, 그 욕구는 바로 바퀴의 발명에 근원을 둔다.
기원 전 3600년경 인류문명의 발상지였던 매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통나무 바퀴가 발명되었고, 그로부터 100년 뒤에는 슈메르인들이 스포크식 바퀴를 개발하여 수레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이나 가축이 끌어야 했던 수레는 속도나 끄는 힘에 한계성이 드러났다. 지혜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싣고 더 멀리 갈 수 있는 자동 수레를 원하게 됐다. 이것이 자동차가 탄생하게 된 원초적 동기라 하겠다.

자동차의 잉태는 인간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도 있었지만 고대문학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스겔의 예언서 제 1장을 보면 자동차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내가 그 생물을 본 즉 그 생물 곁 땅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 안에는 돌아가는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어디든지 신이 가려하면 그 생물도 신이 가려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돌아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역사학자들은 자동차라는 아이디어를 저 유명한 그리스의 장님 시인 호메로스의 대 서사시인 ‘일리아드’ 중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불과 대장간의 신 벌칸은 하늘의 신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제 스스로 달리는 기적의 바퀴들이 달린 놀라운 창조물을 하루에 20대를 만들어 땅의 신들을 하늘로 태워 갔노라.’ 서기 1250년경 영국의 대 과학자이며 근대 과학적 철학의 선구자였던 로저 베이컨은 저서 ‘과학적 근대철학’ 중에 자동차를 다음과 같이 암시했다.
‘먼 훗날 어느 날인가 인간은 동물이 끌지 않아도 빠른 속력으로 제 스스로 땅위를 달려가는 자동차 수레를 만들어 타고 지구를 누빌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꿈은 15세기 말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1482년 르네상스 시대 로마의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태엽이 풀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달려가는 원시형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장난감 같아서 실용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4백년 동안 인간들은 바람의 힘, 태엽의 힘, 동물의 힘 등을 이용한 가지각색의 원시형 자동차를 만들어 냈으나 아직은 시험용에 불과했다.

16세기 중엽 자동차를 확실히 예언한 문학이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프랑스의 의사이며 대 예언가였던 미셀 노스트라다무스는 그의 예언서 ‘모든 세기’ 중에서 자동차의 탄생을 정확히 예언했다.
1540년대 후반 당시 죽음의 전염병이었던 페스트 병을 근대식 치료법으로 퇴치하는 한편, 예언으로 여러 마을을 이 병에서 구했다.
이 소문은 곧 왕인 앙리2세의 귀에 들어가 하루아침에 왕의 정책 고문겸 궁정 예언가로 출세한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는 왕보다 말을 좋아하는 왕비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승마 상대겸 말벗이 된다.

어느 날 승마를 즐기다가 잠시 쉬는 사이에 왕비는 그녀가 좋아하는 말의 미래를 예언해 달라는 질문을 했다.
미래에는 인간들이 제 스스로 달려가는 쇠로 된 탈 것을 만들어 말을 밀어 낼 것이라 대답했다. 놀란 왕비는 그 탈 것이란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이라 부르며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를 계속 물었다.
그것은 카로세(Carroser: 중세 프랑스의 사륜 승용 마차)처럼 생겼고 카로세보다 빠르니까 줄여서 카로(Carro: 후에 ro가 줄어 Car로 변함)라 부를 것이며, 지금으로부터 350년 후에 나타나면 이 카로에 열광하는 카로마니(Carromanie: 카매니아)들이 이것을 타고 지구를 누빌 것이라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비는 카로세라는 말에 얼굴을 붉혔다. 카로세는 당시의 은어로 ‘밀실의 정사’라는 뜻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비는 이 카로가 나타나면 미래의 세상은 더욱 난잡해 질 것이라 대꾸했다. 자동차와 에로스, 즉 카섹스는 이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라 사학자들은 풀이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1900년부터 자동차들이 지구촌을 덮기 시작했고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1914년부터 값싼 차 포드T형을 대량 생산, 자동차 시대를 개막시켰다.

