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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워

세계적 명품에서 design을 읽는다 Ⅱ

영화의 소품으로 애용되는 지포 라이터
오늘날 세계 2억의 인구가 소유하고 있는 지포 라이터(Zippo Lighter).
1980년대까지 코카콜라 다음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명품이다. 1932년 필라델피아의 브레드포드(Bradford)에 살던 조지 블레이스덜(George G. Blaisdell)은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한’ 라이터를 만들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 제품을 고안하였다.
당시 의상 디자인의 혁명 소재였던 지퍼(zipper)의 발음이 좋아 ‘지포’라고 이름 붙인 이 철재 라이터는 심플한 디자인 하나로 세계시장을 장악하였다.
표면은 철, 내부는 아연으로 만들어진 지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특허번호 2032695), 달리는 기차의 창문 밖으로 불이 켜진 지포를 내미는 광고는 너무나 유명하다.

지포의 독특한 디자인은 영화 속의 좋은 소품으로도 애용되어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탑건(Top Gun)’ 등의 영화에 등장하였고, ‘터미네이터 2(Terminator 2 - The Judgement Day)’에서는 아놀드 슈바제네거, ‘다이하드(Die Hard)’에서는 브루스 윌리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긴요하게 사용하였다.
한편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Off Broadway Show)’ 중에서 가장 유명한 ‘스톰프(Stomp)’ 공연에서는 8명의 영국 연주가 중 한 명이 시종일관 지포라이터만을 가지고 다양한 소리를 내며 화음을 맞추는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한 재료, 간결한 라인의 디자인으로 이미지 확보에 성공한 지포는 최초 생산으로부터 지금까지 원래의 디자인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지 표면에만 유명 상표와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다양한 배리에이션(variation)을 선보이고 있다. 베네통(benetton), 잭 다니엘(Jack Daniel’s) 위스키, 카멜(Camel) 담배, 할리 데이비슨(Harley Davison) 오토바이 등과 같은 상표는 물론, 제임스 리치(James Rizzi),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그림, 그리고 유명한 만화 캐릭터의 도입은 전세계 지포 애호가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1932년 1.95달러의 가격에 최초로 선보이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3억 개 이상 생산되었으며, 현재도 하루 7만 개, 1년에 1,500만 개가 만들어져 세계 120개 국에 수출되고 있다.
손바닥 안에 잡힐 만한 작은 제품 하나의 성공. 사랑하는 연인과 근사한 촛불 만찬(candle light dinner)에서, 야외 바베큐나 캠프파이어에서, 그리고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손을 녹이는 용도까지 다양하게 애용되는 지포.
창업자의 장인정신과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창의력이 살아있는 한 지포의 전설은 영원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즐겨 찾아 유명해진 빅토리녹스

1884년 스위스 이바크 마을, 많은 농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미국, 호주 등으로 이민을 떠나던 시기. 24세의 청년 칼 엘스너(Karl Elsner)가 차린 조그마한 공장에서 만든 제품 하나가 100년 후 ‘빅토리녹스(Victorinox)’의 전설이 되었다.
이 공장은 1891년 독일 수입품 장비를 사용하던 스위스 군대에 칼을 공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초기에 공급된 스위스 육군용 칼은 매우 거칠고 무거웠는데, 차차 무게를 줄이고 다양한 기능을 첨가시키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빅토리녹스가 오늘날의 디자인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7년.
칼, 캔오프너, 스크루 드라이버, 코르크 스크루 등이 포함된 ‘장교 나이프(Officer’s knife)’의 탄생부터였다.
1909년부터 이 회사는 타계한 어머니 빅토리아의 이름을 따서 상표명을 빅토리녹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빅토리녹스 최고의 히트 상품은 ‘스위스 챔프(Swiss Champ)’.
용도에 적합한 2∼3개의 칼, 캔오프너, 면도칼, 돋보기, 스크루 드라이버, 스크루 코르크 스크루, 핀, 이쑤시개 등의 31가지 기능에 바늘과 실, 밴드 등이 들어 있는 서바이벌 키트가 포함된 포켓 나이프.
무게는 불과 185g이지만 64개의 부품과 450번의 제작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나의 틈새로부터 펼쳐 나오는 새로운 기능에 대한 기대감과 감탄. 내부 공간 구조의 치밀한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밀함이 바로 스위스 챔프의 자랑이다.

