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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제언 : SBS 다큐멘터리

SBS 다큐멘터리 '21세기 생존전략 - 디자인' 제작후기

2000년 9월 초순 취재진이 도착한 세계적 디자인 도시 밀라노.
디자인 상품의 축제라 할 수 있는 마체프(macef) 2000으로 도시 전체가 북적거렸다.
세계에서 일부러 불러모아온 것처럼 멋진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는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면 영낙없는 젊은이였지만 카메라에 잡힌 앞모습은 세련된 노인들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같은 모양의 옷, 헤어스타일, 장식품 일체를 거부했다. 왜일까? 생활의 넉넉함은 그들에게 나만의 것을 고집할 여유를 주었고 삶의 질을 추구하게 했음을 느꼈다.
21세기는 빈부의 차이는 있겠지만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열망이 가속화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고 생활용품 분야는 이제 기술적인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기업들은 알고 있다.
무엇으로 같은 성능의 제품에 경쟁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매직 포인트로 떠오른 디자인

취재진에게 지난 4월 내려진 임무는 디자인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말 닻을 올렸다. 두 달간의 사전 취재와 해외 섭외를 마친 뒤 9월 초, 33일간 지구 한바퀴를 도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밀라노-런던-코펜하겐-스트루어-파리-뉴올리언즈-뉴욕-보스턴-샌프란시스코-도쿄-요코하마. 베일에 가려진 디자인의 노하우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언뜻 패션쇼가 연상되는 디자인, 그러나 디자인은 상품의 외형을 그려내는 단계를 훨씬 지나 한계점에 이른 기술력에 생명을 불어넣는 매직 포인트가 되어 있었다.
나아가 세계는 이미 아무도 선점하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영토를 디자인하는 치열한 전쟁이 진행중이었다.

‘We have to decide not to die’.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거장 에또레 쏘사스(Ettore Sottsass)의 사무실 벽에 걸린 이 문구는 취재진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디자인의 화두였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은 기업의 생명이 걸린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우수한 디자인으로 상품을 개발한 기업은 엄청난 부를 얻은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전 세계 주방용품을 석권하고 있는 알레시(Alessi) 사의 경우 에또레 쏘사스, 리차드 새퍼(Richard Sapper), 스테파노 죠바노니(Stefano Giovannoni) 등의 디자인을 채택하면서 주전자를 만들던 영세업체를 벗어나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이너는 자기가 디자인한 상품이 얼마나 팔리느냐에 따라 대가를 지불받는다.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팔리느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디자인 하나에 얼마를 지급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잘 팔리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기업들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이런 디자인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잘 아는 중소기업 사장 한 분은 이런 얘기를 했다.
“글쎄 디자인, 중요하긴 한데 돈이 있어야지. 물건 만든 뒤 한 천만원 주고 그냥 때깔나게 보이도록 흉내만 내고 있지.”
참 황당한 말씀이었다. 서울 코엑스 전시장보다 스무 배나 크다는 마체프 전시장에 3천여 업체가 선보인 갖가지 디자인 상품 앞에서 취재진은 주눅이 들었고 밀라노에서의 첫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디자인으로 돈을 버는 기업

그러면 우수한 디자인이란 무엇이며 어떤 디자인이 돈을 버는 것일까?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볼까 한다.
덴마크는 우리가 알다시피 농업국가이다. 그런데 이곳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기업이 2개 있는데 이들 업체에 대한 덴마크인들의 자부심은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
하나는 장난감으로 유명한 레고이고, 다른 하나는 오디오 전문업체인 뱅 앤 올룹슨(Bang & Olufsen)이다.

