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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연구 - 원형을 찾아서

글 싣는 순서
1. 연구개요
2. 건축, 석조
3. 회화, 목공예
4. 생활용구
5. 도자기
6. 의복, 직물류, 장신구
7. 금속공예, 악기, 맺음말

금속 공예

1. 금관과 관식
금관은 금으로 만든 관모(冠帽)를 지칭하며 관식은 장식적 효과를 내거나 종교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관에 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고대의 관모나 관식은 대부분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로 특히 신라 고분의 출토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삼국의 금관 및 관식 양식을 알아보기로 한다.

고구려
평양 청암동에서 출토된 머리띠형의 투각 인동문(덩굴이 뻗어 나가는 형상을 도안한 무늬) 금동관은 방형으로 투각된 테두리 위에 인동당초로 새겨진 초화문의 입식(立飾)이 다섯 갈래로 세워져 있고 테두리 양쪽 가장자리 밑에는 리본 장식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또한 양쪽에 끈이 달려 있어 이마에 대고 알맞게 묶을 수 있다.
관식의 경우, 머리에 새의 깃털 장식을 꽂던 풍습이 반영되기도 했는데,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관식은 반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얇은 금동판으로 제작되었고 바닥에는 원형, 반원형, 꽃 잎사귀형 등의 투각 무늬를 둘렀으며 가장자리에는 드문드문 작은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꿰매어 달게 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백제시대 옹관에서 내, 외관의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내관은 반원형의 금동판 2장을 맞붙여 위쪽 둥근 가장자리에 테두리를 씌워 붙였으며, 관모의 가장자리에는 간단한 인동문(忍冬紋)을, 바탕에는 초화문(草花紋)을 돌출된 점선으로 새겼다.
한편 외관은 나비 3cm의 둥근 테두리 위에 3개 수목형의 입식을 세웠으며 표면에는 원형의 영락을 달아 신라의 입식형 금관에 앞서는 고식을 따르고 있다.
금제 관식은 얇은 순금판에 투각한 활짝 핀 꽃 모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인동당초무늬를 배치하고 원형 영락들을 금실로 매어 달았으며 뿌리 부분의 아래 끝은 안쪽으로 휘어 구멍을 통하여 관모에 부착하도록 되어 있다.

신라
신라의 금관은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으로서의 금관은 금판을 잘라 만들었으며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입식을 세웠는데 산자형(山字形) 또는 출자형(出字形)의 입식을 세우고 뒤쪽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하였다.
금관의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구형의 혹을 테두리에 도드라지게 눌러 표현했는데 여기에 보통 곡옥과 둥근 금제 영락을 규칙적으로 섞어 매달았다. 또한 입식의 끝 부분은 모두 보주형(寶珠形)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신라의 금관 형태에서 우리는 수목사상과 사슴 숭배사상 등을 엿볼 수 있다. 관식의 경우는 새 모양과 새 날개 모양의 것이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제 새 모양 관식은 두 날개를 펼친 새 모양을 도안한 것으로 앞면 하반부를 제외한 전면에 원형 영락을 금줄로 매달아 장식했고, 금관총과 천마총의 금제 새 날개 모양 관식은 당초무늬를 투각한 금판 3장을 결합하여 만들고 전면에 원형 영락을 장식했다.

화려하게 위로 솟구쳐 올라간 인동문이 흡사 불꽃처럼 보이는 고구려의 관, 금을 종이 다루듯 자유자재로 오려내어 꽃송이와 불꽃무늬를 투각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백제의 관(무녕왕릉), 나뭇가지와 뿔 모양으로 도안된 의장에 비취, 곡옥 등의 영락을 달은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의 신라 관 등은 삼국시대 금속공예 기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더욱이 신라 금관에 달려 있는 수 백 개의 영락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그 진동이 아주 민감하여 빛의 환각 속에 빠져들게 하며, 금의 황금색과 묘한 배색의 하모니를 이룬 가을 하늘 같은 비취 곡옥은 신라 금관의 환상적 조형미를 더욱 배가시켜 준다.