특히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빅토리녹스 나이프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 백악관을 찾는 손님들에게 선물로 증정하기 시작한 전통은 레이건, 부시, 클린턴으로 이어지고 있다.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홍콩영화 ‘애정만세(愛情萬歲)’에서 주인공이 손목을 자르는 애잔한 장면으로 인상깊게 등장하기도 했던 빅토리녹스는 미우주항공국 나사(NASA)의 우주선에 실리고 있고,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는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디자인의 명품이다.
몇 해 전 인기가 있었던 TV 프로그램 덕분에 ‘맥가이버 칼’로도 불리는 이 제품은 천 가지가 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연간 판매량 2,600만 개, 천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스위스 군대에서 사용하여 더욱 유명해진 빅토리녹스는 오늘날 파일럿의 장비로, 여행자의 필수품으로, 그리고 젊은이들의 패션 소품으로 불멸의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장난감 세계의 영원한 프린세스 바비 인형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인형. 최고의 생일 선물. 친구가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던 그 인형의 이름은 ‘바비(Barbie)’다.
바비 인형은 1959년 로스 헤릴러(Ross Heryler)에 의해 최초로 탄생한 이래 40년간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장난감 세계의 영원한 프린세스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 여성의 이상형을 닮은 몸매에 반짝이는 드레스, 여성스러운 눈과 매혹적인 미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세련됨은 바비 인형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대표적인 특징이다.

1960년대는 제한적인 여성의 사회활동으로 바비의 역할은 간호사, 발레리나, 스튜어디스가 고작이었다.
70년대 여성 해방론자들의 사회운동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울워스(Woolworth) 등의 대형상점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의 위기를 겪기도 했던 바비는 1980년대 들어서는 최대의 호황을 맞는다. 변화하는 시대의 여성상에 적합하게 직업도 변호사, 의사, 회사 중역 등으로 확대되었다.
초창기 너무나 섹시한 모습으로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던 바비는 시간이 갈수록 인기가 상승했다.

바비의 성공에는 ‘나사(NASA)의 감시위성과 같다’는 매텔(Mattel) 사의 마케팅 전략과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앞서가는 유행을 창조하는 바비 패션 디자인의 우수함이 뒷받침되고 있다.
매텔 사는 1961년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의 취임식에 맞춘 붉은 코트, 1961년 남자 친구 켄(Ken) 등장, 1963년 옷장과 침대, 소파가 갖추어진 바비의 집 탄생, 1968년 ‘쇼핑 갈래(Wanna go shopping)?’ ‘수학은 어려워(Math is difficult)’ 등의 말을 하는 바비 등을 연속적으로 히트시켰다.

바비 인형의 유명세에는 무엇보다도 수 십억 켤레의 구두를 포함한 화려한 의상이 큰 역할을 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비 인형 패션쇼는 어느 유명 패션쇼 못지 않게 관심의 초점이 되어 왔다.
바비 의상의 변화는 언제나 앞서가는 패션 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오르(Christian Dior)와 같은 회사에서는 바비를 위한 옷을 특별히 디자인하여 회사의 상표를 붙여서 판매한다. 크리스찬 디오르의 상표가 붙은 옷이 바비의 보통 옷들보다 비싼 것은 당연하다.
서로간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전략(mutual marketing)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하여 인형마다 조금씩 형태와 디자인을 다르게 한 것도 판촉에 기여하였다.
금발의 오리지날 바비, 하와이안 바비, 남미 바비, 동양인 바비 등 최근에는 다양한 인종의 얼굴을 한 바비가 탄생되고 있다.

바비 인형은 1959년부터 지금까지 10억 개 이상 팔렸다.
판매된 바비 인형을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11번이나 돌 수 있는 숫자이다. 현재 국제적인 상표로 세계 140여 국에서 매년 수 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바비는 이 시간에도 매초당 2개 이상이 팔리고 있다.