실용성 자동차가 드디어 1886년에 발명됐을 때 인간들은 스스로 달려가는 것에 만족했다.
초기의 자동차는 그야말로 벌거숭이였다. 유모차에 엔진만 얹어 놓은 속도 느린 마차형 자동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것이 1900년을 넘어서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더 많이 팔기 위해 성능과 디자인 경쟁이 일어났다. 자동차는 계속 속도가 빨라지자 사고라는 위험에서 인명을 보호하기 위한 차체가 등장하면서 보다 멋있고 예쁘게 만들기에 디자인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칼 벤츠가 1886년 발명하여 특허를 얻은 3륜 자동차 모양은 2인승 마차 모양이었다.
같은 해에 역시 독일인 고트리브 당미러가 발명한 자동차도 4륜 마차에 엔진을 얹은 것이었다.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앞에 있어야 할 말이 없다는 점이다. 즉 말없는 마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자동차 메이커들이 나타나면서 벌인 경쟁은, 엔진성능과 속도 높이기였다. 이것은 바로 카로마니들을 카 레이스로 끌어들였다.
스피드 게임인 카 레이싱은 곧 공기저항을 실감케 만들었다. 이래서 1890년대 말에 나타난 레이스카들 중에는 톨페도(어뢰)형 자동차가 등장한다. 바로 벨지움 출신 프랑스의 자동차광 까뮈 제나티의 레이스카가 그 본보기다.

벌거숭이 자동차에 눈, 비, 바람, 먼지를 막을 수 있는 유리 달린 차체를 처음 얹은 것은 프랑스의 르노차였다.
제작자인 루이 르노는 1902년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상자형 차체를 만들어 얹었다. 이 차가 처음 파리시내를 달렸을 때 보는 사람마다 ‘바퀴 달린 모자상자’, 또는 ‘굴러가는 화장실’이라 놀렸다. 그러나 얼마 안돼 그 편의성에 매혹되어 특히 파리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10년 이전까지는 대개의 자동차들이 지붕 없는 오픈카였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자동차의 성능이 향상되자 허약한 마차형 차체로는 스피드나 험한 도로에서 견딜 수 없었다.
주행저항을 적게 받고 견고한 차체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자 자동차 고유의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말없는 마차’의 시대에서 벗어났다.

자동차의 설계기준과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미국의 헨리 포드였다.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한 차 포드 모델T를 1908년에 개발,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 1927년까지 1,500만대를 생산 20세기 전반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포드 모델T는 카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정립한 것이다. 이전까지 여러 군소 업체들이 소량으로 만들어 냈던 자동차들은 모양이 제 각각이었다.

엔진을 운전석 밑에나 뒤에 얹었던 것을 포드는 엔진은 앞쪽에, 그 뒤에 핸들과 운전석을, 구동차 축은 뒤쪽에 배치하는 오늘날의 구조기준을 마련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인명을 보호하는데도 이상적인 레이아웃이었다. 사실 포드의 디자인을 시도한 것은 1892년에 세운 세계 최초의 자동차회사였던 파리의 파나르 에 르바소였으나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냄새가 운전자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포드의 박스형 디자인 시대는 1920년대 말까지 계속됐다.
1910년을 넘어서면서 자연의 악조건과 사고에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와 철판지붕이 달린 차체에 안락한 시트가 설치된 자동차가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모양은 상자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기저항을 감소하는 곡선을 접목할 정도였고 전문 디자이너도 없었다.
최초로 디자인 전문 부서가 생긴 것은 1927년 미국의 GM이었다. 이때부터 디자인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 무렵 미국의 레이몬 로위, 독일의 월터 그로피우스, 프랑스의 르 꼬르피지에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1930년대 들어서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카 레이스의 열기가 20세기 전반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다.
속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래식의 큰 배기량에 출력이 낮은 덩치 큰 엔진대신 작은 배기량에 높은 출력의 덩치 작은 엔진이 등장하면서 키가 높은 상자형 디자인을 낮게 유선형으로 변형시켜 속도를 높였다.
상자형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곡선화시켜 공기저항을 줄였다. 그 대표적인 차들이 유럽의 부가티, 미국의 듀센버그와 코드였다.
특히 듀센버그와 코드는 클래식 디자인의 최고봉으로 평가되어 30년대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필수품으로 게리 쿠퍼, 클라크 케이블, 그레타 가르보 등이 즐겨 타 인기를 최고로 끌어 올렸다.

발달하는 메커니즘에 경제성을 최대로 접목시켜 자동차의 대중화를 시도한 국민차가 유럽에서 등장하면서 디자인에 혁명을 일으킨 사건이 30년대 중반에 생겼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한 방법으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만들기에 들어가 당시 자동차 설계의 천재였던 페르디난드 포르쉐에게 독일의 국민차 개발을 지시했다.
이렇게 하여 1936년 만들어낸 국민차 폴크스바겐은 딱정벌레 모양의 반달형으로 클래식 디자인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스타일이었다. 휘발유 1리터로 11km이상 주행, 당시 돈 1천 마르크 정도의 파격적인 싼 값의 자동차, 겨울에는 얼지 않는 자동차, 4명이 탈 수 있는 자동차라야 한다는 히틀러의 지시에 고민한 설계자 포르쉐는 우선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구조를 간단히 하는데 착안했다.