무령왕릉의 금제 관식 황남 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황남 대총에서 출토된
금제 새날개 모양의 관식

 

2. 허리띠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면, 남녀 할 것 없이 끈목으로 띠를 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끈목은 차차 띠로 바뀌어 갔으며, 띠의 재료는 가죽이나 비단 등을 사용하다가 신라 때부터 금, 은, 구리 등의 쇠붙이(요판)를 이어서 만든 띠(요과)에 금, 은, 구리의 조각을 무수히 달아 장식한 수식(요패)이 사용된다.
요과는 단순한 허리띠에서 지배 계급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변천 발달하였으며 실용적 용도보다는 의식용이나 주술적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 사용되었고, 신분상의 등급에 따라 재료, 색, 수 등을 달리하기도 했다.
또한 요패 끝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장집, 족집게, 향랑, 숫돌, 곡옥 등의 온갖 소도구를 주렁주렁 매달아 사용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는 조형성과 장식적 수법이 발달된 요판과 요패가 발견되고 있는데, 먼저 요판을 살펴보면, 신라 때에는 방형(方形)과 심엽형(心葉形; 하트 모양)을 상하로 연결한 과관을 여러 개 옆으로 연결하여 끝에 교구를 다는 형식인데, 방형 판에는 고사리 같은 문양을 투각하였고 심엽형에는 뿌리를 역시 고사리 모양으로 안으로 구부렸으며, 때로는 영락을 달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신라 허리띠의 공통된 형식이다. 또한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허리띠는 큰 과판과 원형의 작은 과판을 여러 개 교대로 연결하고 큰 심엽형 영락과 작은 원형 영락을 과판마다 달았는데 각 과판은 한 쪽으로 배가 나오게 만들어 그 면이 몸에 닿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연결된 과판 양끝에는 심엽형이 투각된 화판(花板)을 달고 한쪽 끝에 교구를 달았다. 이러한 형식은 신라시대의 과판과는 다른 형식이다.
이러한 금속제 허리띠는 고려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으며, 요판과 요판을 연결하는 장치가 없는 등 신라시대의 허리띠에 비해 간단하고, 이 시기가 지나면 금속제 허리띠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조복과 상복에 착용했던 옥대, 학정대, 금대, 은대 등 각종 대와 관복에 착용했던 오서대, 백포대, 흑각대 등의 허리띠가 있다.
또한 관복에 착용했던 대의 경우, 같은 종류의 대라도 문양의 유무에 따라 착용계급을 달리 하였다.

요패에 있어 신라 때의 요패는 큰 타원과 작은 방형의 판을 연결하여 끝에는 물고기 등의 형태를 형상화시킨 장식으로 향랑, 숫돌, 곡옥 등을 달았고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때로는 표면에 영락(瓔珞)을 장식하는 경우도 있고 타원형의 판을 사용하지 않고 쇠사슬을 쓰고 중간에 방울을 드문드문 연결한 것도 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은제 허리띠는 크고 작은 타원형 은판을 교대로 연결하고 큰 은판에는 영락 두 개씩을 달았다.
또한 과대와 접하는 은판은 위가 삼산형(三山形)으로 된 방형판이고 속에 두꺼비를 투각 수법으로 나타냈으며 타원형 판 끝에는 사다리형 은판 속에 역시 투각 수법으로 귀면(鬼面)을 나타냈다.

우리의 요판과 요패 등에 나타난 정교함과 예술적인 멋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각종 장식품과 장신구 디자인 등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의 뛰어난 세공수법을 발휘할 수 있는 우수한 제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봉문이 양각되어있는 조이.
크고 넓은 그릇 위에 술을
담는 준기가 올려졌다.
신라 황남대총의 금제 허리띠 잔과 같이 쓰이는 작 소모양의 준기인 희준

 