 

카페 의자의 대명사 비엔나 카페 체어

젊음과 낭만이 있는 장소, 예술과 사랑이 싹트는 장소 카페.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카페는 커피의 발달과 함께 지성의 장소로 도시의 문화적인 풍경을 대변하고 있다.
깊은 커피의 향기, 이른 아침 신문을 읽는 직장인, 한가한 오후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과 함께 카페의 풍경을 만드는 데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비엔나 카페 체어(Vienna Cafe Chair). 오스트리아 출신 디자이너 마이클 토네트(Michael Thonet ; 1796-1871)에 의해서 1859년 완성된 디자인의 명품이다.
만들어진 당시 ‘14번 의자’로 불렸던 이 의자는 곧바로 비엔나 왕실에 추천되기까지 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단 세 개의 붉은 너도밤나무 줄기를 구부려 만든 이 의자가 그토록 유명해진 것은 부드러운 곡선의 우아함과 형태의 순수함, 디테일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비엔나 카페 체어는 1849년 비엔나의 카페 다움(Cafe Daum)에 최초로 배치된 이래 오늘날까지 카페 의자의 대명사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피카소가 파리의 카페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카사노바가 베니스의 카페 플로리안(Cafe Florian)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며, 다다(Dadaism)의 화가들이 취리히에서 예술을 토론했던 것도 모두 이 의자에 앉아서였다.

오늘날에도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뉴욕의 빌리지, 홍콩의 랑 콰이 팡에서 비엔나의 노천카페에 이르기까지 이 의자만큼 많이 보급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대 가구의 위대한 시대를 열었던 출발점으로의 의의를 지니는 이 의자는 전세계적으로 6천만 개가 판매되었다. 비엔나에 위치한 토네트 회사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의자를 생산하며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의 왼발(My Left Foot)’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어린 시절 집에, ‘모던 타임스(Modern Times)’에서 찰리 채플린이 춤을 추던 카페에, 그리고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A Street Car Named Desire)’에서는 뉴 올리언즈(New Orleans)의 재즈 카페에 등장할 만큼 친숙한 비엔나 카페 체어.

1927년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이라는 작가가 토네트의 비엔나 카페 의자를 보고 “어느 디자이너가 이 의자보다 5배 비싸고, 절반 정도 편하며, 4분의 1정도 아름다운 의자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유명해질 수 있다”고 표현한 문귀는 이 의자의 진정한 가치를 매우 재미있게 역설한 표현으로 유명하다.

 

스포츠의 정열을 함축한 나이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정상.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의 내부 아테나 여신(女神)의 손바닥 위에 올려졌던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은 수 천년이 지난 오늘날 ‘나이키’로 다시 탄생한다. 1960년대 초, 육상코치 빌 보어먼(Bill Bowerman)과 달리기 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는 포틀랜드주의 오레곤 대학에서 만난다. 두 명의 젊은이는 당시 독일이 장악하고 있던 운동화 시장을 겨냥, 일본을 견학한 후 1964년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 회사를 만들었다. 1971년 아침식사를 하던 빌 보어만이 식탁에 올려진 와플(waffle)을 보고 와플과 같은 구조에 고무를 채워 넣어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1972년 ‘나이키’라고 이름이 붙여진 운동화를 출시, 인기를 끌자 1978년에는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바꾸었다. 1977년 미 우주항공국 나사(NASA)의 엔지니어였던 프랭크 루비(Frank Ruby)의 충격완화를 위해 운동화에 공기를 주입하자는 아이디어를 채택, 그 유명한 ‘나이키 에어(Nike Air)’가 탄생한다. 나이키는 발전을 거듭하여 1979년에는 이미 미국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20억 달러, 1996년에는 5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나이키의 전설에 상표와 관련된 디자인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창립 당시 회사를 상징하는 로고가 필요했던 이들은 포틀랜드 주립대학에 다니던 옆집의 미대 학생에게 디자인을 의뢰, 오늘날의 나이키 상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35달러를 주고 건네 받은 이 상표가 오늘날 코카콜라에 이어 브랜도 지명도 2위를 확보한 디자인의 전설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스포츠의 정열을 표현한 붉은 색채로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표현한 이 상표는 어느 전문적인 디자이너도 흉내내지 못할 이미지의 신선함과 간결한 라인으로 상품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상승시켰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흰색 운동화에 붉은색 상표가 새겨져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존의 운동화 보다 5배 이상 비싼 나이키를 신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실험정신에서 세계적 상품 탄생