폴크스바겐 비틀
‘딱정벌레’라고 불리는 애칭으로 유명한 비틀은 1937년 처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도 브라질 등지에서 계속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모델이며 자동차에는 문외한인 사람들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모델이다.
포르셰 스포카의 설계자로 잘 알려진 페르디난도 포르셰박사 작품이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를 재패하려는 히틀러의 비전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역사상 지울 수 없는 명차가 된 것이다.
아우토반을 타고 5인 가족이 일주일 정도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소형 국민차를 만들라는 히틀러의 지시는 비틀의 디자인 컨셉트가 되었고 포르셰박사의 기술을 통하여 굿 디자인으로 탄생한 것이다.
기본적인 스타일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것을 다듬은 것이지만 명쾌한 컨셉트를 합리적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결국 연료 경제성과 속도를 살리는 방법으로 공기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딱정벌레 모양의 디자인을, 얼지 않는 차로는 공기 냉각식 엔진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폴크스바겐은 히틀러 살아 생전에 빛을 못 보다가 패전 후 독일을 재건시키는데 1등 공신이 되어 1948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1,900만대를 생산, 20세기 후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폴크스바겐 등장 2년 전인 1934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디자인 혁명이 일어났다.
이 해에 크라이슬러는 새 시대를 겨냥한 파격적인 차로 ‘에어플로우’라는 폴크스바겐보다 크고 약간 각이 진 반달형 모델을 내놓아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으나 생산시설 미비로 폭주하는 수요를 적기에 맞추지 못해 수요자의 불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시대에 인명과 차 자체를 보호하는 강철 차체가 등장했다. 그 선두주자가 ‘에어프로’였다.
1930년대 중엽부터 1950년까지는 자동차 디자인의 르네상스였다. 디자인이나 기술면에서 구 시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시대의 산뜻한 패션으로 갈아입은 시기였다.
여기다 이 무드를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것은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이용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디자인보다 자동차 기술을 혁신시킨 기술혁명이었다. 그 좋은 본보기가 4륜 구동차(지프)의 등장과 자동차의 자동화였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자동차 디자인에도 혁명의 회오리가 불어닥쳤다.
그것은 바로 스트림 라인(Stream Line: 유선형) 디자인으로 세대교체 한 것이다. 그 선두주자가 1946년에 등장한 이탈리아의 시시탈리아(Cisitalia)였다.
차체 외부에 돌출부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매끈하고 키 낮은 보트형이었다. 구식 클래식 카들의 허공으로 튀어나온 헤드라이트나 리어라이트는 전부 매끈한 몸 속으로 들어갔고 땅에 붙을 듯 낮은 차체는 타고 내리기에 편했다.
이 차는 불행하게도 10년 단명으로 사라졌지만, 그 뒤를 이어 미국의 포드가 1949년 유선형 디자인으로 완전히 세대교체 시키면서 20세기 후반 유선형 디자인시대가 개막했다.

2차 대전이 또 하나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 것은 유선형을 미국의 호화 디자인과 유럽의 기능적 디자인으로 나누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쟁을 당하지 않은 미국은 풍부한 물자로 전쟁특수라는 호황을 누려 모든 것이 풍족했다. 따라서 자동차도 넓은 땅처럼 크고, 힘이 강한 휘발유 고래형 엔진에, 운전하기 편하며, 안락한 스타일로 변해갔다.
반면 전쟁을 당한 유럽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라 자동차도 절약형이 필요했다. 이래서 유럽의 차는 경제성과 기능을 살린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변했다. 미국 디럭스 디자인의 극치를 이룬 것은 50년대의 차들이었다.
이때 미국 차 디자인의 주류는 전투기 꼬리날개(Tail Fin)형 스타일이었다.
2차 대전 막바지에 등장한 제트 전투기의 꼬리날개 모양을 접목시킨 것이다. 이런 디자인의 극치를 이룬 차가 50년형 캐딜락이다. 이와 함께 기능도 발달해 갔다. 자동변속기, 에어컨 등의 편익장치와 헤드레스트, 시트벨트 등의 안전장치도 속속 등장했다.