3. 제기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하늘과 자연을 숭배하고 조상을 섬기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으며, 특히 조선조에는 유교를 국시로 하여 임금에 대한 충과 부모에 대한 효의 사상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숭상되었기 때문에 군왕은 물론,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조상에 대한 제례 의식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의식 중에서도 가장 장엄한 제사 의식은 왕가의 제사 의식인 종묘 제례로서 이에 사용된 제기들 역시 선인들의 세심한 배려와 기능적 조형미에 대한 의식 그리고 장인들의 정교한 손길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제기(祭器)는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고 조상을 기리는 제례에 사용되는 그릇 및 관련 도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관을 중심으로 사용했던 것과 일반 개인이 사용했던 것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공공 제기들은 일반 제기와는 달리 지배 계급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 절차가 복잡,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형태와 크기 면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형태가 다양해 코끼리, 소, 돼지, 양, 닭, 봉황새 등 짐승의 머리 모양이나 발 모양을 본떠서 기능을 살린 것이 많으며, 또한 이런 형태에 따라 조각된 무늬도 다양하고 그 하나 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조형미에 있어서도 뛰어나다.
기능과 조형미를 동시에 갖춘 이들 제기들은 금속(유기) 특유의 은은한 광택과 더불어 높은 품위와 예술성을 보여준다.

밥을 담는 제기로는 보와 궤가 있다. 놋쇠로 만들어진 보는 쌀밥과 기장밥을 담으며, 겉모양은 방형인데 이는 땅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안은 둥글게 패어 있고 굽이 달리고 뚜껑이 딸려 있다. 궤는 원형의 유제 제기로 하늘을 상징하며 메기장밥과 피밥을 담는다. 이 역시 굽이 달려 있고 뚜껑이 있다.
국을 담는 제기로는 등과 형이 있는데, 등의 형태는 단지 모양이며, 형은 단지 모양에 양 옆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다. 날고기를 담는 제기는 도마와 같이 생겼으며 조라 하고 양쪽에 붉은 칠을, 중간에 검은 칠을 했다.
과일과 떡을 담는 제기에는 변과 두 등이 있는데, 변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로 과일, 떡, 포 등을 담는다. 형태는 밑에 높은 굽이 달린 사발과 같다. 두는 단지 모양으로 생긴 제기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물기 있는 음식을 담는다.
고기류를 담는 제기로 다리가 없는 것을 ‘부’라 한다.

술과 물을 담는 제기로는 이(彛), 희준과 상준, 산뢰, 착준과 호준, 작, 용찬 등이 있다. 이(彛)는 술을 담는 항아리로 조이, 계이, 가이, 황이 등으로 구분된다.
조이는 크고 넓은 그릇 위에 술을 담는 준기가 올려져 있고, 몸체에는 봉문이 양각되어 있어 남쪽과 예를 상징하며, 봄과 여름 제사 때 기장과 향초로 빚는 울창주를 담는 유제 제기이다.
계이는 크고 넓은 그릇 위에 준기가 올려져 있으며 닭이 양각되어 동쪽과 인(仁)을 상징한다. 봄, 여름 제사 때 사용하며 맑은 물을 담는 유제 제기이다.
낟알을 새긴 가이 역시 술을 담는 제기로 가을과 겨울 제사 때 맑은 샘물인 현주(玄酒)를 담는데 사용된다. 황이는 받침과 그릇에 두 눈이 양각되었는데 이는 음(陰)과 신(信)을 상징하며, 가을과 겨울 제사 때 맑은 물을 담아 사용하는 유제 제기이다.

이밖에 소의 등에 항아리를 올려 놓은 형상의 희준, 코끼리 등에 항아리를 올려 놓은 형상의 상준, 산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한 쌍의 항아리로 하나에는 청주를 담고 다른 하나에는 현주(玄酒)를 담아 오향대제(五享大祭)마다 사용한 산뢰, 문식(文飾)을 새긴 술항아리 이름으로 하나는 예재(叡裁), 하나는 명수를 담는 착준, 완자무늬를 새긴 술항아리로 가을, 겨울 제사에 흰빛 술인 양재를 담아 사용하며 한 쌍으로 되어 있는 호준, 술잔으로 삼발형인 작, 또한 술잔으로 잔의 양쪽에 용머리와 자루를 달아 잔 받침대 위에 놓게 되어 있는 용찬 등이 있다.

