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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토털 개념의 국제적인 패션 디자인은 지구촌화,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선보임으로써 패션계를 리드하는 뉴욕과 파리의 패션이 어느새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의 복식문화는 그 나라의 풍토와 관습, 문화 등을 대변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의 하나였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 나라 역시 추운 기후에 적합한 북방계통의 저고리와 바지 및 치마를 기본으로 하는 고유 복식이 상고시대부터 있었으며, 삼국시대에 중국 복식이 도입되어 우리의 고유 복식과 더불어 상류층에서 입기 시작했고, 통일신라 때 당나라 공복을 들여와 입은 이후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관복과 양반 사회의 복식은 중국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러나 서민들의 복식은 우리만의 고유성을 간직해 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소박한 토산직물인 삼베, 모시, 목면을 이용한 백의 및 담백한 색조의 옷을 즐겨 입었다.
더욱이 여인의 손끝에 의해 아름답게 장식된 복식과 장신구는 신분과 장소에 따라 적절히 착용됨으로써 한국의 미의식이 십분 발현되기도 하였다.
서구화된 생활 문화에 익숙해진 오늘을 사는 우리들 눈에는 오히려 낯설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옛 복식과 장신구 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문화의 발자취는 물론 이것의 현대적인 모색과 그 가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흉배
흉배는 조선 왕조의 관료 신분과 지위를 나타냈던 표상으로, 상하의 차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고 계급의 서열과 동서(문관, 무관) 양반에 따라 각기 다른 문양을 정해 사용했다. 또한 흉배와 구별하여 왕과 왕족의 옷에 붙인 보(補)라는 것이 있는데, 흉배가 사각형인 것과는 달리 보(補)는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의미하여 임금은 하늘, 그가 거느린 신하와 백성은 땅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흉배 사용은 단종 때 3품 이상의 문무관 상복에 흉배를 붙이게 됨으로써 정착하게 되었다.
연산군 때 1품에서 9품에 이르기까지 착용 대상이 확대됨은 물론 사슴, 기러기, 거위 등 우리에게 친근감 있는 동물이 흉배에 이용되어 중국의 흉배와는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보이는데, 연산군 폐위에 의해 그 시행 여부를 자세히 알 수 없고 실물 흉배가 발견되지는 않으나 중국의 모방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분과 지위에 따라 흉배에 사용된 문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왕가의 보(補) : 임금이나 왕세자의 보에는 가상의 신성한 동물인 용, 왕비와 왕세빈의 보에는 봉황, 대군의 보에는 기린(驥麟), 왕자와 군(君)의 보에는 백택을 수놓았으며, 이밖에 공주와 옹주의 보에는 수(壽)자를 수놓았다.
또한 용의 발톱수에 따라 오조룡겭瑩떱�겭店떱� 등으로 구분하여 왕은 오조룡보, 왕세자는 사조룡보, 왕세손은 삼조룡보를 사용하는 등 흉배 문양의 배경에는 정연한 위계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문무관의 흉배 : 종친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신수(神獸)를, 문관의 문(文)을 상징하기 위해 날짐승을, 무관의 무(武)를 상징하기 위해 달리는 짐승을, 사헌부의 우두머리인 대사헌은 옥송평정(獄訟平定)을 뜻하는 해치(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판단할줄 아는 하늘의 신성한 동물) 등을 사용함으로써 각각의 직무를 나타냈다.