뱅 앤 올룹슨은 올해로 설립 75년의 긴 역사 속에 소멸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고가의 오디오를 생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우수한 디자인 덕분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라디오와 음향기기, TV, 전화기 등 여러 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좀더 편리할까에 디자인의 포커스를 맞추어 왔다.
채널을 기억하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밴드를 돌리지 않고도 원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이제는 이미 보편화된 버튼식 라디오가 뱅 앤 올룹슨이 처음으로 디자인했음을 아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그게 기술력이지 웬 디자인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기술은 디자인의 필요성에 맞춰 응용된 것일 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애플(Apple) 사의 누드 컴퓨터인 아이맥(iMac) 디자인이다.
컴퓨터가 처음 일반화될 무렵 애플 사는 시장에서 우위를 잠깐 점했지만 IBM의 거센 도전에 무릎을 꿇고 도산 직전 상태로 내몰렸다.
이때 쫓겨난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다시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면서 애플을 살리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선택한 것이 바로 디자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의 누드 컴퓨터 디자인을 전격 선택함으로써 애플을 기사회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지만 취재진이 느끼기에는 디자인의 영역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궁무진하고 너무나 창조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며 디지털 영역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미래의 디자인을 준비하고 있고 디자인 경영이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필립스 사가 제시한 ‘비전 오브 더 퓨처(Vision of the Future)’,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미디어랩(MIT Media Lab)이 준비중인 각종 프로젝트들은 차세대 디자인의 향방을 잘 가늠해 주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미디어 랩에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로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의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기술을 응용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디자인을 준비중에 있고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그 연구 결과가 부메랑이 돼서 우리를 공격할 때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존을 위한 미래의 준비 - 디자인 경영

서기 2000년 밀레니엄 첫 해가 암울한 한국 경제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고 이 때문에 대규모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한국 경제의 21세기 생존 전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취재진은 감히 디자인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만드는 제품들은 각기 다르지만 그 제품을 어떻게 디자인해 내느냐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디자인의 매직 포인트를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아직 소수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지난 10월 말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는 아셈 정상회의와 더불어 각 기업들의 디자인 상품 전시회가 열렸다.
많은 돈을 들여 애써 준비한 전시회가 각국 정상의 부인들이 짧은 시간 눈요기 거리로 스쳐 지나가는 부대행사로 전락한 것은 한국 디자인의 현 주소를 나타내 준 것이었다.
전시관은 그럴듯하게 차려 놓고 미모의 도우미를 동원한 모 업체의 홍보 담당자가 행사가 귀찮은 듯 짜증마저 내는 현실은 더욱 암울하기만 했다.

선진국의 경우 디자인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경영자와 기술자, 마케팅 담당, 홍보담당, 디자이너들 모두가 모여 훌륭한 디자인 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낸다. 디자인 회의에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기술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등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그들의 현실이 낭비이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회사는 일본 국내 기업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이다”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소니(SONY) 사는 지난 60년 초부터 이러한 디자인 경영을 추구해왔고, 그 결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에 우뚝 섰다.
걸어다니며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워크맨’, 엔터테인먼트 로봇 ‘아이보’, 종합 게임 오디오 기기인 ‘플레이 스테이션’, 이 모두가 우수한 디자인의 승리였다.

일부 기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 대다수 경영자들이 아직까지 디자인의 중요성과 디자이너의 역할을 애써 과소 평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SBS의 창사 10주년 특별기획 ‘21세기 생존전략-디자인’이 조금이나마 디자인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_강무성(SBS 보도본부 기자)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소니(SONY)의 엔터테인먼트 로봇.
아이보(Aibo).
세계적인 애완견이 된 아이보는 ‘새로운 시장 창조형 상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주목받았다.


뱅 앤 올룹슨社.
Beo Sound 3000


IDEO 제품사진


레고(Lego)제품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 회사의 제품


부엌에 향기를 심어주는 필립스(Philips)사의 믹서기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애플(Apple) 사의
‘파워맥 G4 큐브(Power Mac G4 Cube)’
Think different’의 기업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이 제품은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애플의 파워를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과시했다.


영국 런던 시내에서 로봇 모양의 옷을 입고 돈을 주면 일정한 쇼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소년이 흥미롭게 말을 걸고 있다.


미국 뉴욕에 소재한 소니 원더 현관에 설치돼 있는 말하는 로봇. 고객들이 말을 건네면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는 지능을 지녔다.


강무성
1985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1987년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SBS 보도본부 기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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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웹진 '산업디자인'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발간하던 격월간 잡지로 1970년 11월 '디자인·포장' 창간호가 1983년 2월까지 발행되고, 1983년 4월(no.67)부터 '산업디자인'으로 명칭변경되어 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2월호(no.174)를 마지막으로 산업디자인지는 폐간되었으며, 2001년 7/8월(vol.175)부터 현재까지 designdb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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