제기라 하면 그 의미가 ‘죽은 자를 위한 그릇’이라는 인식이 강해 선뜻 그 형태와 이미지를 제품에 활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우수한 문화 산물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관식의 형태와 장식 등을 반영한 넥타이 디자인
이충우_공주전문대 산업공예디자인과 교수
관식에 나타난 인동당초문, 꽃잎 등의 문양과 영락의 원 형태에 크기변화를 주어 넥타이를 디자인했다.
요과, 요패 문양과 형태를
응용한 생활용품
이진구_한동대 산업정보
디자인학과 교수
요과, 요패의 형태와 문양
등을 자동차 휠, 오프너 등의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장식적이고 고급스런 제품이미지를 꾀하였다.



목제기의 형태를 램프 디자인에 적용
박봉래_한양여전 산업디자인과 교수
조상을 경모하는 제례에 쓰이는 제기
중 목제기의 형태를 준용하여
램프와 가스 감지기 등을 디자인하였다.

 

4. 향 로

나쁜 냄새를 없애고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고자 하는 의미에서 불전에 향을 피워 공양하는 물건으로 삼았으며, 이에 따라 향을 꽂거나 피우는 그릇으로 향로가 제작, 사용되었다. 향로는 형태에 따라 거(居)향로겫(炳)향로곀(懸)향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예배용 거향로는 지정된 장소에 배치하여 향을 피울 때 사용되고, 의식행렬용 병향로는 손에 들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현향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걸어두도록 밑이 둥글고 고리가 달렸으며, 주로 완향용(完香用)으로 사용되었다.

향로는 불교 전래 이후 불구(佛具)의 의기로서 널리 보급되었으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병향로가, 고려 때에는 금속공예의 발달로 향로의 기본 형태를 이루는 청동제 고배형(高杯形)이 출현하게 되었다.
고배형 향로의 구조는 몸체와 받침이 상하로 양분되고 동체(胴體)는 깊숙한 발(鉢) 모양이며 구연부에는 넓은 전을 수평으로 둘렀다. 받침인 대좌부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넓어져 나팔형으로 벌어지며 몸체와 대좌는 못으로 연결 고정시켜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고려 전 시대를 통해 변화되지 않고 유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향로의 기본 형태를 이루었다.
고려 때에는 금동제 향로 이외에 청자 향로가 제작되었으며, 상감기법을 이용하여 섬세하고 세련된 의장 문양을 시문하기도 했다. 또한 은입사 기법으로 명문을 새겨 넣은 예들도 있어 유래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향로의 형태가 더욱 형식화되거나 보다 다양해진다. 재료 또한 금동제에서 백동겷턿석(錫)겴未겦珠 등으로 이채롭다.
전기에는 고려향로의 양식을 계승한 것들도 더러 있으나 임진왜란 이후의 사회변화의 영향과 조선왕조의 배불정책에 의해 향로를 포함한 전반적인 불구 제작이 상당한 퇴보를 보이게 된다.

향로는 부처님께 공양 드릴 때 사용했던 용구인 만큼 세심한 배려와 정교한 기법을 구사한 것이 많다. 옛 향로들처럼 물(物)의 제작에 있어 이러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세계 속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심어 가는 것은 결코 요원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 청동 은상감 향로
고려 청자사자뉴개 향로
백제금동용봉봉래산 향로

전체 높이가 64cm나 되는
대작으로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 동양의 향로 중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꽃 모야의 향로를 스태든 디자인에 응용
박선애_대원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동제 연화형 향로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단순한 선과
기하학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스탠드 디자인에
응용하였다.

 

5. 사리장엄구

불교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탑 속에는 사리가 봉안된다. 이 때 사리를 넣는 그릇인 사리용기와 함께 각종 장엄구(공양품)가 봉안되는데 이를 통틀어 사리장엄구라 한다.
사리장엄은 불상과 탑 제작에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한 불교 의식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사리장엄구는 당대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재료로 제작되어 그 시대와 지역의 공예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리장엄구는 사리용기와 사리장엄으로 구분되며, 사리용기는 사리병, 사리호(壺)와 사리합(盒), 사리 함 등으로 다시 세분화 할 수 있다.
먼저 사리용기 중 사리병을 살펴보면, 사리병은 직접 사리를 넣는 사리용기이며 예배의 대상이 된다. 사리병의 재질로는 유리제겮痴ㅑ쫨금속제 등이 있고, 형태는 병같이 목이 길고 몸체가 둥근 것, 둥근 몸체에 조금 목이 짧은 것, 몸체가 크고 목이 약간 짧은 것, 병의 배가 그리 크지 않고 목이 몸체보다 짧고 굵은 것 등 다양하다.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사리병의 재료는 유리제가 주류를 이루고 그 제작 솜씨도 우수한데 신라 경주를 중심으로 제작된 것이 많다.