임진왜란과 병조호란 등의 국난 시기에 흉배 사용이 일시 중단된 적은 있으나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계속 사용되었다. 영조 때 문관 당상관은 운학 흉배를, 문관 당하관은 백학 흉배를 사용하였으며, 고종 때 문관 당상관과 당하관은 각각 쌍학과 단학을, 무관 당상관과 당하관은 각각 쌍호와 단호를 사용하였는데 이 제도는 1910년까지 시행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학을 일괄하여 당상관의 문양으로 정한 것은 명나라 1품관 흉배의 학을 우리 나라 당상관 3품 이상의 흉배에 채용함으로써 명나라의 관위와 대등하거나 우위에 서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조선조 흉배 사용의 변천은 조선시대 공신들의 초상화를 통해서도 살필 수 있는데, 후기에 이르러서는 반과 품의 구별이 엄격히 나타나지 않고 사실적 요소보다는 대담한 색면 구성으로 구름과 동물의 꼬리 형상을 암시하는 현대의 추상화 같은 흉배도 있어 흉배의 법제가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흉배는 계급 표시가 되는 주 도안을 중심으로 구름, 파도, 바위, 불로초, 꽃, 완자무늬, 해, 달, 산을 보조 도안으로 수놓았으며, 주 도안을 따로 만들어 그 동물만 교체하여 붙이면 다른 품계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용성을 꾀했는데, 이것은 자수가 단시일 내에 완성될 수 없는 어려움을 시사해준다.
흉배 양식의 변화를 흉배의 표현 문양으로 전기, 후기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전기(영,정조 이전)는 문양이 사실적이나 후기에는 도안화되는 경향이 짙다.
- 전기에는 주 문양과 부차적인 문양의 비중이 대등하나 후기에는 주 문양이 중심부에 크게 자리잡고 부차적으로 작게 자리한 물결, 바위, 산, 구름 등이 역동적이며 강하게 표현된다.
- 후기에는 물, 바위, 산 등의 장생문이 보조 문양으로 많이 등장한다.
- 전기에는 학이 불로초를 입에 물지 않고 엇비슷하게 위아래로 자리한 모습이 많으나, 후기에는 상하대칭으로 자리잡은 학이 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다.
- 전기에는 구름이 띠 모양이지만 후기에는 뭉개구름으로 나타난다.- 전기에는 호랑이의 모습이 몸에 띠를 두른 한국 호랑이의 모습이나 후기에는 몸에 반점이 있는 표범의 모습이다.
- 전기에는 대체로 황색 바탕에 동색계 또는 청록계의 색실을 구사하여 바탕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후기에는 바탕색이 청색으로 바뀌고 백색과 홍색겷뻣痔� 원색을 구사하는 등 강한 색상의 대비가 눈에 띤다.
흉배는 단순히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볼 수 있으나 그곳에 스며있는 사상은 음양오행 등 동양사상의 근간을 형성하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흉배를 통한 상상의 폭은 무궁무진하며 이를 형상화한 조형의식과 미적감각은 실로 탁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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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룡(五爪龍) 왕비 보(補) |
무관의 용맹을 상징하는
쌍호랑이 흉배 |
당산관이 착용했던 쌍학 흉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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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의 문양 패턴을 활용한 일상용품 아이디어 스케치 / 김종식 / 광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흉배의 수본 판을 문손잡이 및 저울, 우산꽂이 등 생활용품에 응용하고 문양 패턴을 삽입시켰다.
문양의 형태는 엠보싱 또는 투각 등을 하여 전통적인 이미지가 풍기도록 하였다. |
의복
한국의 복식은 저고리와 바지로 분리되는 알타이계 복식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활동적이다.
삼국시대부터 특수계층을 중심으로 우임(오른쪽으로 여밈) 저고리와 바지 통이 넓고 긴 중국 복식이 차용되기는 하였으나 바지와 저고리를 입는 서민들의 고유 복식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고려 때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저고리가 짧아지고 소매통도 좁아지며 옷고름도 생겨났다.
고려의 복식은 소매가 길고 이중 깃을 단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형태의 옷은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조선의 복식은 점차 독자적 체제를 정리, dh완성해 갔으며, 특히 영조와 정조 때에 이르러서는 짧은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가 등장하는 등 현대 한복으로 이어지는 복식 전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상민은 비단이나 염색한 옷을 입는 것이 제한되어 경축일이나 특별한 날, 명절 등에만 화려한 배색의 의복을 입을 수 있어 자연히 흰색이 대중 옷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남자들의 복식은 왕의 제복, 관복, 평상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평상복은 조선말에 도포착용이 상민층에까지 보편화되었으며, 고종 때 이르러 좀더 단순화된 겉옷인 두루마기가 평상시의 예복이 되었는데 이는 실학사상이 복식문화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으로 본다.
