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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푸는 디자인

앞서가는 이미지를 판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순수성

로레알(L'OREAL) 사의 모발용 제품 포장디자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물론 이 회사 제품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많은 제품에 이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의 순수한 미학적 형태가 자주 인용되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나의 특정한 스타일의 형태가 이처럼 지속적으로 차용 또는 변주되어 쓰인 예도 드물 것이다.
디자인 역사에서도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 사진 속의 제품 포장 디자인은 잘 알고 있듯이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구성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몬드리안의 그림이 재조정된 비율의 변화를 보여줄 때, 즉 최소한의 조형 요소인 삼원색과 직선만으로 이루어진 변주된 구성을 보여줄 때,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몬드리안 그림을 참조하지 않은 채 단지 단순하게 면 분할된 구성을 볼 때의 우리의 반응 말이다.
그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회화 공간 내의 면구성일까?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아! 몬드리안 식이군’이라고 말하기 일쑤다.
이 제품 ‘스튜디오 라인(Studio Line)’의 포장 디자인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온 것임을 표방하지만 단순한 직선으로 된 면구성 작품은 보는 우리들에게 몬드리안이라는 의미를 늘 부추기고 있다.
몬드리안의 미니멀한 추상으로 ‘장식’된 이 제품의 포장 디자인이 소비자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창조적이고자 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필수불가결한 몇몇 기본 요소들, 즉 음악, 자유, 유쾌함, 운동, 변화와 같은 의미와 함께 몬드리안의 보편적 기호 체계 위에서 새롭고도 현대화된 국경 없는 ‘젊음의 무대’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늘 앞서가고 있는 제품의 이미지를 광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주 새로움’의 면모는 1910년대 몬드리안의 구성주의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그의 기하학적 순수성은 전통적 장식을 덜어 내버림과 함께 느낌과 리듬감의 순수한 표현에 의해 객관적으로 정량화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몬드리안과 반 되스부르크, 그리고 데 스틸

몬드리안의 구성 자체는 물질적 기능을 지니는 디자인과 직접적인 관계없이 회화공간 내의 면 구성에서 출발했지만 후일 바우하우스의 조형언어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반 되스부르크(Th럒 Van Doesburg) 같은 사람이 몬드리안의 주위에 있었고 그들은 함께 회화와 건축 그리고 디자인에서의 공통적인 조형 언어를 마련하고 있었다.
주로 몬드리안에 의해 촉발되어 일어난 데 스틸(De Stijl) 운동은 네덜란드의 화가, 건축가, 조각가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1917년에 창간된 잡지 <데 스틸>에서 그 명칭을 지었으며 이 잡지와 데 스틸 그룹 회원은 신조형주의에 대한 연구와 그것에 대한 이론을 퍼뜨려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장차 회화, 건축, 디자인에서 합리적이고 질서있게, 지적으로 완전히 비개인적인 양식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신조형주의는 대부분 프랑스의 입체주의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1911년 모던 쿤스트링(Modern Kunstring) 전시회를 위해 암스테르담에 보내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네덜란드 화가들이 접했을 때 그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입체주의 작품 속에서 네덜란드 예술가들이 발견한 것은 조형방식에서의 단순화 방향과 무질서한 감각 세계를 몇 개의 기호로 환원시키고자 애쓴 흔적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자신들이 발견한 것들에 대한 신념을 강화해 나갔다.

몬드리안은 이후 파리에 머물면서 점차 자신의 조형세계를 구축해 나갔는데, 그는 형태를 단순화시키며 요약, 응축시키고자 했다.
개별적인 것 대신 어떤 보편성을, 세부나 장식을 표현하는 대신 본질적인 것을 취하고 표현하는데 힘을 기울이며 차츰차츰 현상세계를 그의 형식 문법의 기본적인 규칙으로 귀결시키기에 이르렀다. 신조형주의의 조형 원리는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입체주의가 신조형주의의 유일한 원천지는 아니다. 몬드리안에게 신지학자인 쉔마커스(M. H. J. Schoenmaekers)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몬드리안은 우주의 객관적 법칙을 느끼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있는 회화를 희구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외면적 형태의 배후에 숨어있는 불변의 실재를 밝혀낼 수 있기를 바랬다.