고려 때에는 유리제 사리병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수정제 사리병이 제작되었으며 전대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사리호와 사리합도 사리병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9세기경 신라에서는 납석제 사리호와 사리합이 유행했으며 형태로는 안팎을 둥글게 깎고 동체에는 바둑판 모양의 칸을 나누어 명문을 새겨 넣은 것, 활석제의 뚜껑 있는 원호(圓壺)로 회백색이며 원형의 꼭지가 있는 것, 뚜껑을 덮었고 옆면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 등이 있다.

고려 때에는 금속제 합이 많이 쓰여졌으며 재료로는 동제가 가장 많다. 사리병과 사리함이 사리를 직접 넣는 용기라면, 사리함은 이것을 밖에서 감싸고 보호하는 바깥 상자로서 내함과 외함으로 나누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외함이 주로 금속으로 되어 있으며 드물게는 석함도 있다. 외함 속에는 내함으로 볼 수 있는 합으로 호가 들어 있다. 이 합(호)속에 사리를 넣는 사리병이 놓여지며, 이밖에 장엄(莊嚴)을 위해 옥류, 동경, 향목 등의 공양품도 함께 넣는다.
사리함의 재료는 신라 때에는 청동, 고려 초기에는 금동, 고려 말기에는 은제 도금이 많이 쓰였다. 형태 변화를 보면, 신라시대에는 전각(殿閣)형, 고려시대에는 간소하고 규모가 작아진 8각원당부도형(八角圓堂浮屠形)이 있으며, 예외로 신라와 고려 말에 6각형의 사리함 등이 있다.
이밖에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에 도자기로 외함을 삼은 경우도 있다. 우리 나라의 사리함은 신라 시대의 전각형 사리함에서 독창성을 발휘하여 우수한 것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사리를 넣은 용기와 공양물을 함께 탑에 봉안하는 것을 사리장엄이라 한다.
사리를 안치하는 장소는 주로 탑 속이지만, 반드시 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리를 넣은 작은 탑을 별도의 전각 안에 모시거나 지하에 큰 돌을 놓고 그 아래에 돌 항아리 모양의 용기에 안치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불상의 복부에 복장 유물로 안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탑 속의 중심 또는 그 근처에 사리구를 장치하는 것이 통례이다.
또한 사리장엄구를 탑의 여러 장소에 봉안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탑 속에 안치실을 따로 마련하여 위아래 두 군데에 안치하기도 했다.

각 시대별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면, 신라 시대의 사리구는 전각형 또는 전각형의 옥개 모양을 한 내용기 속에 연화좌를 마련하고 이 위에 사리병을 안치하는 것과 입자형식(入子型式; 같은 꼴의 것을 크기의 차례대로 겹쳐 넣게 만든 한 벌의 그릇이나 상장)으로 용기를 겹치는 방식의 두 가지대로 대별할 수 있다.
주류를 이루는 것은 전각형으로 이러한 전각형의 사리구야말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신라의 독창적인 방식이다. 사리구의 재료로는 금, 은, 동, 유리, 옥, 수정, 마노, 토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탑 속에 봉안되는 불경은 조탑(造塔)의 소의경전(所衣經典)인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이 주가 되는데 불국사 석가탑에서 세계 최고의 목판인경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어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사리를 직접 넣는 사리병은 통일신라 때까지 유리제 녹색 사리병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수정제 사리병으로 대체되었다.
조선시대의 사리병으로는 수정과 청동으로 만든 것이 발견되고 있으나 많지 않고 형태도 단순해졌으며, 사리함은 주로 뚜껑이 덮인 은제나 동제 및 유제 합이 널리 쓰여졌다.
이처럼 한국의 사리구는 다양한 재료와 수법으로 시대에 따라 변모 발전하였다. 종교적 성격이 강한 사리구를 제품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용도 등에 그 이미지나 형상 등의 활용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신라 청동제 사각함
조선 법주사 팔상전 사리호
신라 녹색 유리제 사리병



사리구를 보석함 디자인에 응용
박봉래_ 한양여전 산업디자인과 교수

패물이나 문서 등 귀중한 것을
보관하는 보석함 디자인에 사리함의
이미지와 형상을 적용하였다.