남자 저고리의 변화를 살펴보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짐에 따라 목판 깃으로 바뀌고 안섶, 겉섶, 무(웃옷의 양쪽 겨드랑이 밑에 댄 딴 폭)가 넓어지고 품도 넓어졌다.
조선 중기에는 목판 깃이 당코 깃으로 변하고 무도 없어지는데, 이러한 변화는 계속되어 후기에는 당코 깃이 동그래 깃으로 변하여 현재 남자의 저고리 형태로 정착되었다. 바지의 경우, 넓은 바지를 입을 때는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띠를 매고 대님으로 발목을 묶었으며 통이 좁은 바지는 주로 일할 때 입었는데 여름철에는 무릎 길이의 잠방이를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의 복식에는 왕비의 일반 예복으로 원삼, 활옷, 당의 당의 등이 있으며 서민들의 옷은 저고리와 치마가 주축을 이루었다.
여자 저고리도 남자 저고리와 같은 형태 변화를 보였으나, 깃, 도련, 소맷부리의 선이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오면서 삼회장 저고리가 된 것이 여자 저고리에서의 독특한 변화이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저고리 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저고리 삼작이라 하여 속적삼, 속저고리, 저고리를 겹쳐 입었는데 속적삼은 훗날 모시적삼이라는 여름 겉옷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속옷이 겉옷이 되는 현상은 복식 유행의 재미있는 예의 하나라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치마는 신분을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는데, 양반 부녀자의 치마는 넓고 길었으며 치마에 금박을 놓은 스란단을 대었다. 일반 부녀자는 민치마를 입었고 하류층은 두루치라는 치마를 입었다.
두루치는 민치마보다 폭이 좁고 길이가 짧아 속바지가 보일 정도였다. 또한 속옷이 발달하여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 둔부를 부풀렸기 때문에 폭넓은 치마가 필요했는데, 이에 따라 여자 치마는 독특한 실루엣을 갖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인에 대한 복식이 엄격하고 까다로웠던 반면 기녀들의 복식은 화려했으며, 이러한 기녀들의 복식 사치는 일반인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조선시대 여성 복식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갔다.
특히 조선 후기 여성 복식 풍속 중 흥미있는 것은 평민들이 화려한 양반의 복식을 입어보려는 마음이 양반보다 더 화려한 기생의 복식을 선망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했다.
우리 한복의 특징으로는 바지와 치마, 저고리 등 그 모양에서 느낄 수 있듯이 부드러운 곡선의 유연한 아름다움은 물론, 넉넉함과 융통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치수를 재어 몸에 딱 맞도록 옷을 짓는 서양의 양복과는 달리 우리의 한복은 옷고름과 허리끈, 치마끈과 어깨끈 등으로 몸에 맞게 조절이 가능한데 이는 정확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적 개념의 과학성과는 달리, 각 상황에 따라 최적값을 찾아가는 퍼지(원래의 뜻은 ‘애매모호함’. 최근 최첨단 기술에 애매모호함을 이용한 퍼지이론, 일명 인공지능 이론이 활발히 응용되고 있음) 특성을 우리 한복이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더욱이 몸에 딱 맞게 입음으로써 체형을 드러내는 서양의 의복과는 달리 몸매의 결점을 감출 수 있는 우리의 한복은 포용하고 감싸는 미학마저 엿볼 수 있다.
또한 한복 바지는 앞뒤 구분없이 자유자재로 돌려 입을 수 있는데, 이는 한복 바지의 재단방법이 직사각형의 한 쪽 끝을 180도 비틀어 마주 붙인 다음 대각선으로 잘라 양쪽 바지 가랑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향(非正向)의 뫼비우스 띠의 개념과 같은 이치이며, 전후좌우가 없는 하나의 면만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20세기의 우주 과학자들은 우주의 구조가 이 띠와 같은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한복 바지는 우리의 선조가 이미 수 백년 전에 이러한 원리를 알고 이를 실용화했음을 반증해준다.
