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산업디자인 잡지 > 167호

산업디자인 정보

글 싣는 순서
1. 연구개요
2. 건축, 석조
3. 회화, 목공예
4. 생활용구
5. 도자기
6. 의복, 직물류, 장신구
7. 금속공예, 악기, 맺음말

연재를 마치며...

1. 연구 의의 및 활용 방안

우리에게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있는 반면, 오랜 기간 외침에 시달려온 약소 민족이라는 열등감도 없지 않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는 국민교육헌장의 구절이 가슴이 와 닿지만 우리의 것을 바로 알고 소중히 여기며 발전시켜나가는 구체적인 행동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이 근대화의 여파로 거세게 밀려들어온 서구 문명의 체취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정신 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디자인 분야 역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받아들인 서구 문화의 수용 및 첨단 교육의 기능은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디자인 속에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한 실정이다.
때로 이 같은 노력이 가시화 되는 듯도 하지만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전통문화란 그것을 연구하고 관여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전통문화를 바로 알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일례로 우리 건축의 기둥 양식인 배흘림 기둥이나 우리의 가락을 노래나 악기를 통해 제대로 구사하는 방법의 교육은 간과하면서도, 그리스 건축의 기둥 양식인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나 서양의 가곡 및 악기 연주법 등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재창조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다음은 사회지도층이 전통문화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국민을 선도함으로써 정신적인 풍요는 물론, 더 나아가 국부(國富) 창출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의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은 백자를 만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자의 진가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으로부터 받아들인 백자 기술을 활용, 도자기 교역을 통해 부(富)를 축적했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조선의 도공은 천재성이 엿보이는 뛰어난 장인으로 세계적인 도자기를 만들어 냈지만 당시의 폐쇄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했고, 도자기에 이름을 명기하지 않아 어떤 도공이 빚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은, 영주들의 배려와 관심 속에 실명으로 도자기를 빚으면서 조선과 일본, 중국의 모든 장르를 소화시켜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한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일본의 백자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아취(雅趣)를 느낄 수 있는 고려청자의 은은한 비취색, 조선백자의 무욕의 흰색 등 우리의 선조들은 각 시대마다 한국의 고유색을 도자기를 통해 발현시켰지만, 지금은 그것을 계승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색을 창출해내지도 못함으로써 먼 훗날 우리가 살았던 이 시대가 한국 문화사의 암흑기로 기록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더욱이 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사람들은 우리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 및 장인 의식은 결여된 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생산, 판매하는 기업가들에 의해 한국의 전통은 조악한 것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전통문화에 대한 그간의 무지와 인식의 결여로 찬란한 우리 문화가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지지도 못했으며,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 채 사장되어 버린 예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① 한 시대의 건축 수준을 가늠케 하고 민본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한국의 궁궐
② 입체적, 기하학적 형태와 축조 설계의 과학적 면이 돋보이는 첨성대
③ 정교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금관, 허리띠, 귀걸이 등의 금속공예
④ 각 시대마다 새롭게 구현되어 자연미, 세련미, 소박함 등을 보여준 한국의 도자기
⑤ 직관과 천진함으로 허심탄회하고 꾸밈없는 인간 모습을 표현한 신라 토우
⑥ 자연 그대로의 구조와 목리를 이용해 만든 목기
⑦ 버려질 운명의 천들을 모아 빼어난 구성미를 창출한 조각보

등을 보면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대전환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새로운 잣대와 체계적인 논리 전개 방법에 따라서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이에 표출된 우리 고유 디자인이 더 과학적이고 우수하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일례로 보자기는 어떠한 형태의 물건이라도 그것과 일체되는 무정형의 특성이 있고, 사용 여부에 따라 입체성과 평면성을 갖는 등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변화무쌍한 면을 보이며, 또한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환경오염방지에도 일조한다.
더욱이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정성스럽게 싸서 상대방에 보내면 상대방은 그에 대한 답례로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서 보내는 즉,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는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가 그 속에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발효식품의 저장구인 숨쉬는 용기인 옹기는 숙성기간을 자체적으로 조절하여 주고 맛을 제대로 보존하는데 있어 현대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어떠한 용기보다 더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구조와 재질로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렇듯 선인들의 예지와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자연과 자연재 본래의 특성을 십분 이용한 자연합일, 틀에 짜여진 일정한 법칙 없이 자유롭고 다양하며 유연하게 도구의 구조와 형태를 표현한 중용성, 물(物)의 제작에 있어 사용, 기술, 자원의 관계를 인간, 물(物), 환경등의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종합성 등이 담겨 있다.
또한 옛 기물에는 허식과 표피적 장식보다는 내실을 기하고, 정신을 불어넣는 데서 나오는 견실미와 생명미, 작위를 줄이는 데서 나오는 단순, 간결, 건강미, 주변 환경의 폭넓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자연, 순수미 등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후손은 그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사회 일각에서 우리 것을 재조명하자는 운동이 서서히 전개되고 있고, 다가올 21세기는 동양문화가 서양문화를 압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논의되고는 있으나, 전통의 재현과 재창조라는 이름 하에 어설픈 전통과의 접목을 시도하여 천박한 디자인의 상품이 양산된다면 오히려 우리의 전통문화와 조상들께 누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부분에서 소홀함이 없이 참된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상품이 제작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국가 이미지 제고 상품으로 시장 개척의 첨병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본 연구는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를 찾아 한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그간 전통문화의 일부 요소를 활용한 디자인 사례가 선보여지기는 했으나, 이렇듯 광범위한 분야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의 디자인 적용사례를 다룬 적이 없는 만큼, 본 연구가 지닌 의의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도 있듯이, 이번에 진행된 디자인 연구사례가 모두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 디자인계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이를 계기로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 개발을 활발히 추진한다면 세계 속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심어가는 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이번의 디자인 연구 사례가 기대에 못미쳤던 근본적 이유를 살펴보면, 전통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부분만을 디자인에 접목시키고자 했던 데 있다.
따라서 본 최종 연구 결과물에서는 전통문화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디자인 연구사례 못지 않게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향후 발전된 전통과의 접목을 꾀할 수 있는 바탕 마련에 큰 의미를 두었다.