수직과 수평의 구성

데 스틸 그룹은 마침내 감각에서 가장 명백한 선, 즉 수평선과 수직선에로의 ‘감축’ 작업에 그리고 가장 엄격한 추상에 이르게 된다. 데 스틸 회원들에게 어쩌면 추상이라는 것은 미학적 원리이기 이전에 정신적 필요성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조형언어의 정복에 의하여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이나 비극적인 것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고 좀 더 나은 세계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데 스틸 그룹 회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통제될 수 있는 명확함, 정확함의 미학으로 일컬어지는 몬드리안의 그림 속에서 그는 회화의 본질을 이차원적 평면성에서 찾으려 했으며 그 속에서 평면적 관계에 대한 추상 과정이 이루어졌다.
그와 함께 입체주의가 불러일으킨 구조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차차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 회화도 건축과 같은 일종의 구조물로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장차 회화 공간 내의 면구성에서 시작된 몬드리안의 조형언어는 디자인과 건축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던 디자인이 표면적으로 미술을 포함한 예술 형식으로부터 자의적 이탈을 감행하고자 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몬드리안 공간의 이차원적 평면성이 만들어낸 회화 원리가 디자인과 건축에 차용되었음을 볼 때 내면적으로 모던 디자인은 예술 형식과 여전히 끈을 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 되스부르크는 명료한 집단인 데 스틸에서 가장 주장이 명확한 멤버이며 주창자로서 한 마디로 순수한 기하학적 투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는 적절히 설계한 환경 속에서 증대한다’고 하였고 또 객관적, 과학적 방법으로 이 환경을 창조하고 제어하는 것이 건축가의 책임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대상을 구성하기 위해 사람들은 방법을, 즉 객관적 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바우하우스가 표현주의를 버리고 구성주의로 향하게 한 것은 자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데 스틸은 확실히 바우하우스에 영향을 주었으나 설사 되스부르크가 바우하우스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추상미술은 표현주의를 몰아냈을 것이다.

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를 위해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종전에 무성하였던 인쇄상의 유희적이고 장난스러운 면모를 없애버리고 구성주의의 이상으로 나아갔다. 특징있는 질서와 균형, 명료함을 획득하였으며 균형잡힌 바둑판처럼 계통을 세워 표현했다.
1917년에서 1918년 사이제 제작된 게리트 리트벨트(Guerrit Rietveld)의 ‘빨강 파랑 의자’는 몬드리안의 회화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의자였다.
이 작품은 데 스틸 운동의 성격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고전적인 작품으로서 기하학적인 형태의 수직 수평적 구성은 현대 디자인의 조형언어의 기본적인 어휘가 되었다.

좀더 최근에는 작품이 맵시있고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과거의 양식을 사용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이너의 작품 속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그대로 응용한 것을 볼 수 있다.
1942년에서 1946년 사이에 그려진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맨해튼 레코드사의 편지봉투 디자인에 응용되기도 했다.

요즈음은 어쩌면 과거의 미술사조, 운동을 주도했던 혁명적인 야망들에 대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진지한 성찰로 이루어졌던 과거의 특정한 하나의 양식이 어떤 때는 지속적 관심과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한편, 또 다른 면으로는 마구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L’Aventure de l’Art ’, Sous la directions de Jean Louis Feffier, Chene Hachette, 1988
◎ Gillian Naylor, 이용익 옮김, <바우하우스(Bauhaus, Studio Vista-1968)>, 신도출판사, 1980
◎ E.H.Gombrich, 최 민 옮김, <서양미술사>, 열화당, 1971
◎ 정시화 지음, <산업디자인 150년>, 미진사, 1989


 

글_김미영(우송대 컴퓨터디자인학과 교수)





김미영
1957년 생.
이화여대 생활미술과 및 동대학원 졸업.
파리 I대학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
현재 우송대학 컴퓨터디자인학과 교수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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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간하던 격월간 잡지로 1970년 11월 '디자인·포장' 창간호가 1983년 2월까지 발행되고, 1983년 4월(no.67)부터 '산업디자인'으로 명칭변경되어 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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