즉, 인간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이에 적합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복식은 중요한 문화 요소로 때로는 수수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그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한국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세계화, 국제화란 명목 하에 우리 곁에서 점차 멀어져가던 우리의 복식이 요사이 생활 한복이란 이름으로 선호되고 있는데, 한복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안다면 입는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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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의 일반 예복인 활옷 |
민간 혼례복인 녹의홍상(綠衣紅裳) |
뫼비우스 띠를 연상케 하는 한복 바지 |
왕실에서 입었던 황색적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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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선과 색을 적용한 휴대용 전화기
류창희 가천길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휴대폰의 기본 형태에 한복의 유연한 선을 적용하였으며, 색과 기능 버튼의 형태는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던 화려한 의복인 ‘활옷’의 색채와 무늬를 사용하였다. 또한 다양한 색상의 적용을 위해 버튼은 고무 재질로 처리하였다. |
자수
자수는 사회가 발전하고 의식주에 대한 기본 요건이 충족됨에 따라 의생활에 아름다움을 더하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계급이나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기 위한 실용적 요구와 장식적 요구가 강하다.
한국 전통 자수의 생성기인 삼국시대의 자수에 나타난 문양은 구름겫念光�겢蹂す� 등 자연주의적 성향이 짙다. 고려 때는 귀족계급의 사치로 인해 자수는 더 섬세하고 세련된 장식으로 발전하였다. 복식 뿐 아니라 감상을 위한 병풍 등의 수도(繡圖)가 등장했으며, 불교가 전성기를 이루면서 불교자수도 함께 발달하였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이전의 자수보다 소박하고 단아한 형태를 보여준다.
자수는 크게 궁수(宮繡)와 민수(民繡)로 구분되는데, 궁수는 궁중에서 훌륭한 기술과 시설이 완비된 바탕에서 제작되어 세련된 멋을 풍기는 것들이 많고, 민수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한 유형의 것들이 많아 궁수와는 다른 무늬와 색조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자수는 조선 말 일제의 침략과 서양문물의 침투로 쇠퇴기를 맞게 된다.
일본의 자수기법이 들어와 색감이나 형태에 영향을 미쳐 꼰사를 이용하던 것이 푼사를 이용하게 되었고, 원색을 주로 사용하던 것이 중간색을 사용하는 등 변화를 맞이했다. 해방 후에는 프랑스 자수의 영향으로 더욱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다행히 70년대 이후 자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우리의 전통자수를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자수 구분에 있어 1910년까지를 전통자수로 보고 있는데 이는 1900년 초 궁중에 화학염료가 들어와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일반에게 확산되어 이전의 천연 염색 수실이 화학 염색 수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천연 염료는 화학 염료에 비해 염색이 번거롭고 독성이 없어 좀 벌레가 잘 스는 단점이 있지만 염료의 빛깔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오래 보아도 눈을 피로케 하지 않으며 천연 염료의 대부분이 한약재인 점을 고려할 때 전통 염색은 피부 건강이나 인체에 무해하고 염색 공정 역시 공해 문제와 무관한 점 등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전통자수는 실을 꼬아 꼰사로 수를 놓았기 때문에 조금 거칠어 보이나 소박하고 중후한 멋을 주며 면의 둘레는 무채색, 면과 같은 계열의 색, 또는 금사와 은사로 둘러 화려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점이 특이하다.
더욱이 수실 자체가 부피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속수 등을 이용하여 양감과 촉감을 드러내 자연스럽고 은은한 광택이 멋을 자아낸다. 수놓는 방법도 다양하며 문양의 형태에 따라 선을 잇는 수, 면을 메우는 수, 무늬를 나타내는 수 등이 있다.
전통자수 공정에 있어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은 제(濟),광(光),직(直), 균(勻), 박(薄), 순(順), 밀(密) 등이다.