전통문화에 나타난 제요소의 접목이란 눈으로 보이는 형태만의 활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형태의 일부분을 그대로 본 따 왔다고 하여 그것이 바로 전통과의 접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통문화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과 컨셉트, 그리고 이미지 등과의 접목이 더 중요하다.
전통문화는 전통의 재현과 재창조가 상보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통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전통의 재현이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하였을 때만이 전통의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실체도 모른 채 재창조나 접목을 꾀한다면 그 본래 모습과 유리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더욱이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는 산업 부문에서의 전통문화 접목이 얼마나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된다.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de+sign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de’는 ‘from’으로 ‘∼로부터의 이탈’을, ‘sign’은 ‘기호와 신호’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일상기호와 신호체계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따라서 디자인이란 기존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디자인 작업일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앞서 말한 자성의 기회는 물론 의미 있는 디자인 작업이란 측면에서 그 활용 가치가 크다 할 것이다.

 

2.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의 문제점과 그 개선 방향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본 연구 과제 수행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먼저 하고자 했던 의욕은 컸으나, 디자인 연구 대상 품목이 광범위하여 각 품목별로 심도 있게 새로운 컨셉트를 도출하여 구체화하고 이를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 개발로 이끌어내기까지는 적잖은 무리가 있었다.
더욱이 연구위원 중에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없이 바로 디자인 작업에 착수함으로써 전통의 본질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① 다양한 품목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 일시에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보다는, 매년 순차적으로 각기 다른 주제(예; 보자기전, 자연의 색을 오늘에(전통염색전, 장신구전, 도자기전 등) 하에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의 접목 연구를 실시함으로써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② 공모전 등을 통해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여 연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결과물의 질적 완성도를 높이는 차원은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젊은이들로 하여금 우리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③ 공모전을 통한 연구 개발로 방향이 전환된다면, 아이디어 스케치와 랜더링으로 입상작의 2배수 정도를 1차로 선별하고, 이에 선발된 사람들이 올바로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재현하거나 현대 디자인에 접목할 수 있도록, 전통문화의 이론적 전문가와 전통문화 전수자로부터 직접 보고 배우며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처음에 공모한 아이디어 스케치와 랜더링을 보완 수정하고 이를 토대로 공모전에 최종 출품할 제품을 제작하도록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면 전통과 유리되지 않은 좋은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공모전에서 입상하지는 않았더라도 예비 입상자들이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향후 훌륭한 디자인물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④ 공모전의 입상작들을 전시할 때는 디자인 접목의 원형이 되는 전통문화를 함께 전시함으로써 관람자들에게 양자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보다 바람직한 전통과의 만남을 꾀하도록 하며, 전시기간 중 관련 세미나와 워크샵 등을 실시하여 입상자 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도록 한다.
입상작들의 연구 과정과 연구 결과물, 세미나 및 워크샵 내용 등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는 등 매년 이러한 노력과 결실이 쌓이게 되면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자료가 양적, 질적으로 풍부해질 것이다.

본 연구가 그 중요성에 비해 때늦은 감은 있으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비록 이번의 연구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갖고 발전을 꾀한다면 우리 디자인계의 발전은 물론,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상기에서 언급한 개선 방향들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_김주미


김주미
1960년 생.
덕성여대 영문과 졸업(1984).
KIDP 홍보출판실(1984∼1994)과 KIDP 편집 전문가로 활동(1994∼1997)하면서 <산업디자인> <포장기술> 등의 간행물과 각종 도록과 포장기술 개발 성공 사례집을 기획, 편집, 제작했다.
산업자원부, KIDP에서 주관한 산업디자인 기반기술 개발 사업의 하나인 ‘전통문화와 산업디자인 접목에 관한 연구’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1998).
현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에 다니면서 디자인의 원형탐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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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웹진 '산업디자인'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간하던 격월간 잡지로 1970년 11월 '디자인·포장' 창간호가 1983년 2월까지 발행되고, 1983년 4월(no.67)부터 '산업디자인'으로 명칭변경되어 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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