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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조명, 우아한 무대장치, 화려한 의상, 힘찬 음악과 뛰어난 연기가 어울려 눈과 귀가 황홀해진다.
… 마지막 피날레는 어떤 국적의 관객이건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시종 관객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하다.”
-<뉴욕타임즈>
“장려함의 의미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전달해 준 ‘한국판 에비타’였다”
-< LA타임즈>
문화상품이야말로 국가 이미지를 파는 상품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와 견주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는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세계시장 진출의 교두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1995년 12월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한 이후 1999년 3월까지 4년에 걸쳐 모두 300여 회의 공연을 가졌다.
지금까지 30만 명이 관람하였으며 동양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해외시장 진출
1997년 뉴욕 공연 당시 10일간 약 2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귀국 기념 공연(1998년 11월 28일-12월 12일)에서는 IMF 상황에도 불구하고 5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저력이 있다.
1997년 뉴욕공연은 링컨센터(7월 31일-8월 23일)에서, LA공연은 슈버트극장(9월 11일-27일)에서 전체 49회의 공연을 통해 약 7만명이 관람했다.
관람객의 구성은 1997년 뉴욕 공연에서는 외국인이 30%에 그친 반면 1998년에는 80%로 급증해 명성황후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아시아 문화중심지로 성장할 중국과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1998년에는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프라임타임과 휴먼다큐에 명성황후를 소개했고, 1999년 3월 공연 당시 일본 후지 텔레비전 사업국에서 공연 유치를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중국 공연도 정부와 함께 추진중에 있다.
그밖에 1999년 하반기에는 런던 공연과 2000년 10월 경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멜버른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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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이고 짜임새있는 무대세트는 화려한 의상디자인과 맞물려 더욱 임팩트한 뮤지컬로 만들었다.
특히 복선의 역할을 하는 무대디자인이 파란만장했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설명해주고 있어 작품성을 한층 높였다.
총 60벌의 의상이 등장하고 조선왕조의 전통 복식을 기본으로 한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표현, 화려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각 캐릭터에 맞춘 적절한 의상디자인, 일본 상인들의 과장된 복식 등 사실주의보다 강렬한 이미지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극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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