제(濟)란 수(繡)의 한계가 예리하고 분명한 것을, 광(光)은 실이 올올이 가지런하며 틈새없이 결이 빛나고 정갈해 보임을, 직(直)은 글씨와 같이 자수 역시 꼿꼿해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균(勻)은 고르게 수를 놓지 못하면 빛이 나지 못해 수가 거칠어짐을 경계한 것이고, 박(薄)은 깁 바탕이 얇을수록 조직이 치밀해져 정교한 수를 놓을 수 있으며, 순(順)은 한 오라기라도 수실을 잘못 놓으면 기맥(氣脈)을 그르쳐 버림을, 밀(密)은 수실이 갈라지거나 빈구석이 없어야 경면(鏡面) 같이 매끄러운 촘촘한 수가 가능함을 말한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 자수는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만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자수품 중에서도 베갯모는 글자와 그림을 수놓아 잠자는 동안 좋은 꿈을 꾸어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옛 사람들은 베개는 머리를 괴므로 두뇌 및 생명 활동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였다.
행복한 결혼생활이나 부귀 장수는 모든 사람의 한결 같은 소망이므로 부부의 동락을 나타내는 암수 한 쌍의 봉황, 원앙, 오리, 학 등 상서로운 새가 새끼를 거느리는 모습, 자녀를 많이 두라는 뜻을 지닌 구봉침(九鳳枕 ; 베갯모에 일곱 마리 새끼를 거느린 봉황 한 쌍을 마주 보도록 수놓고 둘레에 십장생과 완자 무늬로 꾸밈), 장수를 기원하며 학을 수놓은 불로침 등이 있으며 이밖에 모란, 국화, 연꽃, 매화 등 부귀를 나타내는 꽃 종류, 장수를 나타내는 십장생과 나비, 박쥐, 호랑이, 쌍희(囍), 수복, (壽福), 강녕(康寧), 다남(多男) 등의 문자와 보조무늬로는 태극무늬가 이용되었다.
담담한 색조에서부터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문양이 돋보이는 우리의 자수는 미적인 조형감각의 예술성이 돋보이며 자수를 놓는 이의 심미감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성과 정서가 표현된 입체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자수는 필요에 따라 세부 묘사보다는 대담한 생략법을 구사한 것이 많고, 정교하더라도 근시안적인 시각보다는 관조할 수 있는 윤곽과 부드러운 선의 표현이 백미로서 중국이나 일본 자수와 차별되는 한국 자수만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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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한 쌍을 중심으로 각종 장생문을 수놓은 수베갯모 |
수저집에 수놓아진 팔보문 |
십장생을 수놓은 귀주머니 |
보자기에 나타난 문양의 형태 변화와 재배열을 통한 넥타이 디자인
김한응/ 인덕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보자기의 다양한 문양(자연문양, 기하학적 문양)을 기초로 새로운 형태 구성과 배열, 색채의 현대화 등을 토대로 넥타이 디자인을 했다. |
보자기
우리의 보자기와 서양의 가방은 사용 목적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단순히 자로 잴 수 없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가방은 상자의 개념을 그대로 둔 채 들고 다닐 수 있는 기능(상자+손잡이)만을 첨가한데 반해, 보자기는 싸는 내용물에 따라 그 형태도 달라져 그것과 일체가 된다.
즉, 가방은 어떤 내용물을 담든지 간에 그것에 관계없이 독립된 자기 존재를 갖고 있다. 반면 보자기는 매듭을 풀어 접어두면 3차원의 형태가 2차원의 평면으로 바뀌고, 언제나 쓰임새가 생기면 하찮은 천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 자신의 몸을 펼쳐 물건을 감싸주는 넉넉함을 보인다.
또한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물건보, 상보, 사주보, 합보가 되는 등 융통성과 다기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생활용구인 보자기는 물건을 안전하게 싸서 간편하게 보호, 보관, 운반하는 역할은 물론 복(福)을 싸둔다는 개념의 기복 신앙적 측면에서, 또한 예절과 격식을 차리는 의례용으로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보자기의 발달은 사람을 존중하고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좁은 공간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감추려는 정갈한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용적의 신축이 자유로운 보자기는 협소한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으며, 여성들의 활동범위가 제한된 당시의 폐쇄된 사회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건전한 여가활동으로서 노동과 오락, 예술이 하나로 합쳐진 활동의 일환이었다.