디자인은 예술 창조의 역할 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 모델을 제시한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다.
성공 디자인 사례들 대부분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확장적 사고와 실험정신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디자인으로 입성한 작품들이다.
디자인은 실제로 다양하고 심오한 내용을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내용들은 기업의 경영, 마케팅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판촉전략(promotion strategy), 틈새 시장전략(niche marketing), 펀 마케팅(fun marketing), 제너레이션 마케팅(generation marketing), 가상 마케팅(virtual marketing) 등의 개념과 고정관념의 타파, 포장의 차별화, 고객 세분화 등의 전략은 공간, 형태, 색채, 질감, 글씨체 등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 구체적인 디자인 실행으로 완성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되는 21세기에, 사회 전체가 디자인을 통하여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의 창조는 필수적이다.
이는 생활 문화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과 일관성 있는 디자인 전략을 필요로 한다.
성공적인 디자인의 창조는 기업 경영의 핵심이자 국가 경제 발전의 강력한 힘이다.


 

글_박진배(한성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지포 라이터
(Zippo Lighter).


단순한 재료, 간결한 라인의 디자인으로 이미지 확보에 성공한 지포는 최초 생산으로부터 지금까지 원래의 디자인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지 표면에만 유명 상표와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이고 있다.


펜실바니아에 위치한 지포 뮤지엄 내부로 많은 제품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 지포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빅토리녹스(Victorinox).
하나의 틈새로부터 펼쳐 나오는 새로운 기능에 대한 기대감과 감탄.
내부 공간 구조의 치밀한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밀함이 자랑이다.

 


바비(Barbie) 인형.


1959년 로스 헤릴러(Ross Heryler)에 의해 최초로 탄생한 이래 40년간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장난감 세계의 영원한 프린세스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 여성의 이상형을 닮은 몸매에 반짝이는 드레스, 여성스러운 눈과 매혹적인 미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세련됨은 바비 인형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대표적인 특징이다.
최근에는 중국, 아프리카, 인디언 등의 바비인형이 판매되고 있다.

 


비엔나 카페 체어.
현대 가구의 위대한 시대를 열었던 출발점이 된 이 의자는 전 세계적으로 6천만 개가 판매되었다.
비엔나에 위치한 토네트 사에서는 지금도 이 의자를 생산하며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이클 존슨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신었던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s)’.
신발 한 짝의 무게가 100g이 채 되지 않은 가볍고 착용감이 뛰어난 이 신발은 특수 제작되었다.


나이키(Nike)의 여자 러닝화 ‘에어 스위프트 트라이어엑스(Air Swift Triax)’.
스포츠의 정열을 표현한 붉은 색채로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표현한 이 상표는 어느 전문적인 디자이너도 흉내내지 못할 이미지의 신선함과 간결한 라인으로 상품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상승시켰다.

 

박진배
1963년 생.
연세대 상경대학을 졸업(1986).
연세대 대학원 주생활학과 졸업(1988).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석사학위(1992).
연세대 대학원 건축공학과 공학박사 학위 취득(1998).
미국 뉴욕 Sung Associates Inc.에서 디자인 디렉터를 역임((1990).
1991년부터 한성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역임.
저서
<박진배 교수의 세계 건축 실내디자인 기행/ 유럽편>(1993)
<박진배 교수의 미국 건축 인테리어디자인 기행>(1996)
<박진배 교수의 디자인 파워플레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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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디자인 1999년 11 12월호 (167호) 첫페이지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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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웹진 '산업디자인'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간하던 격월간 잡지로 1970년 11월 '디자인·포장' 창간호가 1983년 2월까지 발행되고, 1983년 4월(no.67)부터 '산업디자인'으로 명칭변경되어 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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