2차 대전 후 유럽의 차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디자인보다는 경제성이 우선이었다. 미국 차처럼 호화스러움보다는 단순한 디자인에 필요한 것만 붙은 그야말로 실용적 소형차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대표적인 차로는 앞바퀴 굴림인 영국의 오스틴 미니, 프랑스의 시트로앵 2CV와 르노 4CV, 독일의 폭스바겐, 이탈리아의 피아트 500 등이다. 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은 대중형차의 구동 모드를 앞바퀴 굴림형으로 바꾸고 디자인을 세계화시킨 월드카를 탄생시켰다.

이 석유파동으로 혼이 난 것은 호화의 극치를 자랑하던 휘발유 고래 미국 차들이었다.
미국인들은 하루아침에 자기 나라 차를 배반했다. 이 틈새를 뚫고 들어온 것이 독일과 일본의 경제형 차들이다. 모델 디자인을 완전히 바꾼 폭스바겐 골프를 선두로 일본의 카롤라, 혼다 시빅, 미쓰비시 미라지 등은 유럽형 디자인에 연비효율이 좋고 값마저 싸서 미국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일본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서둘러 일본 차를 모방하는 한편 미국 차의 세계화 전략을 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 구축해 놓은 미국 자회사나 자본 또는 기술제휴업체를 통해 싼 부품과 기술을 모아 경제형 월드카를 만들어 옛 영화를 다시 찾는 것이다.
이 미국의 야망은 8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이루어졌다.
이 시점부터 디자인과 기술은 고유의 특성을 잃고 세계화로 돌아섰다. 디자인은 일본 차나 유럽 차나 미국 차나 한국 차나 별 차이 없는 에어로 다이나믹 스트림 라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품질과 전자화 정도라 하겠다.

지금에 와서 필자의 전력을 얘기한다는 것이 좀 쑥스럽지만 사실 필자는 우리 나라 자동차 디자이너 1호이다.
우리가 자동차 기술에 겨우 눈을 뜨던 60년대 중반 신진자동차와 하동환자동차 두 회사밖에 없을 때 자동차 디자이너로 업계에 몸을 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카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의도와는 달리 주변 여건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 이유는 80년대까지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은 선진국의 메이커들이 만들어 놓은 차를 분해식으로 도입해서 일부 국산화하여 조립 생산하는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의 디자인이 별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1964년 자동차 디자이너로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1972년 포기하고 버스 설계와 자동차 역사로 돌아 설 때가지 부지런히 독학하며 그렸다.
그때는 배울 곳도 없었기 때문에 외국 메이커에 자료를 요청, 혼자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디자인을 손쉽게 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컴퓨터가 없어 T자나 드랩터와 물감으로 그려야 했다.

지금 디자이너들은 자동차의 메커니즘은 몰라도 디자인 개념과 컴퓨터, 그리고 미술만 알면 그릴 수 있지만 초기에는 자동차 메커니즘을 모르고는 디자인 할 수 없었다.
스케치를 하자면 원근법과 삼각투시법도 알아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이렇듯 힘든 스케치를 완성해도 랜더링이나 크레이 모델링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 스케치로 끝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60년대 당시의 나의 스케치 7백여 점을 볼 때마다 그 시절 저돌적이리 만큼 거침없었던 열정과 의욕이 그리워지곤 한다.


글_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1909년.
헨리 포드가 만든 포드 T형.


 


이탈리아 자동차 엔지니어인 부가티가 설계한 부가티.


 


독일의 기술자 곳트리브 다임러가 1886년에 발명한 세계 최초이 개소린 자동차.
1기통, 1.1마력 엔진으로 최고속도가 시속 15km.


 


1936년 크라이슬러의 애어 플로우.
자동차 디자인에 혁신적인 바람을 몰고왔지만 시대를 너무 앞선 나머지 판매에 실패.


 


1902년 르노가 만든 세계 최초의 지붕달린 세단.


 


1946 -`1961,
루노 4CV,
프랑스 국민차.


 


1940년대 BMW.


 


1934년형, 프랑스,
Bugati type 57,
Coipe Atlantic
자동차의 순수한 혈통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며 최신 유성형의 미를 자랑하는 차.
8기통, 3300cc엔진.


 


 


전영선
1939년 생.
계명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5년 하동환자동차공업(주) 입사.
27년간 카디자인, 설계, 제조, 정비, 부품, 홍보, 기획 분야에서 근무, 문화일보 등 주요 언론에 자동차 관련 칼럼을 게재.
저서 :
자동차이야기(정우사, 1990),
임금님의 첫 자동차(정우사, 1992),
세계 자동차의 거인들(정우사, 1993),
자동차백과(삶과 꿈, 1993),
한국의 자동차산업(199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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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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