정성스럽게 조각 천을 하나 하나 이어 붙이거나 수를 놓아 아름답게 피어난 보자기의 아름다움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에 의한 발상과 색상 배열 및 재료 선택이 이루어짐으로써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 예술 이전의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어 신선함은 물론 또 다른 차원의 숭고함과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보자기는 사용 계층에 따라 궁보와 민보로, 민보는 제작방법에 따라 조각보, 수보, 식지보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꾸밈새에 따라 홑보, 겹보, 솜보, 누비보로, 그리고 문양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당채(唐彩)로 그린 당채보, 금박을 찍는 금박보, 보판(補板)에 물감을 묻혀 찍어낸 판보로 나뉜다.
또한 보자기에 사용된 천에 따라 명주보, 사보(紗褓), 단보(緞褓), 무병보, 베보 등으로 분류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보자기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는 조각보와 수보를 꼽을 수 있다.
조각보
조각보는 폐품활용이라는 우리 조상의 알뜰한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 서민층에서 주로 통용되었다. 조각보 가운데는 실생활에서의 사용보다는 보 제작 자체에 즐거움과 의미를 두고 제작된 것도 많은데, 조각을 이어간다는 연장 개념을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와 연결시켰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각 천이 결합된 패턴은 다음의 3가지로 구분된다.
조각 천 자체의 모양이 정사각형이거나 이등변삼각형의 조각이 두 개 혹은 네 개가 모여 정사각형 모양을 이룬 것이 질서정연하게 결합되어 있는 패턴으로 동색의 조각들이 사선을 이루도록 배치한 미적 배려가 돋보인다.
보자기 중앙부의 네모꼴을 중심으로 동심원으로 퍼져나가듯 조각 천들이 결합되어 형성되는 네모꼴이 점점 커지는 양상으로 구성하여, 보자기 중앙부가 우물 정(井)자를 이루도록 조각 천들의 색과 면을 안배하거나 바람개비 날개가 돌아가듯이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양상으로 조각 천들을 배열함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여의주문보(如意珠紋褓)라 하여 작위적인 디자인을 보이는 형태로, 일정한 크기의 원들이 서로 겹쳐져 있어 보자기 전체는 네 개의 꽃잎이 달린 꽃들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의주가 겹쳐져 도열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의 조각보는 두 종류의 천으로 꽃잎 부분과 그 외의 공간을 이중의 층(層)이 지도록 꾸밈으로써 부조와 같은 독특한 효과를 거두는 매력이 있다.
구성미가 특히 빼어난 조각보는 어떤 패턴을 형성하기보다는 조각들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가운데 더 많다. 크기와 모양, 색상이 각양각색인 수십 개의 천 조각들이 규칙성을 배제하고 있으면서도 산만하거나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계산된 결과가 아닌 한층 더 높은 감추어진 수리(數理)의 미학 아래 전체가 통합되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조각보의 세련된 색상 배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엷은 파스텔조의 차분한 색상을 주로 사용한 사(紗) 조각보는 색상의 뉘앙스를 잘 살려 전체적으로 변화와 긴장감을 잃지 않는 한 편의 격조 높은 조형작품을 빚어내고 있다.
또한 색상 배합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작품으로는 창생(蒼生)과 성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청홍(靑紅)을 주조로 한 모시 조각보를 들 수 있다. 빨강, 파랑의 원색을 주조색으로 택한 대담성과 색과 면 분할의 세련미, 그리고 전체적인 조화는 ‘데 스틸(De Stijl)’이라는 하나의 예술사조로 인정받고 있는 추상화가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작품에 비견할만하다.
조각보는 구상 후 거기에 맞는 재료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일반 조형작품들과 달리 제한된 재료로 만들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조각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멋진 조형물을 창조해 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버려질 운명의 보잘 것 없는 조각 천들을 모아 빼어난 구성미를 창출해낸 능숙한 솜씨와 탁월한 미적 감각을 생각할 때 조각보는 예술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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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주문 모시 조각 옷보 |
모시 조각 옷보 |
옷감보 |
조각보 형태를 응용한 장신구
김애숙/ 호남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조각보 형태 중 면과 색의 구성 요소를 현대 제품에 맞게 재구성하여 넥타이핀, 커프스버튼, 단추,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디자인했다. |
수보
수보는 혼례 등 길사에 사용되었다. 바탕천은 면직물, 안감은 명주를 많이 썼는데 이것은 견직물과 견사로 제작된 여타의 자수품과 다른 점이다. 면직물을 바탕 천으로 사용한 것은 보자기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배려이며, 물건이 직접 닿는 안쪽 면에 명주를 사용한 것은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려는 의지로 보인다.