 

6. 촛대

실내 등화구로 또한 제구로서 초를 꽂아 사용하는 촛대는 우리의 실생활과 직결된 훌륭한 조형물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미적 감정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공간을 비추어 주었던 촛대는 공간의 중심체가 되었고 또한 인간 영혼에 비유되기도 했으며 우리의 의식인 동시에 신앙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는 원료의 희소성과 어려운 제작으로 인해 궁중과 사원 등 극히 한정된 곳에서만 사용되었는데, 바로 그 사용 계층의 한계성 때문에 화려한 조형 의장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어둠을 밝히고자 하는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한 초와 촛대는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공통된 심리와 창조적 욕망에 따라 점차 실용과 미를 겸비한 공예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촛대는 받침접시, 초꽂이, 받침대, 굽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굽이나 받침대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넣기도 했으며, 받침대에는 대매듭, 줄구슬 모양 등이 사용되었다.
또한 철이나 놋쇠, 청동 재질로 만든 촛대는 은 상감을 넣거나 촛불을 반사시켜 실내를 더 밝게 비추는 화선(火扇)에 박쥐나 나비, 팔각형 등의 무늬를 화려하게 새겨 넣음으로써 조형미를 십분 발휘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낙랑시대 고분에서 청동제 촛대가 발굴됨으로써 이 시기에 초와 촛대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의 전래에 힘입어 삼국시대에도 촛대 제작이 이루어졌는데 그 걸작으로는 통일신라 때 제작한 한 쌍의 금동수정장식촛대가 있다.
고려 때에는 주로 청동 촛대가 사용되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청동 쌍사자 촛대가 있는데 밑에 괴수 얼굴을 한 세 개의 발을 달아 2단의 원반형 받침을 받치고 있고, 받침 위에는 연꽃으로 된 3개의 못으로 발을 고정시켜 장식적 효과를 겸하였다.

2단의 원반형 받침 위에는 사자 두 마리가 마주서서 앞발로 기둥을 받치고 얼굴은 옆을 보고 있는데, 세련된 형태의 두 마리 사자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며 표면의 장식 문양은 없으나 그로 인해 사자가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삼국시대,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종교적 수요에 의한 촛대는 퇴색한 반면,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등 실생활에 유용한 촛대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달리 그 형태가 자유로워지면서도 소박한 정감을 지닌 다양한 재질의 촛대가 제작되었다.
궁중 제례에 사용된 유제 촛대 중에는 여섯 잎의 화형(花形)으로 된 대형 받침 중앙에 배가 부른 듯한 원형 촛대 기둥을 세우고, 육각형의 바람막이 판이 있으며 심지를 다듬는 가위와 고리를 함께 붙여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둠을 밝혀주었던 촛대는 재료의 쓰임새와 조형양식에 있어 시대적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서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생활의 조화미를 간직한 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전기 등의 조명기구의 발달로 촛대의 사용은 예전 같지 않으나 지금도 초의 형태,크기,색채 등이 다양함은 물론, 재료와 제작기법의 발달로 인해 촛대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따라서 촛대를 단순히 구시대적 유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우리의 문화적 요소를 지닌 형태와 문양 등을 촛대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을 수 있는 제품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나비와 희(囍)자 등을 새겨 넣어 뛰어난 조형미를 발휘한 청동 촛대 촛대의 이미지와 형태, 기능성을 조명디자인에 적용
한기웅_강원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촛대의 재료별 이미지, 사용공간에 따른 형태와 기능성과의 상관성, 각 부위별 특성 분석 등을 통해 조명등의 디자인을 꾀했다.

 

글_김주미(KIDP 객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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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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