수보의 문양 가운데 가장 빈번히 사용된 것은 나무인데, 신성한 자연물 가운데 하나인 나무를 길사에 쓰이는 보자기에 수놓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밖에 꽃은 복(福), 십장생의 하나인 학은 장수, 봉황은 상서로움, 나비는 길상, 열매는 다산 특히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전체적으로 수보의 문양은 복락기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복(福)겮�(壽) 따위의 문자문이 보자기 중심부나 가장자리의 다른 문양과 어울려 수놓여 있다.
문양의 구도를 보면 입체적인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평면도 형식과 입면도 형식 등으로 양분된다. 문양의 배열은 대부분 대칭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자기 중심부의 원형문(圓形紋) 또는 화문(花紋)을 중심으로, 혹은 두 개의 대각선이나 십자가형으로 만드는 두 개의 직선을 중심으로 사방대칭으로 문양을 배치하고 있다.
좌우 상견형(相見形)이나 팔방대칭형도 다수 발견되고 문양이 보자기 전면에 방사상으로 퍼져 있는 형태의 배열도 적지 않으며 자유로운 형식으로 시문된 예도 있다.
문양의 표현 양상은 대체로 비사실적인데 예를 들면 줄기나 가지 끝에 달린 꽃이나 새곀�벌레 등도 그 형태가 뚜렷하지 않고 다중의 상(像)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보의 문양은 자연에서 도출된 것이나 추상화 단계를 거쳐 자연물의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을 남겨 절약된 생물 형태의 선(線)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풍요로워 보이도록 구사하였다.
수보에 쓰인 색상은 음양오행설에서 말하는 자연계의 기본 색상인 청적, 황, 백, 흑 등이며, 특이한 것은 문양 하나하나를 수놓을 때 작은 단위까지도 다색의 실들로 메꿈으로써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동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나무줄기나 문자의 획을 나타낼 때는 오색사를 병렬시켜 표현했으며, 작은 잎사귀나 열매 하나에도 2중,3중의 색실을 사용하여 조화시킴으로써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게 한다.
천으로 된 사각형의 물리적인 것 자체가 그 전부가 아니라 최후에 완성된 실루엣이 있어야 참다운 보자기가 되었던 우리의 보자기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쇼핑백 등에 그 자리를 내주며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환경파괴의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는 오늘날,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비닐봉지 대신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보자기를 활용한다면 환경보호에도 일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먼저 보자기의 문양이나 색상 등의 가치를 인정, 패션 분야 등에서 응용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향후 본래의 기능성 외에 현대 조형예술에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역할도 기대해 본다. 더욱이 정성스럽게 무엇인가를 보자기에 싸 상대방에게 전하면, 상대방은 그에 대한 답례로 보자기에 또 무엇인가를 정성스럽게 싸 전함으로써 마음과 마음의 매개체가 되었던 우리의 보자기 문화는 마음의 벽을 쌓고 지내는 우리들이 되찾아야 할 정신적 문화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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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문(樹花紋)이 대칭으로 수놓인 수보 |
네 귀에 수를 놓은 항보 |
나비문을 수놓은 수보 |
글_김주미(KIDP 객원 편집위원)
김주미 1960년 생.
덕성여대 영문과 졸업(1984). KIDP 홍보출판실(1984∼1994)과 KIDP 편집 전문가로 활동(1994∼1997)하면서 <산업디자인> <포장기술> 등의 간행물과 각종 도록과 포장기술개발 성공사례집 등을 기획, 편집, 제작했다.
산업자원부(KIDP)에서 주관한 산업디자인기반기술개발사업의 하나인 ‘전통 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연구’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1998). 현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에 다니면서 디자인의 원형탐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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